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찬반투표서 파업권 확보…집단 권위 과시
노조원 참여도 낮고 당위성 없어 회사입장만 곤란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쟁의권 확보 이후 진행된 찬반투표에서 파업이 가결되며 지난해와 같은 우를 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임단협을 1여년간 이끌며 해를 넘겨 겨우 완료하며 많은 고충을 겪어온 르노삼성 노조가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임단협의 장기화로 르노삼성은 부산공장의 경쟁력약화로 글로벌 물량이 줄어드는 등의 악재를 맞이했다. 

   
▲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사진=르노삼성


11일 르노삼성 노조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2059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찬반투표 결과 전체 조합원 2059명 중 1939명이 참여(투표율 94.2%)해 찬성 1363표(66.2%), 반대 565표(27.4%)로 가결됐다. 무효표는 10표(0.5%)였다.

앞서 지난달 29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가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조정중지'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도 과반수이상의 찬성표가 확보됨에 따라 노조는 일단 합법적인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노조의 파업카드가 이번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 투표에서 약 66.2%의 찬성률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동안 조합원의 90% 이상의 찬성으로 파업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올해는 저조한 찬성율로 흔들리고 있는 노조 집행부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은 올해 임단협을 통해 기본급 15만3335만원(8.01%) 인상과 노조원 한정 매년 통상임금의 2% 추가 지급 등의 내용이 포함된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임단협에서 기본급을 동결했고, 수년간의 흑자로 사측의 지급능력이 충분한 점을 고려해 기본급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노조측의 설명이다. 또한 회사측이 제시안을 내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시간 끌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미 앞서 치른 홍역으로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일거리가 줄었고 경쟁력면에서도 글로벌 기지들중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높은 찬성표로 파업을 결정했지만 노조원들의 파업 참여율이 저조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더 이상 노조 수뇌부의 강경대응이 공신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임단협을 위한 파업에서도 노조원들 50% 가량이 정상출근해 조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에 반대하는 일부 노조원들은 새로운 노조를 출범시키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현재 노조 수뇌부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위성이 약한 상황에서 노조 수뇌부의 공신력마저 약해진 상황이다. 

일감절벽으로 생산이 급감하고 있는 르노삼성. 회사의 불신은 소비자들의 발길마저 돌리며 판매도 감소시켰다. 판매가 안되며 수익성마저 나빠지고 있다.

이미 르노본사로부터의 신규 생산물량 배정도 불투명해졌다. 일본 닛산은 로그의 위탁생산물량도 줄어들며 고정적인 생산물량 자체가 줄었다. 내수수출을 합쳐 월 1만5000대 수준에 멈춰서있다. 

그럼에도 현재 노조는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는 위기를 넘어 최악의 상황을 직면했지만 여전히 임금인상을 목소리 높이며 강경대응을 고집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수출은 물론 내수 판매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업체의 수출과 내수 판매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324만2340대로 작년 동기대비 0.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은 같은 기간 198만5632대로 작년 동기대비 0.3% 줄면서, 2009년(169만6279대) 이후 가장 낮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만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친환경차 비중이 커진 덕에 수출액은 354억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6.8% 증가했다.

국내 업체들의 내수 판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들어 125만6708대로 작년 동기대비 1.2% 줄었다. 연간으로는 2016년(160만154대) 이후 3년째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협회 측은 설명했다.

르노삼성의 상황은 이보다 더 좋지 못하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지난해 연 21만5000대를 생산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절반 수준인 10만대 초반 생산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1~10월) 생산도 전년 대비 24.7% 감소한 13만7472대를 생산했다. 대책으로 시간당 생산대수를 줄이고 희망퇴직을 받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면서 노사 간 마찰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고 미래차로 전환하기 위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에서 노조가 사측과의 협업을 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르노삼성 노조는 당장의 이익과 보상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사측과 손을 잡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 회사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노조로 인해 르노삼성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르노삼성은 생산 및 판매급감 등으로 지난 8월 400명이상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노조측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생산량은 갈수록 내리막길이다. 노조원의 절반이상이 과잉인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초토화위기를 맞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은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이어진 파업으로 닛산 캐시카이 수탁생산 물량을 놓쳤다"며 "또 파업하면 XM3 수출 물량까지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르노삼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르노삼성이 내수보다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사정이 아닌 글로벌 사정을 고려햐야 한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1인당 인건비 수준은 세계 르노그룹 공장 중 가장 높고 프랑스공장과 비교하면 시간당 3유로(약 3900원)가량 많다"고 말했다.

수출 물량 배정을 앞둔 상황에서 다른 공장보다 인건비 수준이 지나치게 높으면 안 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르노삼성의 연간 생산량 가운데 절반(약 10만 대)은 닛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다. 르노삼성 수탁계약은 내년 3월 종료된다.

프랑스 르노 본사는 올해 초 로그 후속 물량을 배정할 계획이었지만 노조가 파업을 이어가자 결정을 미뤘다. 이 과정에서 르노삼성이 가장 선호했던 닛산의 SUV 캐시카이 배정은 물 건너갔다. 

르노삼성은 대안으로 크로스오버차량 XM3의 유럽 수출 물량을 따내려 했지만 르노 본사는 이마저도 확정하지 않고 있다. 노사 관계가 불안정하고 인건비 등 고정비가 많이 드는 부산공장에 맡기기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다.

노사 갈등이 계속되면 QM6 등 다른 수출 물량마저 뺏길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 때문이다. 르노삼성이 XM3 수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QM6 수출 물량도 다른 공장에 내주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의 최근 몇 년간 신차를 생산하지 못한 시기에 내년 상반기 출시될 ‘XM3’는 매우 중요한 모델이다"며 "더욱이 유럽 수출물량 배정이 확정되지 않은 중요한 시기에 노조의 파업은 노사 양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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