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지난 3일 개천절 광화문 집회엔 이동식 화장실 설치 단 한 대도 안 해
5일 서초동서 열리는 검찰 개혁 요구 집회엔 서울교통공사 통해 20대 설치 예정
전문가들 "정치 지향점 다르다고 시민 지원 차별하면 공정성·형평성 문제 있어"
   
▲ 자유한국당과 범보수·우파 시민들이 지난 3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세종대로를 가득 메워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는 장외집회를 열고 있다./사진=독자 제공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서울시가 지난 3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요구 집회'에 이동식 화장실을 단 한 대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중앙일보가 4일 보도했다. 반면 시는 오는 5일 서초동에서 열릴 '검찰 개혁, 조국 장관 수호 집회'엔 이동식 화장실 20대 설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같은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집회임에도 집회 성격에 따라 지원을 달리 해 정치 편향성 논란이 제기된다.

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 3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 현장에는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초동과 비교해 광화문 일대에는 개방형 화장실이 많기 때문에 별도의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 2016~2017년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집회 당시 시청 앞 서울광장 등 도심 일대에 이동식 화장실 5~6대를 설치한 전례가 있다.

또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화장실의 경우도 지난 2016~2017년의 촛불집회와 차이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자치구와 함께 집회 장소 인근 건물주·상인 등과 협의했고, 그 결과 당초 40여 개였던 화장실을 210개로 대폭 늘리기도 했다.

시는 이번 광화문 집회를 앞두고 종로구청과 중구청에 '상인들과 협의해 개방 화장실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자치구 관계자들은 "공문이 집회를 이틀 앞둔 지난 1일 내려와 개방 화장실을 늘리는 데 시간이 촉박했다"며 "기존 개방형 화장실이 잘 운영되도록 상인들에게 요청하는 선에서 (협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종로·중구의 민간 개방형 화장실은 총 50여 곳으로, 주로 민간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이와는 정 반대로 서울시는 산하기관인 서울교통공사에 지하철 2호선 서초역과 교대역 인근에서 집회가 열릴 것을 예상해 5일 이동식 화장실을 10개씩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동식 화장실 대여 비용은 교통공사가 부담한다.

시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서초동 집회 당시 참가자들이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 한꺼번에 몰리며 혼잡도가 굉장히 높아져 집회에 참가한 시민과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아직 검토 중이기 때문에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둘러댔다. 이어 "광화문과 달리 서초동엔 개방 화장실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동식 화장실 설치가 시급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3일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화장실 이용에 있어 큰 불편을 겪었다.

집회에 참가한 60대 여성 시민 이 모씨는 "광화문 동화면세점 1층 화장실이 비좁고 줄이 너무 길어 급한 나머지 양해를 구하고 남성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림에 따라 수십 분간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도 전개되기도 했다. 60대 남성 시민 정 모씨는 "화장실은 급한데 사람들에 끼어서 수십분 동안 갇혀 있었다"며 "중간에 화장실이 하나라도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전했다.

집회 현장에 있던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예고된 집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동식 화장실이 한 대도 없었고, 개방 화장실 안내도도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며 "휴일이라 폐점한 식당들도 많아 화장실 찾는데 힘들었다"고 전언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꼼짝도 못하고 바지에 지도 그리기 직전이다", "(박원순 시장은) 광화문 집회엔 화장실 설치를 왜 안해주느냐"는 불만 글들이 폭주했다.

   
▲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사진=연합뉴스
한편 지난 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tbs(교통방송) 라디오에 나와 서초동 집회에 직접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서울교대 부근 지하철역 인근에 갔는데, 인파가 넘쳐 화장실 이용 불편에 어려움을 호소하던 시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화장실 사용과 안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업무 지시를 해놨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본인과) 서초구청장의 소속 정당이 달라서 화장실 설치 협조가 잘 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에 서초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화장실 설치를 요청한 적이 없었다"며 "10차선인 반포대로는 서초구청이 아니라 서울시 본청 관할"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정치적 이념에 따라 대(對) 시민 지원 내역이 달라지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면 명백히 공정성과 형평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박 교수는 "양쪽에 같은 지원을 하던가 차라리 집회 주최측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일관된 원칙을 적용해야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서울시는 그동안 광화문 집회에 있어서도 진보 단체엔 관대하고 보수 단체엔 엄격한 잣대를 들이다는 논란이 있었다"며 "박원순 시장이 정당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시정을 펼침에 있어 정치 성향이 영향을 미치는 건 문제"라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이념이나 지향점이 다르다며 시민을 좌우로 편을 갈라 정책을 실행하는 건 절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이 이어지자 서울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동 화장실 설치 의무는 1차적으로 주최측에 있다"며 "광화문 집회가 있기 전에 서울교통공사 측에 먼저 해당 지역에 이동식 화장실 설치 필요 여부를 검토하라고 요청했다"고 답변했다.

시 관계자는 "하지만 주최측이 당초 경찰에 신고한 집회 참가 인원이 실제 참가 인원보다 적었다"며 "광화문 주변엔 개방 화장실이 많아 교통공사 측에서 이동 화장실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