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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돌아보기] '죽고 싶다'가 '죽이고 싶다'가 된 이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자영업자들 폐업으로 내몰아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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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9-09-20 09: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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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수도권 도시의 이름난 먹자골목에서 장사를 제법 잘 하던 한정식 식당 주인이 얼마 전 간판을 내렸다. 김영란법으로 단체 손님이 부쩍 줄어들 때 "이제 이 장사도 끝이 났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세금까지 늘어나고 근로계약서 작성으로 4대 보험까지 처리해야 하는 등 일이 커지자 장사를 접기로 결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더 손해 날 일 없어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그 골목에서 장사하는 옛 동업자들은 한숨과 빚만 늘고 있을 거라고 안돼한다.

그가 더 안돼하는 건 문 닫고 나간 자리에 비슷한 가게를 새로 여는 사람들. 식당 경력 20년인 자기가 봤을 때는 앞으로 동네 식당은 갈수록 안 되면 안 됐지,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데도 굳이 돈(빚낸 게 거의 확실한) 들여 인테리어 바꾸고 간판 새로 달고 장사 나서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거다. 하지만 "오죽하면 저러겠소. 먹고살 길이 없으니 요행이라도 바라고 장사에 뛰어드는 거 아니겠소"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와 말을 나누다가 내가 전에 쓴 타령 한 편이 떠올랐다.

<아파트 앞 상가에 국내 1위 브랜드 편의점 들어섰네. 용감한가, 무모한가! 40대 주인 볼 때마다 안됐다네. 편의점 들어선 곳, 원래 아파트단지 이름 붙은 구멍가게였다네. 구멍가게 젊은 주인 인상 좋고 싹싹해서 장사 안 되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가게 접고 떠났다네. 그 자리에 들어선 프랜차이즈 치킨집, 4말5초 주인 부부 월요일 빼고 매일 오후 3~4시에 문을 열고 자정 넘게 닭튀김에 맥주 피처 날랐지만 밝은 표정 못 봤다네. 어찌어찌 3~4년을 버티더니 몇 주 전 문 닫은 후, 뚝딱뚝딱 인테리어 공사 후에 이 편의점 들어섰네.

   
▲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편의점 바로 옆엔 부동산 세 곳, 미장원, 반찬가게 옹기종기 올망졸망 연 듯 만 듯 하고 있네. 불은 켰어도 북향이라 언제나 침침, 인적은 거의 없네. 부동산업소 하나도 그 전에는 치킨가게 자리였네. 오토바이 직접 몰고 치킨 배달 나간 주인 큰 길에서 차에 받혀 숨졌다네.

미장원도 간판 두 번 바뀌었네. 처음엔 '샤넬헤어샵'. 이발소 없어 머리 자르러 갔더니만 미용사가 "샤넬 본사, 세계적 명품 업체 그 샤넬 본사에서 우리 이름 계속 쓰면 손해배상 청구한다 겁주더라" 말하고는 간판 바꿀 가욋돈 걱정부터 털어놓네. 2층 있던 '영어·수학 자기주도형 학습 학원'은 오래 전에 비워졌고, 학원 옆 교회도 '성도'가 늘지 않아 '부흥'하지 못했네, 여전히 '개척교회'라네.

무얼 해도 안 되는 이 상가! 새로 문을 연 편의점에도 손님 별로 없다네. 있을 수가 없다네! 바로 길 건너에 국내 제 1위 유통업체가 '〇〇슈퍼' 이름 달고 인터넷 주문받아 배달까지 해주는데 편의점이 장사될까. 편의점보다 많은 물건, 걸핏하면 '세일'인데 누가 값 더 비싼 편의점에 가겠는가. 가까이에 중학교, 간혹 라면 먹는 애들 있더라만 학교 파할 때쯤 나타나는  '푸드트럭' 못 당하네. 어묵에 떡볶이, 붕어빵 냄새 구수하고 따끈한 김까지 모락모락 오르는 1톤 트럭. 참새 방앗간처럼 아이들의 발걸음을 묶어놓네. 편의점 가는 발걸음 찾아보기 힘들다네.>

다시 자진 폐업한 식당 주인 이야기. 자기가 문 닫을 때는 장사가 안 돼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요즘 옛 동업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는 거다. 또 예전 강시(僵屍) 영화(만화?)에 나온 부적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무덤에서 나온 시체인 강시들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깡충깡충 두 발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해쳤는데, 주인공이 노란색 부적만 붙이면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자기도 그런 부적을 잔뜩 갖고 다니면서 이마에 붙여주고 싶은 강시 같은 사람들에게 붙여서 꼼짝 못하게 하고 싶다는 말이라는 거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면 절대 하지 않을 상상을 하고 저주를 입에 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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