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감축실적 인정·유상할당 비중 3% 유지해야
환경부·기재부·산업부간 협업 필요성 '강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도입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시행 5년차를 맞았지만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한해 동안 쓰고 남은 잉여배출권을 거래시장에 내놓지 않고 과도하게 ‘이월’하는 관행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왜곡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들만 배출권을 사고 파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시장기능 미흡으로 결국 국가 온실가스 총량의 감축 목표이행도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배출권 물량이 모자란 철강업계는 막대한 배출권 구입 부담에 비상이 걸렸다. 미디어펜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실태'를 통해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구조를 살펴봄과 동시에 문제점을 진단해 본다. 또 시장 정착을 위해 매주 탄소배출권 거래 시황을 공개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탄소배출권 가격이 수급불균형으로 향후 10만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침체기를 겪고 있는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기업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탄소누출'이 가장 우려스러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기업에만 부담을 가중시킬 게 아니라 고효율 시설에 투자하거나 감축에 성공한 기업에 더 많은 배출량을 할당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선물시장을 조기 확대해 유동성을 늘리거나 유상할당 비중을 늘리지 않으면서 환경부-기재부-산업부간 협업을 통해 제도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18일 세계 탄소 행동 파트너십(ICAP)에 따르면 11월 26일 기준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은 톤당 33.12달러로 배출권 거래 의무 시행 국가인 유럽(26.76달러), 뉴질랜드(15.87달러) 보다 높았다. 

배출권 거래가 가장 활발한 유럽은 1만4000여개의 발전시설 및 산업공장 탄소배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들은 탄소배출 기준치를 정해 이를 달성한 기업에겐 배출권을 전면 무상으로 지급하는 전략을 병행하며 가격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금융기관들이 탄소배출권 관련 상장지수펀드 등 금융 상품을 만들며 탄소금융시장을 개척한 상태다. 이미 실수요자를 대행하는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시장참여자의 75%에 이른다.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자기자본으로 구매하지 않더라도 금융기관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탄소 감축을 인정해주고 있다.

탄소배출량 2위 미국은 9개 주 정부가 별도로 '지역온실가스구상'을 설립해 탄소배출거래제를 시행 중이다. 미국 주 정부는 연간 4차례 배출권을 경매에 올리며 최저가(10달러)와 상한가(40달러)를 지정해 과도한 입찰 경쟁을 방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배출권 가격은 11월 19일 기준 톤당 17달러를 기록했다.

   
▲ 2015년 1월 12일 부산시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내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주식처럼 거래되는 시장이 개장했다. /사진=연합


전문가들은 오는 2021년 제3차 계획이 시행되기 전까지 업계와 충분히 시장을 함께 검토한 뒤 유럽 등처럼 선진화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정부의 기초데이터에 대한 불투명성과 정책 합리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배출권이 적정 가격을 넘어서며 거래제 시장이 제대로 구동을 하지 못하는 모양새"라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로 압박하면 결국 기업들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에너지·온실가스 관련 효율이 높은 기재를 갖고 있는 국가인 만큼 정부가 기업과 함께 기술·장비 개발 및 투자를 연구하는 등 제도설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돈을 받고 온실가스 배출권을 나눠주는 유상할당 비중을 늘리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적용되는 제3차 배출권거래제에는 유상할당 비중이 3%에서 10%로 확대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유상할당 대상 기업도 늘어난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상할당 비중을 늘리면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탄소누출'이 발생할 것이 가장 걱정"이라며 "탄소 감축은 국제사회와 약속인 만큼 제도의 일관성은 유지하되 향후 제2차 계획 수준의 유상할당 비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의 탄소 배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선 인센티브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는 대안도 나왔다. 정부가 탄소배출권 수입을 초고효율의 감축 설비를 증설하거나 탄소를 감축한 기업이 감축 투자에 이용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10월 기준 배출권거래제 정부 수입은 2815억원이다. 배출권거래제법 제35조(금융상·세제상의 지원 등)에 따라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수입을 기술 개발 지원에 활용할 수 있음에도 구체적인 활용방안은 수립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기후변화연구팀 선임연구원은 "기업들이 불확실성으로 신규 투자를 지금해야 할지 내년에 해야할지 판단을 못하다 보니 가격 급등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기업의 감축 투자를 촉진시키면 적정가격이 형성되고 이는 결국 정부가 목표한 탄소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 주도가 아닌 환경부-기재부-산업부간 협업을 통해 제도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총괄기능을 국무조정실로 옮기거나 경제 및 산업부문 전문 부처간 업무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배출권은 쿼터제란 한계가 있는 만큼 선물시장을 조기 도입해야 한다는 진단도 내놨다. 박호정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는 "배출권 거래에 선물시장은 과거의 금융실명제급 충격요법이 될 것"이라면서 "다만 배출권에 대한 실소유 동기가 필요한 사업자, 할당업체, 투자은행 등의 경제주체들을 중심으로 선물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EU와 미국처럼 기업들의 탄소 배출권 거래 비용이 일부 소비자 요금에 전가가 돼야 한다는 시각도 나왔다. 비시장친화적인 유인에 의해 거래되는 동기가 크기 때문에 손해요금에 전가가 허용돼야 한계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