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일,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다. 이 총리는 24일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어서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면담을 통해 양국 갈등의 핵심 쟁점인 강제징용 배상안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고, 일본 수출규제 철회를 목표로, 내달 22일로 예정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일 이전에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를 이끌어낸다면 이 총리의 방일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겪고 있는 갈등이 어느 한쪽의 큰 양보 없이는 해결이 안 되는 사안인데다 해묵은 역사 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 총리의 방일로 단숨에 큰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정부는 강제징용 배상에 일본 기업이 어떤 식으로도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정부 역시 일본의 수출규제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야 지소미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특히 아베 총리가 최근 한국과의 대화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수출규제 조치 자체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청와대도 판단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최근 기자들에게 “한일관계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다만 일본 수출규제가 100일을 넘겼지만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21일 국정감사에서 지난달 뉴욕 유엔총회 계기 한일 외교장관회담 및 지난주 한일 국장급협의 등을 언급하며 “외교 당국간 각국에서 수차례 협의가 있었다”면서 “주요 현안에서 서로 입장 간극은 아직도 큰 상황”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8년 9월11일 오전(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일 양자회담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따라서 이 총리가 이번에 직접 들고 가는 문 대통령의 ‘친서’에 아베 총리가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해법을 담고 있고, 또 이 총리를 맞이하는 아베 총리가 전향적인 해법을 준비하고 있다면 갈등을 풀 변곡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일본정부의 수출규제가 사실상 총리실 주재로 이뤄진 만큼 그것을 풀 결정권도 아베 총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배상안과 관련해서는 앞서 한국정부는 일본 전범기업과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본 한국기업이 배상을 분담하는 ‘1+1’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일본기업이 어떤 식으로도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일본기업이 배상한다는 것은 한일청구권 협정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문제는 연말쯤 일본기업의 한국 내 자산매각이 시작되면 한일 간 확전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법원 확정판결 후 피해자들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한국 내 자산압류·매각을 신청했고 이 절차가 연말에서 내년초 집행될 예정이다. 자산매각이 현실화하면 일본은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이 총리에게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엿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지난 18일 보도된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묵이식지(默而識之)라는 사자성어를 직접 써서 보여줬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으로 적극적인 관계 개선의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자성어는 1974년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 명가가 돼 살면서도 400년 넘게 성씨를 바꾸지 않은 심수관가(家)의 14대 심수관을 만나 써준 휘호이다. 사토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친동생이다. 일본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총리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은 물밑에서 강제징용 배상안과 수출규제 철회 및 지소미아 해법을 놓고 막판까지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총리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1시간반가량 비공개 만찬을 갖고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 했다고 한다.

또한 이 총리는 이번 방일에서 아베 총리 외에도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 접촉할 계획도 갖고 있다. 특히 이 총리는 도착 당일인 22일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에 있는 ‘고 이수현 의인 추모비’를 찾아 헌화할 예정이다. 이 씨는 2001년 26세의 나이에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승객을 구하다 숨진 양국 우호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 총리가 이번에 낼 수 있는 최대의 성과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지소미아 종료를 동시에 철회하는 데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일 정상은 11월 16~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나 같은 달 25~26일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이 총리가 이번에 아베 총리와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고,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표명하고 오는 정도로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준비된 카드도 없이 이 총리를 대신 보내 면피용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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