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장윤진 기자] '근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Rene-François-Auguste Rodin, 1840~1917)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은 사고하는 인간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에 대해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 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은 머리가 됐고, 혈관에 흐르는 피는 뇌가 됐다"고 기록한 바 있다.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을 자신의 대작 '지옥의 문' 위에 앉아 지옥의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인으로 묘사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 지난 9월 기자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로댕박물관'에 방문했다. 로댕의 명작 '생각하는사람'(좌), '지옥의 문'(우) /사진=미디어펜


그렇다면 '생각하는 사람'이 마주한 '지옥의 문'의 100년 후의 모습은 어떠할까.

지난 10월 22일 방송된 tvN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서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과 같은 대작들에 영감을 안긴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신곡'에 대해 다뤘다. 

해당 방송에 출연한 역사 강사이자 작가 설민석은 "지옥은 1단계 애욕부터, 미식, 낭비, 인색, 분노, 이단, 폭력, 사기, 위조 등 9단계로 이어진다"고 단테가 표현한 단계별 지옥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배우 문가영은 단테 '신곡' 지옥 편에 새롭게 추가하고픈 지옥으로 '언어폭력 지옥'을 꼽았다. 

문가영은 "현대사회에서 SNS 영향력이 커지면서, 언어폭력도 새로운 죄가 된 것 같다"고 말했고, 방송인 전현무 역시 "만약 '언어폭력 지옥'이 생기면 악플 쓰는 사람이 10분의 1로 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가볍게 흘려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실제로 SNS 이용자들의 폭언과 욕설 등 사이버 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가수 구하라와 설리가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우리 곁을 떠났다. 

이들의 비보가 알려지자 외신들은 앞다투어 K팝의 산업구조적 문제점과 비뚤어진 댓글 문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당장 미국 버라이어티는 지난 11월 24일 "젊은 K팝 인재들이 잇달아 숨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호소했고,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지독한 산업의 징후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같은 날 구하라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K팝 스타들이 겪는 압박과 문제점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WP는 "구하라는 그녀의 친구인 K팝 스타 설리가 숨진 지 6주도 채 되지 않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며 "K팝 스타들이 팬들에 의해 엄청난 중압감을 받고 있다. 한국은 부유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정신건강 지원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구하라와 설리는 연예인이란 이유로 연애나 실생활을 통제받았고 사생활이 대중에 노출돼 검증을 받았으며 악의적인 온라인 비평에 시달려야 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7일 배우 구혜선의 개인 SNS 계정 게시물에도 한 누리꾼은 "아프니? 힘들지? 고통스럽지? 지옥 속에서 버텨봐 한 번"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구혜선은 "악플러다. 선처해드릴게요. 행복하세요"라는 답글로 의연하게 대처했다.  

인간은 스스로가 사유하는 존재라며 우월성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감정에 치우쳐 비이성적으로 행동한 뒤 후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양 근대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사유에 대해 "이해하며, 긍정하고, 의욕하고,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런 철학적 고찰이 아니더라도,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을 향해 차가운 시선보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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