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핵심 엔진은 기업…왜 못 죽여 안달인가
'포춘'지 500대 기업에 우린 16개…30개로 늘리자
   
▲ 조우석 언론인
신간 <한강의 기적을 세계로 대동강으로>(좌승희·이태규 공저, 기파랑 펴냄) 서평에서 시장 만능주의의 주류경제학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와 달리 "시장도 중요하지만, 정부도 중요하며 나아가 시장을 확대하는 기업의 역할이 중요"(19쪽)하다는 게 신간의 입장이고, 그래서 시장-정부-기업의 삼위일체 경제론이라고 언급했다.

저자의 말대로 자본주의를 막연하게 시장경제라고 말하지 말고, 이젠 기업경제라고 명명하자는 제안에 나는 전폭 지지한다. 책에 얼핏 소개되는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을 유심히 보라. 남미를 통틀어 500대 대기업은 10개 남짓이다. 숫자도 미미하지만 대부분 정유회사다.

기술력을 가진 제조회사는 없다는 뜻인데,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우리나라 500대 기업은 몇 개일까? 당당 16개다. 삼성전자(글로벌 순위 15위), SK홀딩스(73위), 현대차(94위)를 포함해 SK하이닉스, LG전자, 포스코, 한전, GS칼텍스, 현대모비스 등이 득시글거린다. 사실 그 나라에 500대 기업이 몇 개인가가 곧 그 나라 경제규모를 말해준다.

   
▲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도 경제 주체로서의 기업의 존재를 잘 인식 못했지만 하이예크(왼쪽), 미제스(가운데), 슘페터(오른쪽) 등 내로라는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이예크의 경우 태초에 로고스가 존재하듯 "태초에 시장이 존재했다"고 선언했지만 막상 기업을 잘 몰랐다. 창조적 파괴란 말로 유명한 슘페터도 마찬가지였다. 기업경제론을 개진하는 좌승희 경제학이 주목 받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제 정신이 아닌 우리

랭킹으로 보면 미국, 중국이 1,2위를 다투고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에 이어 우리가 7위다. 이런 상황에서 막연한 시장경제란 용어 대신 기업경제란 말이 어울릴 법한데, 차제에 주류경제학의 맹점을 더 짚어야 한다. 그들에게 기업이란 생산요소의 기술적 결합인 생산함수일 뿐이다.

너무 추상화시킨다는 뜻인데, 그래서 기업의 역동성과 창의성에 대해서는 학문적 논의에서 숫제 제외시킨다.(74쪽) '반쪽 경제학'이란 말은 그래서 나오는데, 더 큰 문제는 우리다. 왜 지금도 ‘박정희 반대로’를 외치다가 나라가 망조 드는 걸 자초하는가? 성장정체와 양극화의 덫에 빠진 채 경제민주화를 주구장창 외치고, 심지어 포퓰리즘을 능사로 알지 않던가?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노조의 경영 개입을 방조하더니 전투적 노조인 민노총을 국정의 파트너 취급을 한다. 그리고 주주행동주의(스튜어트쉽 코드 등)의 기치로 경영에 간섭하니 투자가 활성화될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해괴한 가짜 성장론은 또 뭔가? 문재인 정부를 때리자는 것만은 아니다.

성찰은 더 깊어야 한다. 즉 대기업 죽이기가 30년 세월을 넘겼다. 그건 1980년대 후반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집어넣은 이후부터 그랬다. 이후 우린 대기업 죽이기로 작정했다. 재무구조에서 소유구조에 이르는 경영활동에 간섭하는 집중규제를 시작했는데 박정희 방식과 정반대다. 그걸 균형발전이라고 포장하더니 결과는 참담하다.

급기야 우린 1~2% 성장에 목맨다. 기업경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500대 대기업이 20개 더 있다면 국민소득은 현 3만 달러에서 6만 달러로 치솟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발등에 발을 찍는 걸 개혁과 선진화라고 여전히 착각하며 산다. <한강의 기적을 세계로 대동강으로>에 이런 말이 등장한다.

   
▲ 좌승희 박정희재단 이사장(왼쪽)은 "자본주의를 막연하게 시장경제라고 말하지 말고, 이젠 기업경제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한다. 오른쪽은 좌승희 박사의 신간 '한강의 기적을 세계로 대동강으로'. /사진=미디어펜

대기업 숫자가 곧 국가경쟁력

"한국 대기업의 문제는 여전히 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대기업 수가 많아지고 국내투자가 활발해야 내수도 활성화되며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 모두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137쪽)

왜 이런 자명한 사실을 외면한 채 우린 박정희 사후 대기업 10여 곳을 개혁의 이름 아래 해체시키는 자해(自害)도 마다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그룹이 해체된 대우, 쌍용, 동아, 고합, 진로, 동양, 해태, 신호, 뉴코아, 거평, 새한 등이 그것 아니었던가? 자본주의를 시장경제라 하지 말고, 기업경제라고 명명하자는 건 경제학의 담론을 떠나 실은 죽고 사는 문제다.

신간 <한강의 기적을 세계로 대동강으로>에서 한국경제 활로의 처방의 암시를 받을 수 있다고 나는 거듭 판단한다. 첫 글을 아담 스미스로 시작했으니 그 얘기로 마무리 짓자. 아담 스미스는 그렇다 쳐도 하이예크, 미제스, 슘페터 등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통념이 다시 깨진다. 하이예크의 경우 태초에 로고스가 존재하듯 "태초에 시장이 존재했다"고 선언했다. 시장 지상주의자인 그에게 시장이란 자생적 질서의 표본이었다. 그는 경제 주체로서의 기업을 잘 몰랐다는 얘기다. 실은 창조적 파괴란 말로 유명한 슘페터도 그랬다. 창조적 파괴를 수행하는 기업가의 역할을 강조하던 그가 막상 기업 얘기를 제대로 한 바 없다.

외려 "대기업이 등장하면 자본주의는 소멸한다"며 마르크스 비슷한 예언을 했을 뿐이다. 경제사의 그런 숨은 진실은 좌 박사의 10여 년 전 저술 <신국부론>(굿인포메이션)에 설핏 보이는데, 이후의 저작 <발전경제학의 새 패러다임>(율곡출판사) 등에서 "시장경제란 말을 이제는 기업경제란 용어로 바꾸자"는 대담한 제안으로 발전한 바 있다.

그게 드디어 '한강의 기적'을 경제학의 일반이론으로 끌어올리고, 주류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큰 그림으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열고, 현대사의 진실에 충실한 책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 10만 권이 팔리면 경제위기가 즉시 종식된다는 게 판단을 재확인한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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