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위기감 속 돌려막기 하는 심정
갈등 장기화 시 악영향 더 커질 수 있어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 결정이 내려지면서 기업들이 한숨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5개월여간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라인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장기 악재에 대한 리스크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에도 일본 정부는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3개 품목에 대한 개별 심사를 지속할 방침이다.

   
▲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3개 품목은 대일의존도가 높다. 지난 7월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생산라인 중단’ 등 악영향이 확산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의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당 제조사들이 재고관리와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 노력 등에 집중하면서 손실을 최소화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발 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돌려막기식 대응으로 버티고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년부터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후 가열되는 한·일 양국의 진실 공방이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제조사들은) 잇몸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기업들의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갈등이 심화될수록 일본에 비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화학공업 제품을 중심으로 양국이 수출규제를 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GDP 손실이 일본의 GDP 손실보다 크다.

보고서는 한·일 갈등이 심화될 경우 양국은 상대국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자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하기 위해 수출규제품목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수입규모가 1000만달러 이상인 품목에 △한국의 대일본 수입 비중이 70% 이상 품목(생산차질 여부 판단기준) △일본의 대한국 수출 비중이 30% 이하 품목(자국 산업의 피해 여부 판단기준), △한국의 수입 대비 수출 비중이 50% 이하(주력 산업 여부 판단기준) 등의 기준을 적용하면  일본이 수출 규제를 고려할 가능성이 높은 품목은 14개, 한국은 18개로 조사됐다.

일본의 경우 수출규제 기준을 충족하는 품목은 화학공업생산품이 10개, 플라스틱과 그 제품이 2개, 광학의료 및 정밀기기, 광물성 생산품이 각각 1개씩 이다. 이미 수출규제를 받고 있는 3개의 품목 이외도 블랭크 마스크, 초산셀룰로우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생산 차질을 유발하는 품목과 티타늄 등 우주, 항공분야에 생산차질을 유발하는 품목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 철강제품 9개, 화학공업제품 6개, 광슬래그 등 기타 제품 3개로 총 18개를 수출규제품목으로 고려할 수 있으나 일본 산업에 타격을 줄 제품은 전무하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모두 상대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GDP는 한국이 0.25~0.46%, 일본이 0.05~0.0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만약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가 속한 전기전자산업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GDP 손실은 최고 6.26%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한일갈등이 심화될수록 일본에 비해 한국의 GDP 손실이 상대적으로 큰 만큼 국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은 물론 민간 외교력까지 총동원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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