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태구, '판소리 복서'에서 전직 프로복서 병구 역 맡아
"판타지와 실제 오가는 영화… 캐릭터 진정성 찾으려 노력했죠"
"영화 떠올리면 김희원 선배 '병구야' 음성 가장 먼저 떠올라"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선 굵은 외모와 중저음의 허스키 보이스가 단번에 이목을 뺏는다. 독특한 색감의 아우라는 늘 미묘한 감상을 남긴다.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건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하시모토로 분한 '밀정'(2016)에서였다. 이어 '가려진 시간'(2016), '택시운전사'(2017), '안시성'(2018), '구해줘2'(2019)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대작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특유의 반전 매력이 빛난 주연작 '판소리 복서'로 돌아왔다. 배우 엄태구(36) 이야기다.

'잉투기'(2013), '어른도감'(2018) 등을 통해 엄태구를 지켜봐온 팬이라면 반가울 작품이고, 어둡고 서늘한 그의 얼굴을 주로 접했던 관객이라면 놀라울 작품이다. 엄태구는 '판소리 복서'를 통해 순수미 넘치는 복서로 변신, 관객들의 마음에 경쾌한 원투 펀치를 시도한다.


   
▲ 영화 '판소리 복서'의 배우 엄태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 '판소리 복서'(감독 정혁기)는 과거의 실수로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던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가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지원군 민지(이혜리)를 만나 잊고 있었던 미완의 꿈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기 위해 생애 가장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판소리 복서' 개봉에 앞서 만난 엄태구는 수줍은 미소와 세세한 리액션이 극 중 병구의 모습과 똑 닮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토록 강렬한 연기를 펼쳐왔을까 가늠이 되지 않는, 꼭 마음에 섬세한 소년을 키우고 있는 모습… 병구라는 인물은 엄태구로부터 꽤 많은 표정을 물려받은 듯했다.

"일할 때 모습, 친한 친구와 있을 때 나오는 모습, 가족과 있을 때 모습… 여러 모습의 제가 있어요. 연기는 여러 가지 모습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보니 결국 다 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엄태구는 '판소리 복서'의 출발점이 된 단편영화 '뎀프시롤: 참회록'(2014)의 팬이었다. 장편 제작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에게 대본이 왔을 때 곧장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대본을 보니 단편에서 느꼈던, 재밌으면서도 이상한 느낌이 장편에서도 전달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가 판타지 같기도, 실제 같기도 한데 연기할 땐 무조건 현실적으로 접근했어요. 프로복서로서 믿어지게끔, 펀치드렁크라는 병에 걸린 모습도 진실되게 보이도록 노력했던 것 같아요."


   
▲ 영화 '판소리 복서'의 배우 엄태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엄태구.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건 과거의 실수로 오랜 시간 고립돼 지낸 병구의 모습, 나아가 펀치드렁크로 인해 어눌해진 병구의 말투와 행동이다. 병구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코치 박관장(김희원)뿐인데, 이 속에서 간간이 피어나는 브로맨스가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제가 김희원 선배의 팬이었는데, 현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친해졌어요. 김희원 선배를 보면서 연기하고, 촬영 중에도 계속 의지해서… 영화에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판소리 복서'를 생각하면 김희원 선배의 '병구야'라는 음성이 가장 처음 떠올라요."

엄태구는 파트너 복이 많은 배우다. 송강호, 천호진, 김희원 등 롤모델로 꼽는 선배들과 정면에서 합을 맞췄고 설현, 한선화, 이혜리 등 미모의 여배우들과 호흡하는 기쁨도 맛봤다. '판소리 복서'를 통해 만난 이혜리에 대해서는 "밝은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혜리 씨와 호흡을 맞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예능에서의 모습이 진짜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혜리 씨의 에너지는 현장에서도 좋았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좋았어요. 그 영향을 저도, 병구도 받았던 것 같아요."

이혜리와의 깨알 멜로 신에 돌입하기 전에는 겁도 많이 났단다. 엄태구는 "단편영화를 통해 멜로 연기를 해봤기 때문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며 "그래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털어놓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도전한 것들이 참 많은 엄태구. 복싱도 그 중 하나다.

"복싱 기본자세를 열심히 배우고, 판소리 장단에 맞춘 동작들을 실전에도 쓸 수 있는지 코치님께 물어보곤 했어요. 이런저런 동작을 해보고,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동작을 만들어나갔어요. 저절로 체중 감량이 됐습니다. 촬영 당시에는 거의 뼈밖에 없었어요.(웃음)"


   
▲ 영화 '판소리 복서'의 배우 엄태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판소리 복서'를 촬영하며 배우로서의 마음가짐도 새롭게 다졌다. 엄태구는 "복싱을 하면서 느꼈는데 이걸 매일 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 그래서 선수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선수분들처럼 매일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선수들이 링 위에 오르는 심정은 제가 현장에 가는 심정과 비슷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뒤 어느덧 연기 인생 13년 차를 맞았지만 담금질은 더욱 치열해졌다. 성경을 또박또박 읽으며 발성 및 발음 연습을 한다는 엄태구에게 '판소리 복서'는 격정적으로 몸을 불사른 작품이자 마음껏 연기 열정을 투자한 멋진 추억이 됐다.

"병구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다 보니 병구에게 공감이 됐어요. 실수를 저지르고, 혼자 지내고, 병에 걸린지도 모른 채 계속 둔해지고. 병을 알게 되고 나선 복싱을 하고 싶고. 꿈과 환상 사이 지연이 나오고…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지잖아요. 저도 잊혀질 건데요.'라는 대사를 스스로에게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와닿았고, 복싱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붙었던 것 같아요."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