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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돌아보기] 가죽마스크를 낀 한국경제
투자 외치는 정부…주52시간 근무제 ·탈원전 기업 현실은 '거꾸로'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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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9-10-18 10: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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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촛불만으로는 밥을 못 해먹는다는 걸 마침내 알게 된 것인가? 대통령이 최근 들어 기업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게 부쩍 잦아진 데다, 예정에 없이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하고,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 지원을 누차 강조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상이다. 

17일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대통령은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민간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업투자를 격려하고 지원하며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는 등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 발언에서도 '투자'라는 단어를 열 번이나 반복했다.

대통령은 지난 10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 15일에는 경기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등 대기업을 연이어 방문했으며, 16일에는 미래차 산업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지난 4일에는 경제단체장들을 만나 주 52시간제 보완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가능한 한 기업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던 종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필요한 건설투자는 확대해 나가겠다"는 발언에도 관심이 간다. "건설투자로 경기부양을 하지는 않겠다"는 게 이 정부의 기본방침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인위적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고 대신 국민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건설투자에 주력해온 방향은 견지하겠다"고 전제했지만, 경제 활성화가 절박한 시점에서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정책을 선회하려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SOC(사회간접자본)투자가 적극적으로 펼쳐질 가능성까지 보인다.

   
▲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들어 기업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경제행보가 잦아졌다. 현실은 주 52시간 근무제, 탈원전 등 기업에 타격을 주는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변화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제는 이런 정도의 지시나 각오만으로 식어버린 밥솥을 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며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렸고, 국제통화기금(IMF)은 불과 6개월 만에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0.6%포인트나 내렸다. 올해 1%대 성장을 내다보는 국내외 경제연구소도 한둘이 아니다. 촛불은 밥솥의 온기를 지키지도 못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막연한 백 가지 지시나 대책보다는 한 가지라도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경제정책 선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탈원전 정책 같은 거다. 정부는 2017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올해 전력 구입 단가가 2017년 대비 9.9%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구입 단가가 큰 폭으로 올라 한전은 올 상반기 9285억 원 적자를 내 2012년 이후 최악의 상반기 실적을 기록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인데, 이는 기업에게는 원가부담으로 나타나 경쟁력을 더 약화시킬 것이며, 일반 가계에는 생활물가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다. 체감 경제 온도-밥솥 온도가 더 떨어진다는 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 대통령은 경제단체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제도를 보완하려 한다고 밝혔지만 더 적극적인 의사와 구체적 방침을 보여줬더라면 기업인들은 더 안심했을 것이다.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공무원들을 채근하고, 입법사항은 국회에 협조를 구하는 노력을 보였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친기업 행보가 아무리 잦아도, 친기업 메시지를 아무리 자주 내놓아도 "말로만 경제가 중요하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닐까?  

나는 얼마 전 다른 글에서 한국경제가 아교풀 속의 거품 방울 같아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떠오르고 싶지만 아교풀의 지독한 '점착성(粘着性)' 때문에 수십 일이 지나도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교풀처럼 한국경제가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상상한 것이다.

요즘에는 한국경제가 마스크를 한 채 경주에 나선 마라톤 선수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도 그냥 마스크가 아니라 가죽 마스크를. 다른 선수들은 마음껏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달리는데,  한국경제는 가죽마스크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한발씩 내딛는 힘겨운 경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이다. 이 가죽마스크를 벗겨내는 게 대통령의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대통령에게만 마스크를 씌우고 있는 건가?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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