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23일 0시 종료’를 예고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가 6시간여 남긴 상황에서 연장되는 극적 반전을 맞았다. 

지소미아 종료라는 파국을 맞은 것은 다행이지만 한국은 일본에 지소미아 유지라는 ‘현찰’을, 일본은 수출정책 대화라는 ‘어음’을 주고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22일 합의해 발표한 내용의 골자는 ‘한국정부가 지소미아를 조건부로 연장하면서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복원과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위한 한일 간 대화를 시작한다’이다. 

정부와 여당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지소미아 종료’라는 카드로 해결할 출구를 마련한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외교적 승리라고 자평하고 있다. 당초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도 “강제징용 문제가 안 풀리면 수출규제도 못 푼다는 일본의 연계전략에 우리는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를 연결하는 전략으로 맞받았고, 그 결과 (일본의) 연결고리를 깼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한일 정부간 합의는 한일갈등의 ‘뇌관’이랄 수 있는 ‘징용 배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지소미아 종료라는 압박을 벗은 일본이 백색국가 복원과 수출규제 조치를 지속시킬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줄곧 “지소미아와 수출관리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해왔다.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4일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기념촬영 전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특히 청와대에서 지소미아 종료 발표가 있던 같은 시간 일본 경제산업성도 한국과 관련한 문제를 발표했지만 “한국에서 외교 루트를 통해 WTO 제소 프로세스를 중단한다고 통보받았고, 한국 측이 수출관리 문제에 대한 개선 의사가 있다고 판단해 과장급 준비를 거쳐 국장급 협의를 진행해 양국 수출관리에 관해 재확인할 방침”이라고만 밝혔다.

경산성은 또 “현재 실시하고 있는 3가지 품목에 대한 개별심사 허가는 (양국 협의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한국의 백색국가 복원에 대해서도 “지금 시점에서 그룹 A(화이트리스트 국가)에 되돌리는 것을 전제로 협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가 전날 한일 양국 정부가 양국간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과 상반되는 행태를 일본정부가 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한일관계 문제에 적극 관여해온 미국의 압박이 지소미아 파국을 막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들도 대체로 막판 미국의 압박이 이번 효력 정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면서 향배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이 미국의 압박에 따른 정책 재고로 지소미아 종료를 미뤘다”고 보도했다. WP는 “한일 양국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한 격렬한 분쟁을 해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양국 간 갈등이 끝난 것이 아니라 조건부로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했다.

전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 직후 방일길에 오른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23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일본이 어제 발표한 수출관리정책 대화,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재검토와 함께 일시 봉합된 징용 배상 해법에 대한 협의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복원과 수출규제 철회,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의 완전한 해제가 이뤄지려면 징용 배상 문제가 풀려야 한다. 이를 위해 내달 말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열린 뉴욕 유엔총회 계기 양자회담 이후 15개월만에 한일 정상이 마주앉는 것이다. 지금 한일 간 문제는 양국의 해묵은 과거사 문제가 무역갈등으로 심화된 만큼 아베 총리를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간 신뢰 회복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청와대가 발표한 한일 간 협의 내용인 “일본기업이 허가를 받아 한국에 규제품목을 수출해 신뢰성이 쌓이면 3년정도 범위 내에서 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처럼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이제 와서 ‘판결’과 ‘반일감정’으로 풀 것이 아니라 정교한 외교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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