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 "국회 차원서 선택적·탄력근무제 보완 입법해야"
HSBC·골드먼삭스 "주 52시간 근무제, 한국 경제성장률 깎어먹어"
   
▲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50인 이상 300인 이하 규모의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유예한다고 밝힌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캡쳐=YTN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1년 늦추고, 경영상의 이유로 제도 적용 제외가 가능하다"고 발언한데 대해 중소기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내후년인 2021년부터는 별도의 조치가 없을 경우 50인 이상 299인 이하의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격 적용돼 중소기업계가 또 한차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이 장관은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회의 노동법 개정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적용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그는 "300인 이상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선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됐지만 50인 이상 299인 규모의 중소기업의 경우 해당 제도에 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내년 경기 상황이 불투명한 와중에 정부가 1:1로 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계가 탄력근무제 등의 개선을 기다리고 있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없게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며 "중소기업의 규모에 따라 차등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에 노력하면 우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평시 주 52시간 근무가 가능한데 일시적으로 업무가 증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엔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것"이라며 "시행규칙 개정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의 브리핑에 중소기업계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편으론 주 52시간 근무제가 미뤄졌다고 해서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고용노동부는 기업 규모에 따라 100~299인 이상 기업에는 계도기간을 9개월 부여하고, 필요 시 3개월을 추가해준다는 입장이다. 50~99인 사업장엔 계도기간 1년에 6개월을 추가한다고 했지만 중소기업계는 이후 후속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사회 분위기상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거센 파도를 이겨낼 수는 없다"면서도 "특별연장근로인가 인정범위를 일감이 몰릴 때나 경영상 문제가 있을 경우까지 확대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에는 우선 다행이라고 여긴다"고 밝혔다. 이어 "고용부의 발표는 국회에서 노동법 개정이 안 될 경우를 상정하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선택적 근로제와 탄력근무제 확대에 관한 보완 입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부연했다.

   
▲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에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정한성 신진화스너공업 대표이사·이승길 아주대학교 교수·권기섭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한용희 한신특수가공 부장 등이 자리한 모습./사진=중소기업중앙회


이와 관련,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서승원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모두발언에서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유예한다고 발표했지만 근본 해법은 되기 어렵다"며 "현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히 보완 입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 영향 분석 및 정책과제'로 발제한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중소기업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3조3000억원에 달하고, 중소기업 근로자 1인당 월평균 33만4000원 가량 임금감소가 우려된다"며 "근로시간의 효과적인 단축을 위해선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어야 한다"며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주52시간 근무제를 둘러싼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인력수급·추가비용 부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 생산성은 그대로 둔 채 노동 비용만 증가하면 중소기업의 위기로 직결된다"며 "생산성의 판단기준을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정착을 위해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경과기간 부여·노사합의 시 근로시간 탄력운용 등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등 기반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자 자격으로 나온 정한성 신진화스너공업 대표이사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현장 애로를 호소했다. 정 대표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시기를 1년 이상 유예하고, 주(周) 단위로 제한하고 있는 연장근로제도를 일본처럼 월(月) 또는 연(年) 단위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길 아주대학교 교수는 "산업구조 고도화, 근무형태 다양화 등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탄력·선택적 근로제 △특별인가연장근로 △재량근로시간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현장 안착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 현장지원단 운영과 탄력근로법안의 정기국회 통과 등 제도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 HSBC 은행과 골드먼삭스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우려한다는 내용을 담은 19일자 미디어펜 카드뉴스./사진=미디어펜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연이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는 형국이다. 영국 HSBC 은행은 최근 '한국의 성장률 둔화'라는 제하의 비공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성장 둔화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골드먼삭스 역시 지난 8월 비공개 보고서를 통해 "엄격하게 설계된 주 52시간제가 총생산시간을 감소시켜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0.3%p 깎아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