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최대다국적기업 대우 분해후 기업가정신 실종, 저성장터널 신음

   
▲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아바타라고 저번 글에서 필자는 밝혔다. 유례없는 고성장이 펼쳐지던 1960~70년대의 시대정신을 공유했던 핵심 파트너란 뜻인데, 박정희에게는 속 깊은 친구가 별도로 있었다. 두 살 연하의 시인 구상(具常, 1919~2004)이 그인데, 6‧25전쟁 직후 군인과 문인 사이를 넘어선 교유를 시작했고, 평생을 막걸리 친구로 지냈다.
 

군인은 대통령이 됐고, 시인은 한국문단의 중진으로 성장했으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구상은 좀 별났다. 군인 박정희, 정치인 박정희의 모든 걸 알고 있었으나 증언-기록을 생전에 남긴 바 없다. 학계의 요청도 고사한 채 둘 사이의 우정을 고스란히 무덤에 가지고 갔다. 2004년 폐질환으로 사망했던 그는 그러나 생전에 간혹 편안한 자리에서 속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박정희를 품을 만한 그릇이 대한민국에는 없어. 내 친구 박정희는 비유하자면, 큰북이야. 작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나고, 크게 치면 큰 소리가 나는 그런 사람이지.”

박정희와 김우중은 큰북…크게 쳐야 큰 소리 나온다

그 말이 맞다. 사람 평가는 비슷한 크기의 안목과 시야를 가져야 비로소 가능하다. 박정희가 그러하듯 그의 분신인 김우중도 마찬가지이고, 역사 속의 큰 인물에 대한 포폄(褒貶)은 시야 좁은 난쟁이들이 자기들 잣대를 들이대고 설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라 살림을 망치는 평등주의 이념인 경제민주화의 망령에 사로 잡혀서는 더 더욱 보이는 게 없다. '김우중 회고록 새로 읽기'라는 제목 아래 지난 주 필자는 두 차례 글을 이 지면에서 썼는데, 그건 요즘 세상과 사람들의 시야가 너무 좁은 게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이병철, 정주영과 함께 김우중은 20세기 경제 영웅의 한 명이 분명한데, 그는 거꾸로 반(反)영웅의 한 명으로 끌어내리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으려는 못난 무리들의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반기업심리 탓이 크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성공을 깍아내리려는 반대한민국 정서도 무시 못한다.
 

안타깝게도 IMF 사태와 대우그룹 해체를 보는 고정관념에 의미있는 변화가 생겼다는 징후는 현재까지 없지만, 그래도 서점가에서는 김우중 바람이 불고 있다.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베스트셀러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대우 신화가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올려져있는 독자서평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회고록은 비겁한 변명"이라는 지적과 함께 분식회계와 추징금 미납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중이란 항용 그런 법이다.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부실이 쌓여 금융위기를 당했는데도 구조조정을 게을리 해 망했다는 평균적 인식의 틀(김대중 정부가 심어준 프레임 탓이크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우중의 큰꿈은 비슷한 꿈을 품어본 사람에게만 보인다

독자서평 중에는 대우가족이었다는 분들의 글도 눈에 뜨이던데, 사람 김우중에 대한 증언은 대우 출신의 디자이너 이명희(58)씨를 통해 필자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디자인이라는 업무상 자주 김 회장과 대면할 수 있었고, 그가 홍콩에 근무할 때는 김 회장-정희자 여사 부부를 모시고 식사도 했다는데 그녀가 본 김 회장은 무시무시한 일벌레, 놀라운 비전을 가졌던 분만큼이나 고독했다. 
 

   
▲ 김우중 전 대우회장은 정주영 이병철회장과 함께 20세기 경제영웅이었다. 신흥국 최대 다국적기업을 일궜다가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김우중회장은 박정희처럼 큰 북이었다. 김회장이 추구했던 경제영토확대는 과거의 꿈으로 덮어 둘수는 없다. 김우중이란 큰 북을 크게, 제대로 치게 하는 게 저성장에 허덕이는 한국경제의 활로가 될 것이다.

