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열흘 남짓 남은 가운데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압박이 지속되고, 일본은 요지부동의 태도를 보이고 있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국무부 고위관료들의 방한이 잇따르면서 우리정부는 내심 중재 역할을 기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오히려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인도·태평양전략 동참을 내세워 한국정부를 고도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미국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 마크 내퍼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가 5일 동시에 방한한데 이어 오는 15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한다.

우리정부는 지난 2016년 11월23일 체결한 지소미아를 3년만인 오는 23일 0시를 기해 종료한다는 공문을 일본에 전달한 바 있다. 일본이 수출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안보협력상 신뢰를 상실했다고 밝힌 만큼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10일에도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우리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한일관계가 어렵게 된 근본 원인은 일본측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한일 양국이 중요한 동맹이라서 어떤 협력을 한다면 우리정부로서는 환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장관이 지난 8월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청와대에서 진행된 여야 5당 대표와의 만찬 회동에서 “지소미아는 원칙적인 것이 아니냐”며 “정부가 어렵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으니 국회도 초당적으로 협력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소미아 파기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소미아에 일종의 호흡기를 달아놓는 방안인 ‘지소미아 종료 연기론’을 강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이 현재 사태를 동결하기 위해 지소미아 종료일을 연기하는 절충안을 한국에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소미아 연기 검토를 해본 적이 없느냐’라는 질문에 “현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면서 실제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까지 남은 90일동안 한일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가 요지부동인 것을 볼 때 정부의 생각처럼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리정부는 현재 “지소미아는 한미동맹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문 대통령은 야당에게 초당적 협력을 당부하면서까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종료 시한을 1주일여 남기고 방한하는 에스퍼 국방장관의 메시지가 주목된다.

에스퍼 장관은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한다. 이를 계기로 지소미아 종료 해법 모색을 위한 고위급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7월 말 취임한 에스퍼 장관이 8월 첫 방한 때에는 한국과 일본을 같이 방문했지만 이번 순방에서 일본이 빠졌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일본은 놔둔 채 한국만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에스퍼 장관도 지소미아를 공식 언급하는 대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리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도 전망된다. 따라서 우리정부가 입장을 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결국 지소미아 종료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 한미동맹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편, 에스퍼 장관의 방한으로 15일 한미 국방장관 면담에 이어 한국 국방장관과 일본 방위상이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만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한일 간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중재안 관련 실무급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진전을 이뤘다는 분석도 있어 마지막 기류 변화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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