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한진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얼마 전 토요일 늦은 밤 건대역 주변을 지나다가 매우 익숙한 풍경을 목격했다. 취기가 오른 시민들과 택시와의 밀당(밀고당기기)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었다. 과정은 뻔하다. 길가에서 열심히 손을 흔드는 시민들에게 다가간 택시가 차창을 빼꼼히 열다. 한두 마디 대화가 오가면 협상의 결과가 가려진다. 택시 문 손잡이를 당기는 시민의 얼굴에는 안도가, 택시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시민의 얼굴에는 짜증이 새겨진다.

그동안 택시 업계는 우버와 카카오카풀, 타다 등 승차 공유서비스가 도입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대규모 장외집회 등을 통해 막강한 세도 과시했다. 정부와 정치권도 택시 업계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기득권을 앞세워 신규 사업의 진입을 막고 있는 택시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말은 듣기가 쉽지 않다.

최근 검찰이 타다를 불법으로 판단하면서 국내 승차 공유서비스는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다. 타다의 케이스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혁신을 무기로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생존에 대한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최근 "타다를 통해 드러난 전방위적 압박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내놨다.

혁신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은 사방에 널려 있다. ‘샌드박스’와 ‘네거티브 규제’ 등 말은 거창하지만 업계가 느끼는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도 문제다. 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안된다는 논리가 기업들의 생명줄을 흔들고 있다.

   
▲ 서울 시내 거리에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 차량과 택시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술과 서비스의 가치는 정부와 기득권 집단이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필요하면 살아남고, 아니면 사장되는 것이 순리다. 시장과 소비자의 공감이 절대적인 셈이다. 그러나 국내의 혁신 서비스는 시장의 평가를 받기도 전에 재단되고 있다.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고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있다.

시장과 소비자의 공감의 커지면 믿음이 되고, 그 기술과 서비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세계 무대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국가 경쟁력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혁신과 도전을 앞세운 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름조차 낯설었던 기업들이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조업에 대한 비중이 여전히 크다.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 경쟁력도 뒤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영전략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2019년 세계 50대 혁신기업 순위’에서 삼성전자가 5위, LG전자 18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 달 1일 창립 50주년이 되는 삼성전자, 1958년 금성사란 이름으로 탄생한 LG전자가 ‘혁신기업’ 전선에서 버티는 상황이다.

삼성, LG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정치권의 의지와 리더십이 절실하다. 신산업에 대한 확실한 교통정리도 필수다. 최소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제대로된 시장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오디션 무대는 만들어줘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받아들이지 퇴출시킬지는 소비자 평가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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