"장남(선재)이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무렵이니까 1990년 무렵인데, 경기도 안성의 장지에 대우 간부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어요. 그때 회장님은 사람들이 없는 저쪽에 혼자 우두커니 허공만 바라보고 한참을 서있었어요. 자식을 가슴에 묻는 자리, 너무도 외로운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잠시 멈춘 채 당신 삶을 반추해보셨을텐데…. 그래서 한 줄도 허투로 읽을 수 없었던 게 <김우중과의 대화>인데, 그건 회장님이 품었던 꿈의 크기에 근접해봤던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고 봐요. 쉽게 말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돈을 많이 번 사람이란 평가는 내게는 찬사 아닌 모욕"

그가 보기에 김우중 회장은 의외로 단순한 사람이다. 너무 단순해서 거짓말하거나 사리사욕 따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야심이 컸지만, 야심의 종착역은 국가발전"이라는 <김우중과의 대화>의 분석에 그녀가 공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가 유난히 김우중에 꽂히는 이유도 박정희 책을 쓰며 그의 뱃속에 들어가 봤던 경험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어쨌거나 돈 욕심없는 김우중의 속마음은 150만 권 팔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도 반복해 등장한다.
 

"나 자신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 사업을 키우고 세계시장을 누비며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 아니다. 만일에 그랬다면 나는 지금쯤 큰 부자가 되었겠지만, 정신적으로 몹시 공허한 상태에 빠져버렸을 것이다."(142쪽)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뛰어다니며 일한 대가가 고작 재산의 확대에 불과하다면, 나처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훗날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지는 않다. 그건 찬사가 아니라 모욕이다."(178쪽)
 

그런 생각의 바탕은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의 영향이다. 어머니께서 평생 실천했던 기독교의 봉사와 희생이 경영철학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말로 엄친아는 아니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 따르면, 6.25전쟁의 와중에 뒷골목의 세계도 잠시 경험했고, 1년을 놀다가 입학했던 경기고에서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문제아 김우중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은 고2때 만난 담임교사 때문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담임 이석희 선생님은 불량학생 김우중을 부반장에 규율부장에 임명했다. 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켜봐주는 스승과의 만남은 본인의 표현대로 "김우중 생애의 결정적 사건"이었다.(훗날 중앙대 총장이 된 이석희 선생님을 김우중은 대우재단 이사장으로 모셨다.)
 

넓게 보면 김우중을 만든 것 파란의 현대사였다. 6.25전쟁 때 부친이 납북되고, 형님은 입대하는 바람에 졸지에 어머니와 두 동생을 책임지는 소년가장 신세가 됐다. 어쩔 수 없어 피난지 대구에서 신문을 팔았던 15세 소년 김우중은 그만큼 일찍 세상에 노출됐고, 흔들렸으나 끝내 넘어지진 않았다.

피난지 대구에서 신문팔던 15세 문제아 소년가장

그랬기 때문에 1950년대 중반 연세대에 다닐 때 큰 꿈을 키웠다. 밤늦게 도서관에서 나와 장충동 집까지 걸어가는 밤길에도 "세계가 내 것만 같았고, 우주라도 싸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성취감을 맛봤고, 그게 훗날 대우신화의 원동력이 됐다. 나이 갓 서른 살에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의 설립이 세계경영을 호령하는 '김기스칸'의 탄생으로 연결됐다. 김우중은 단군 이래 가장 경제영토를 넓힌 영웅이 분명하다.
 

그래서 IMF와 대우그룹 해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대우 해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국 최대의 다국적기업의 공중분해를 뜻한다. 그렇게 해서 이후 대한민국 경제가 좋아졌고, 국민들은 행복해졌는가?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정경유착, 대마불사, 투명성 부족의 병폐를 바로 잡고 새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15년인 지금 각종 경제지표는 도무지 앞이 안 보인다.
 

대한민국이 낳은 걸출한 경제영웅 한 명의 날개가 꺾였고, 이후 대한민국은 평균 8% 내외의 고성장 대신에 3% 내외의 저성장 시대를 걷고 있다. 사회는 양극화에 찢기고 있다. 개발연대 고공비행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깨우침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깨우침의 하나가 김우중이라는 큰북을 크게, 제대로 치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필자에게 증언을 해준 디자이너 이명희 씨의 증언도 그쪽이다.
 

"그룹 해체의 수모를 겪은 회장님이 지금껏 살아계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책의 행간에서 나는 그 분이 그동안 얼마나 분노와 억울함을 삭히고 살아오셨는지를 가감없이 느껴졌지만, 15년 뒤 이 책을 펴낸 것은 우리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