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노골적인 감정 호소에 지친 관객들에게 국가주의만 강조한 전쟁영화가 주는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반공의 메시지를 외면하면 피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참 어렵다. 

늘 전쟁영화는 정치적인 도구가 되거나, 진영 싸움의 소재가 되곤 했다. 한반도의 특수성으로 인해, 관객들의 동상이몽에 의해 의도가 없더라도 의도가 있는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가 이념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영화의 가치는 힘을 잃는다. 그래서 영리한 조율이 필요하다.

한국전쟁 3부작 시리즈 1부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두번째로 나온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전승의 역사 뒤에 숨겨진, 여리고도 용감한 소년들을 그리는 데 충실했다. 우리가 몰랐던, 기억해야 할 이들의 아픔을 담담히 되살려냈다. 그래서 매 장면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 사진=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평균 나이 17세, 훈련 기간 2주, 역사에 숨겨진 772명의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양동작전으로 투입된 장사상륙작전을 그린다. 대한민국 대표 스토리텔러 곽경택 감독과 비주얼리스트 김태훈 감독의 공동 연출을 통해 9.28 서울 수복의 출발점이었지만 기밀에 부쳐진 탓에 기억하는 이가 드문 장사상륙작전을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

두 감독이 반공이 아닌 반전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듯 영화는 동족상잔의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 '인천상륙작전' 속 인민군 림계진(이범수)이 "피보다 중요한 건 이념"이라며 닥치는 대로 우리 군을 학살했다면,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까까머리 소년 인민군의 무고한 얼굴을 그려 보였다. 서울 경기고생이었으나 인민군의 총알받이로 끌려온 이 병사는 인민군복 속 교복을 입은 채 우리 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사실은 같은 편이라며 교복을 내어보이리라 계획했던 이름 모를 병사의 마지막이었다.

영화는 민초들에게 이념보다 중요한 건 생(生)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건 이 병사뿐만 아니라 평안남도 출신 학도병 최성필(최민호)과 사촌 인민군의 만남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최성필은 남한으로 건너온 뒤 학도병에 지원했지만 작전 중 사촌 인민군과 마주치고, 이들 일행을 포로로 잡았으나 끝내 풀어주기를 결심한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그저 이데올로기 전쟁에 휩쓸리고 희생되는 개개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 사진=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는 아픈 장면이 많지만, 영화적 재미를 외면하지 않았다.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은 전장 신이다. 학도병들이 장사리 상륙에 이어 적의 참호를 습격하는 백병전 신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배우들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은 다이내믹하고, 사활을 건 육탄전은 사실적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 끝 바라본 장사리 해변에서는 파도에 실려가는 학생모가 떼를 지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영화는 1부인 '인천상륙작전'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택했다. 카메라의 담담한 시선은 장사리의 비극을 더욱 서글프게 만든다. 결연한 부대원들의 표정 대신 공포를 이겨내려는 학도병들의 아슬아슬한 얼굴을 담았고, 영웅화된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의 위엄보다 소년들을 걱정하는 종군 기자 매기(메간 폭스)의 인류애를 그렸다.

여기에 휴머니티를 일으키는 배우들의 공이 적지 않다. 김명민, 김인권과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야 말할 것 없고 곽시양의 내공은 눈에 띄게 깊어졌다. 김성철, 최민호, 장지건, 이호정, 이재욱까지 신선한 얼굴의 학도병들도 적절한 케미스트리를 선보였다.


   
▲ 사진=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한 가지 아쉬운 점은 '772명의 학도병은 왜 총을 들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과 마찬가지로 안타깝게 희생된 호국 영웅들을 기리자는 취지에는 부합했지만, 이들의 개인사를 녹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물론 주축이 되는 학도병들의 참전 배경은 설명되지만, 이들이 자원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를 곱씹기엔 충분치 않았다. 


   
▲ 사진=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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