특권으로 쌓아올린 자신들만의 성…정의·공정 외친 이면에는 부도덕의 종합판
   
▲ 윤주진 객원 논설위원
2010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출간한 <진보집권플랜>은 상당한 반향과 논쟁을 촉발시켰던 책임에 틀림없다. 책 제목에 버젓이 '집권'을 명시한 이 책은 지식인 조국을 정치설계가 조국으로 격상시켰고, 그의 외모와 지위가 가져다주는 압도적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많은 이들의 선망 아닌 선망을 자아내기도 했다. '폴리페서'를 극렬하게 비난했던 그였지만, 사실 그는 '멋있는 폴리페서'의 자리를 일찌감치 차지한 채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새로운 이름의 책이 출판되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실제 발간만 되지 않았을 뿐, 수많은 언론 보도와 증언을 통해 '구전설화' 정도로 작품화 된 것 같다. 책 제목은 <진보특권플랜>. 진보라는 정치적 스탠스를 점유하는 대한민국 사회 지도층, 지식인, 정치세력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각종 제도의 빈틈을 파고들며 자신들만의 특권의 성을 쌓아 올렸는지 우린 지난 한 달 여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조국 사태'에 의해서 말이다.

어떤 한 사회에서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그 특권을 가능케 하는 특정한 사회적 요소가 존재했을 때 가능하다. 가장 손쉬운 특권 유지 수단은 바로 법적으로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신분제를 법제화한 사회에서는 상위 계층의 막강한 특권은 법에 의해 보호된다. 독재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계층과 그 측근들이 특권을 누린다. 정교일치 사회에서는 종교 권력이 곧 특권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도, 독재 국가도, 또 정교일치제도 아니다. 그 누구도 법과 제도로 특권을 유지할 명분도, 수단도 없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권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정치권력과 금권(金權)을 쥐고 제도를 비틀고 법망을 회피하는 '악의 무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녹록치 않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반대 흐름이 더 강하다. 경미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국회의원이 하면, 또 재벌가 오너가 하면 쓰나미에 버금가는 사회적 비난이 날아온다. “유전무죄 대신 유전중죄가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층에 대한 감시는 더욱 촘촘해진다.

민주화 이후 우리가 감시하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민주화라는 하나의 사회적 변곡점을 기회로 삼아 등장한 권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도덕 권력'이다. 원래는 건조한 의미에서 정치체제 중 하나로 분류되는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시절을 오랜 기간 거친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서는 하나의 종교와 같은 지위의 도덕적 우위를 갖게 된 것이다.

그 우위는 이른바 '민주화 세대'로 지칭되는 386, 또는 586 세력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했다. 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또 높은 사회적 지위를 영유하면서도 '상대적 약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의와 공정의 외침으로 포장할 수 있었고, 사실상 '정적(政敵)'에 대한 공격이지만 그것을 '저항' 정도로 의미부여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하나의 '특권'으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여러 사회개혁 방안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선으로 프레이밍하려고 했고,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을 독재세력, 재벌비호세력, 또는 친일파의 후예 중 하나로 선택해가며 궁지에 몰아넣는 매우 효과적인 정치 전술을 반복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에 대해서는 기득권의 탄압, 진보적 개혁을 거부하는 자들의 '색깔론'으로 매도해왔다. 이것이 그들의 특권을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산성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입시, 가족 펀드, 웅동학원 등 각종 의혹이 쏟아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조 후보자는 그동안 정의와 공정을 외쳐 온 자칭 타칭 대표적 인사였기에 충격파가 크다. /사진=연합뉴스

그 '끝판왕'이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아니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한 달여간의 기나긴 논란과 공방은 바로 진보좌파가 누려온 특권의 비밀 이야기를 꺼내어 펼쳐 보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게 됐다.

선(善)을 이야기해 온 자들의 악(惡)의 스토리는, 그 선이 결국 위선(僞善)일 수 있겠다는 추정의 가능성을 대폭 열어준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회적 이슈가 터지든 곧장 '민주주의'를 인용하는 그들의 화법에서 어쩌면 민주주의를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남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고의 깊이를 국민들에게 선사한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쳐 성숙된다. 하나는 전환(transition)으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단계이고, 그 다음은 공고화(consolidation), 즉 민주주의가 보다 완숙해지는 과정이다. 기나긴 역사의 호흡에서 봤을 때 1987년으로부터 2019년까지의 약 30년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으며, 비로소 민주주의의 보다 참된 모습과 의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정치적 여유가 생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 사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험대다. 조국 후보자와 같은 진보좌파가 민주주의 담론을 독점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특권 유지용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라는 통치 구조에서 어떠한 도덕적 환상을 걷어내고 보다 담백한 정치이념의 논쟁으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기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 사태에 의해 집필된 <진보특권플랜>은 온 국민이 곱씹어봐야 할 역사서가 아닐까 싶다. /윤주진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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