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토 켜켜이 쌓고, 1.5m 돌로 매장주체부 만들어
   
▲ 창녕 교동과 송현동 39호분 조감도. 위쪽 중앙이 39호분이고, 아래가 63호분. 63호분 옆은 각각 38호분과 62호분 [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비화가야 지배자들의 묘역인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도 대형 무덤에 속하는 39호분 축조기법이 온전히 드러났다.

사적 제514호로 지정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무덤을 조성했는데,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이다.

봉토 지름이 27.5m, 높이가 8m인 39호분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89호분, 7호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무덤으로,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가 묻힌 것으로 판단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5세기 중.후반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39호분과 주변 고분 발굴조사 성과를 28일 공개했다.

63호분 봉토 위에 중첩해서 축조한 39호분은 빗물 등으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를 사용하고,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았으며,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아 마감했다.

길이 1m·높이 0.6m인 세부 성토 단위가 확인됐는데, 가장자리에서 점토 덩어리가 발견됐다.

연구소는 "점토는 흙의 응집력을 강화하고, 다른 재료의 유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러한 기법은 울산 약사동 고대 제방 유적에서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는 약 1.5m인 큰 돌을 세우거나 눕혀 조성했고, 규모는 길이 6.9m, 너비 1.6m, 깊이 1.7m이며, 벽면과 천장 일부에 주칠을 했다.

인접한 63호분처럼 2.5m 길이 뚜껑돌 8매를 놓고 깬돌로 틈을 메운 뒤, 점토를 얇게 덮었으며, 무덤 둘레에 쌓는 돌인 호석(護石) 남동쪽 구간에는 약 2m 간격으로 큰 항아리인 대호(大壺)를 묻었다.

연구소는 39호분 매장주체부 건축 양식에 대해 "경북 성주 성산동 고분군 등과 일본 나가노 기타혼조(北本城) 고분 등지에서도 발견된다"며 "비화가야와 주변국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봉토 지름이 8m인 62호분에서는 천칭처럼 잔 두 개가 있는 토기와 잔 6개 등잔형 토기, 주전자형 토기 등 상형토기를 비롯해 유물 400여점이 출토됐다.

큰 토기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 토기를 포개거나 열을 지어 놓는 매납 양식도 확인됐고, 또 다른 소형분인 38호분에서도 토기가 나왔다.

연구소 관계자는 "상형토기가 창녕 지역에서 나타나기는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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