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국내 최초 민간 개방한 '칠궁', 현장 답사 통해 조선·근현대사 확인 가능
휴궁일 (일·월요일) 제외한 화~토요일 매일 7회씩 개방
[미디어펜=장윤진 기자] 조선시대 당파 싸움 100년의 희생양이자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사후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그 모습은 지난 1월부터 국내 최초로 민간 개방한 '칠궁'에서 확인 가능하다. 

   
▲ 지난 16일부터 24일까지 주말(토·일) 4일간만 진행한 '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 포스터 /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지난 16일부터 24일까지 주말(토·일) 4일간(1일 2회, 오전 10시, 오후 2시)만 전문 해설사의 안내로 도보답사를 하며 칠궁의 역사와 해당 인물에 대한 특별 해설도 들을 수 있는 '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 이야기'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였다.  

이에 본지는 지난 24일 오전 특별 답사에 참가했다.

이른 오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칠궁을 관람하러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 관람객들과 기자는 경복궁 관리소 소속 이명지 실무관의 해설을 시작으로 칠궁 안에 들어섰다. 

현재 칠궁에는 조선시대 역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이들을 낳은 생모이면서 왕비가 아닌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 칠궁 내부 평면도 /사진=미디어펜


일곱 신위는 저경궁(선조의 후궁,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사당), 대빈궁(숙종의 후궁,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사당), 연호궁(영조의 첫째 아들 진종(추존왕)의 생모 정빈 이씨 사당), 선희궁(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사당), 경우궁(정조의 후궁,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사당), 덕안궁(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 사당) 등으로 왕을 낳은 조선 일곱 후궁의 제사단이 존재한다. 

이날 전문 해설자로 참석한 이 실무관은 이에 대해 "본래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를 위해 세운 ‘육상궁’만 있었지만 이후 저경궁(선조의 후궁,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사당)이 육상궁 내로 편입되고 차례로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이 인전 되면서 이를 통틀어 ‘서울 육상궁(사적 제149호)’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1744년(영조 20년)에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의 육상이라는 묘호를 올렸고 1753년(영조 29년)에 궁으로 승격하여 육상궁이 되었다"며 "영조는 재위 기간 중 200여 차례나 육상궁을 방문하였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사당 중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대빈궁'이었다. 

   
▲ 경종의 모친 희빈 장씨의 신주를 모신 '대빈궁' /사진=미디어펜


대빈궁은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경종은 1722년(경종2년) 희빈 장씨의 사당을 경행방으로 옮겼다. 1908년에는 다시 육상국 안으로 편입됐다. 

희빈 장씨는 가장 낮은 궁녀에서 숙종의 총애를 받아 한때 왕비가 되었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집권하면서 정치적 이유로 희빈 작호를 받고 후궁으로 강등을 당하는 등 수모를 겪은 바 있다.  

그래도 현재는 한때 왕후였던지라 그 예우를 다해 1908년에 육상궁 중앙 가장 좋은 자리에 사당이 위치해 있다.  

반면 본래 육상궁의 주인이자 영조의 생모 영빈 이씨의 '육상궁' 사당은 희빈 장씨와 달리 영조의 후궁이자 진종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와 한 건물 안에 합사됐다.

서인과 결탁해 희빈 장씨를 몰아내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숙빈 최씨의 호사는 현대에 와서 며느리와 합사되는 굴욕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기자는 칠궁을 돌아 본 뒤 경북궁의 북문 신무문을 거쳐 김옥균 집터인 정독도서관에 도달했다.

조선 초기에는 이 고개 주변에 붉은 흙이 많아 고개 이름을 홍현이라 불렀으며 궁중의 화초를 키우던 장원서가 위치했다고 한다. 

   
▲ 김옥균 집터에서 이명지 실무관이 김옥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조선 근대에 와서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도자 김옥균의 집터로 사용되다 1900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고등학교가 위치하던 자리였고 현재는 정독도서관의 자리로 사용되고 있다. 

그 다음 행선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좌측에 위치한 종친부였다. 

종친부는 조선 역대 임금의 어보와 어진,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고 종실 제군의 관혼상제 등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된 종친부의 모습 /사진=미디어펜


이 실무관은 이에 대해 "지난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된 두 개의 목조 건물은 1981년 그 자리에 국군기무사령부가 들어서 테니스장 건립 등의 이유로 종루구 화동 정독도서관에 이전했다가 지난 2013년 30년 만에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본래 대빈궁 터이자 현재 종로세무서 자리를 방문했다. 현재 낙원동 58번지 종로세무소 자리는 대빈궁이 있었던 곳으로 바로 장희빈을 모신 곳이다. 

이후 1913년 경성측후소가 설립되었다가 1930년대에 경성 시내 3대 요정 중 하나인 천향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1963년에 종로세무서가 들어섰다.

   
▲ 지난 24일 '표적따라 듣는 칠궁이야기' 투어의 동선. /사진=문화재청 제공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 '표석 따라 듣는 칠궁 이야기'는 조선·근현대사를 확인하고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당을 어떻게 짓고 운영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특별 답사에 참가한 한 관람객은 "늦가을에 역사를 함께 들으며 방문한 옛 궁터의 이미지는 평생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 관계자는 "지난 1월 궁능유적본부 출범에 맞춰 경복궁 내 활용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경복궁과 인물, 경복궁과 조선왕릉을 하나의 이야기로 잇는 특별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칠궁에서는 매년 10월 넷째 주 월요일에 '칠궁제'를 지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또한 지난 1월부터 휴궁일(일·월요일)을 제외한 화~토요일 매일 7회씩 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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