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통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물러야

박경귀원장의 행복한 고전읽기 (28) -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수신과 중용의 철학 대학 중용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대학(大學)>에 대하여

<대학(大學)>은 사서삼경의 하나로 유교사상의 입문서이다. 원래 『예기(禮記)』 속에 들어있던 편명(篇名)이었다. '대학(大學)'은 ‘대인(大人)의 학문’이니 곧 큰 사람이 되기 위한 배움의 길, 나아가 국가 경륜의 방향을 제시한 책으로 볼 수 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와 그의 제자들이 내용을 찬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학>은 공자의 가르침과 그의 제자인 증자의 뜻이 엮여 있어 유교의 수양론과 정치철학의 핵심을 잘 담고 있다. 따라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경구(警句)와 교훈이 많다.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분량은 적다. 송나라 때 주희가 <대학>을 골라내어 유학의 성전으로 표장(表章)함으로써 이후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세상을 도모하려는 자, 자신을 먼저 수양하라

<대학>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 강령과 여덟 가지 조목으로 이루어졌다. 세 가지 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대학의 도(道)는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하는 것이란 의미다. 먼저 자신의 덕을 갈고 닦은 후에 백성의 삶을 안온하게 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그 유명한 팔조목(八條目)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다. 대인의 길은 이렇게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성심과 수신을 바탕으로 집안과 나라, 천하를 다스리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 요구된다. 이 가운데 수신이 가장 중요한 근본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몸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고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을 제대로 성취할 수가 없다. 마음에 노여움이나 두려움, 근심 걱정이 있다면 바른 것을 얻을 수 없다.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한 이유다. 마음의 수양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강조한 셈이다.

<대학>은 자기 수양을 위해 절차탁마(切磋琢磨), 자족(自足)과 신독(愼獨)을 강조한다. 나아가 효도와 공경으로 임금과 윗사람을 섬기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대해야 한다고 훈계한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인(仁)이다. 인은 사람을 뜻하는 인(人)과 이(二)로 구성되었듯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서로 같은 부분을 가리킨다.” 역자는 남의 마음과 서로 같은 부분을 마음의 근원이 되는 성(性)으로 해설하고 있다. 인(仁)은 곧 성(性)이라는 것이다. 성(性)은 ‘살려고 하는 의지’이니 만물이 모두 성을 갖고 있다. 나의 성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을 존중하는 마음이 곧 인이다. 세상에 인이 넘치지 않으면 대동사회(大同社會)로 나아갈 수가 없다.

전(傳) 9장에서는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도 어진 마음, 즉 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반복한다. 인은 서로 같은 마음을 지향하니 친민(親民)과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은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고 같음을 추구하는 서(恕)의 성(性)과 맥락이 통한다.

통치자는 이런 어질고 덕이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들이 덕을 근본으로 하고 재물을 말단으로 여기도록 해야 한다.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면 백성이 흩어진다. 위에서 인과 의(義)를 좋아해야 백성도 어진 마음을 회복하고 재물이 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말고 인의(仁義)의 가치관을 확립함으로써 천하를 풍족하고 평안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학>은 통치자가 될 사람이 인의와 덕을 쌓는 자기 수양의 바탕 위에서 국가의 바른 정치를 행할 수 있다는 근본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부강한 국가를 만드는 근본 바탕 또한 인의와 덕치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대학>에서 개인의 윤리를 사회로 확장하면서 발생하는 부조화와 한계에 대한 고민을 발견할 수는 없다. 또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수단을 지나치게 인의의 도덕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공자 철학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국가의 정치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먼저 수신(修身)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점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중용(中庸)>에 대하여

<중용(中庸)>은 원래 <대학(大學)>과 함께 『예기(禮記)』 속에 들어있던 한 편(篇)이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썼다고도 하나, 공자 사후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각기 다른 문헌에서 발췌 절충된 것이란 의견이 다수다. 후학들에 의해 가필되거나 수정되었을 것이란 의미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자의 교훈을 계승하려한 자사의 의지가 어느 정도 담겼을 것이고, 나아가 후학에게 전수된 공자 철학의 핵심 가치가 배어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중용‘(中庸)은 책의 내용에 앞서 함축한 제목 자체가 더 유가의 덕목으로 대중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친근한 단어다. 중용이란 “상황에 맞게 작용하여 두루 조화를 이루면서 널리 통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중용은 많은 이들에게 세상살이의 행동기준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고대 사회든 현대 사회이든 공자가 강조한 중용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중용의 개념도 추상적이다. 오죽하면 공자가 “중용은 최고의 도리이다. 백성들은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제3장)고 했을까?

