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제1 야당 패싱 예산안 처리는 문 의장에게도 치욕
부의장 지낸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좀 더 기회를 줬어야
2명의 국회부의장이 자기 당적을 유지하고 직을 수행하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장만은 재임 기간동안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 의원이 되는 것은, 국회 운영에 있어서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말라는 엄중한 국민의 음성이다.

국회라는 공간은 어차피 각 당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늘 싸우기 마련이다. 세계 어느 나라 국회도 싸움 없이 타협과 협상, 협의만으로 꾸려가지는 않는다. 야당은 늘 여당을 공격하고, 공격받는 여당도 방어를 하면서 야당에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다보면 때로는 동물 국회라고 일컬어질만큼 싸움의 정도가 심한 경우도 발생한다. 

늘 그렇게 싸움이 일상화된 국회다 보니 국회의장은 이해 당사자들의 치열한 싸움에서 한 발 뒤로 빠져 있어야 하고, 또 싸움이 격해진다 싶으면 중재에 나서야 한다. 국회의장이 당적을 가지면 안되는 이유다..

   
▲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사봉을 치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 / 사진=연합뉴스


물론 국회의장 임기 2년 동안 제한적으로 당적을 버리게 한다고 해서 그 국회의장의 마음 속의 당적까지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장도 사람이고 권력을 지향하는 국회의원의 한 사람이니 심정적으로 자기 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고 싶을 수 있다. 싸움 중인 각 당을 중재하는데 있어서도 완벽한 중립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편이라는 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드러내놓고 편 드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제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 국회 본회의에서 제1 야당과 합의하지 않은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 일부 법률의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집권 여당의 일방적인, 또는 일부 야당과의 공조에 의한 통과가 이뤄지긴했지만 예상안에 대해서는 어떤 여당도 제1 야당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의 사태는 여당과 그에 동조하는 군소 정당의 몰아부치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과 민주평화당, 그리고 대안정당까지 이른바 4+1 공조에 의한 160여 석보다 더 강력한 문희상 국회의장이라는 한 표가 주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본회의가 속개되지마자 예산안을 가장 먼저 처리한다고 의사봉을 두드린 것도 문 의장이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뚫고 우렁찬 마이크 음성으로 표결을 진행한 것도 문 의장이고, 결국 2020년 512조원이 넘는 예산을 통과시키고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린 것도 문 의장이다.

물론 그동안 문 의장이 원내교섭 단체 대표들과 부단한 중재 노력을 했던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이라도 예산안이든 선거법 개정안이든 공수처법 등을 상정하고 의사봉을 두드리고 싶었던 것을 꾹 참고 3당 원내대표들을 부지런히 만나며 부단한 협상을 시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 의장은 조금 더 했어야 했다. '정기 국회 종료가 4시간 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 '정기 국회 종료가 4시간이나 남았던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문희상이 아니고, 무소속 국회의장 문희상인데, 선출된 지 하루 반 밖에 되지 않은 한국당의 원내대표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줬어야 한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제1 야당의 원내대표에게 고작 몇시간을 더 주지 못하는 것은 국회의장의 '내놓고 편들기'이며 '책임 방기'다.

20대 국회는 4개월 여 밖에 남지 않았다. 총선 정국이라 사실상 연말을 지나고 나면 20대 국회는 총선에 몰입할 것이다. 문 의장은 아마도 21대 총선에는 불출마할 것이고, 그가 한국 정치에 있어서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은 거의 다 한 셈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일이 '제1 애당을 패싱한 예산안 통과'라면 대한민국 국가 의전 서열이 대통령 다음인 국회의장을 지낸 역전의 노정객에게는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한 치적이 될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조금 더 애썼어야 했다. / 미디어펜 사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