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44세에 프랑스行, 한국인 최초 '살롱 드 메' 초대된 서양화가
[미디어펜=장윤진 기자] "그림이란 삶의 축적이자 나의 인생" 남관(1911~1990)

'한국 추상회화 선구자'로 꼽히는 남관은 1955년 44세 나이에 프랑스로 떠난다.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하고 파리에서 13년간 활동한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활동한 국내 작가다.

   
▲ 남관 작가 /사진=현대화랑 제공


1911년 경북 청송 산골에서 태어난 남관은 1925년 일본에 건너가 장년이 될 때까지 20여 년을 일본에서 생활했다. 

남관은 1952년과 1953년 도쿄 '마이니치' 신문사 주최의 제1, 2회 일본국제미술전람회(도쿄비엔날레)와 프랑스의 '살롱 드 메 도쿄'전을 관람하며 프랑스 파리를 향한 의지를 확고히했고 1955년 1월 파리에 정착한다.  
  
1958년 한국인 최초로 '살롱 드 메'에 초대된 후 1959, 1961, 1964, 1966년 연속 초대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는다. 1966년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피카소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남관은 파리에서 아카데믹한 화풍을 벗어나 상형문자와 인간상이 어우러진 화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에는 콜라주와 데콜라주(콜라주 방식을 역이용해 화면에 붙인 재료를 떼어내 그 부분에 다시 색을 칠하는 기법) 등의 표현기법과 청색을 주조로 한 색채의 조화를 추구했다.

   
▲ 남관, 삐에로 가족 85-A, 129X159cm /사진=현대화랑 제공

 
그는 남다른 열정으로 33년간 해외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고, 자신만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1968년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화단을 둘러본 후 병든 몸을 추스르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터를 잡는다.

남관은 한국 최초 100억 대 화가 김환기와도 인연이 깊다.   

남관이 19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추상화를 꽃피웠다면 김환기는 1970년대 뉴욕에서 추상화를 완성했다. 50세의 나이에 뉴욕행을 감행한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와 보편적 미의 형식을 갖춘 푸른색의 점화를 선보였다. 남관은 이에 "김환기 씨의 작품은 대단합니다. 원로 작가가 이렇게 대담한 변모를 꾀했다는 것은 고귀한 일입니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김환기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은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의 대목 중 한 구절이다. 남관의 부인이 시인 김광섭의 딸이자 소설가 김진옥이다. 이런 점들을 미뤄보아 남관과 김환기의 인연은 깊었고,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대들보 역을 했다. 

1974년 뉴욕에서 소천한 김환기의 소식을 접한 남관은 1974년 7월 27일 동아일보에 '김환기 형의 영전에'라는 글을 기고하며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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