“중(中)의 의미는 ‘속마음’이 밖으로 나타나서 서로 상반된 의견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견해’를 ‘알맞게 취하는’ 상태이다.” 자신의 견해와 이익에 집착하면 결코 타인의 의견을 포괄해 낼 수 없다. 물론 알맞게 취하는 그 정도를 분별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중용, 같은 마음이 되는 타인과의 조화

중용(中庸)은 절도에 알맞게 된 화(和)의 상태에서 발휘된다. 조화(調和)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의 속마음(忠)이 남과 같은 마음(恕)이 되어야 한다. 군자가 충서(忠恕)로 사람을 다스릴 때 중용(中庸)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른바 중화(中和) 사상의 핵심적 사유다.

<중용>은 천하의 다섯 가지 달도(達道)로 군신․부자․부부․형제․붕우의 사귐을 들었다.(제20장) 각각 『맹자』에서 언급한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과 연관된다.

즉 각각의 달도의 관계에서 의(義), 친(親), 별(別), 서(序), 신(信)의 덕목이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란 의미다. 또한 이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세 덕목을 지(知), 인(仁), 용(勇)으로 들면서 이를 세 가지 달덕(達德)이라 말한다. 지인용을 터득하기 위해선 부단한 수신(修身)이 요구된다.

유교의 가르침은 수신을 통한 인의 체득을 강조하고 있다. 인은 바로 사회 윤리인 다섯 가지 달도를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중용>은 내면의 수양을 특별하게 강조한다. 수신 과정에서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정성스러워진다.”는 것은 지성(至誠)의 선순환 효과다.

자기의 성(性)을 다할 수 있을 때 남의 성(性)을 다할 수 있고, 만물과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게 된다. “지극한 성실함은 신처럼 신통하”며(至誠 如神)(제24장) 성실한 사람은 화(禍)나 복(福)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誠)을 강조한 이유는 “성(誠)은 스스로 자기를 완성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남을 완성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제25장)

천하를 경륜하는 데 있어서도 지성(至誠)은 그대로 유효하다. 지성을 다하는 사람은 지극히 성스러운 사람(至聖)이므로 그는 천덕(天德)에 도달한 것이니 천지의 화육(化育)을 주관하여 천하의 근본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은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인(仁), 충서(忠恕), 지성(至誠)은 중용의 삶에 필수적인 덕목이다. 물론 <중용>이 중용의 구체적 실천 지침이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주희가 주석한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不偏不倚無過不及)” ‘중(中)’을 지키는 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극단적 이념이 대립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우리 사회와 같은 갈등 구조 속에서 ‘중용’을 지켜 나갈 구체적 방책을 <중용>에서 얻기는 힘들다.

하지만 근본 원리의 가치는 여전히 숙고할 만하다. 바로 <대학>과 <중용>이 누누이 강조하는 지성(至誠)은 각박한 환경 속에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이 되살려봐야 할 살아있는 덕목이다. 실패와 좌절을 겪을 때마다 자신의 일과 도전에 최선을 다해보는 정신, 온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는 예기치 않은 새로운 돌파구나 행운, 또는 결실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스런 모습을 억지로 꾸며내기는 쉽지 않다. 성심(誠心)을 다하는 모습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극한 정성은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 설혹 자신의 지성스런 노력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후회가 남지 않게 된다. 지성(至誠)이야말로 세상과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자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성이 남과의 소통을 증진시켜 중용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통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kipeceo@gmail.com)

   
☞추천도서 : :『대학중용 강설』, 이기동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12), 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