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쉬리'(1998)에서 시작한 북한 군이나 요원의 이야기가 벌써 20년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의형제'(2010), '베를린'(2012), '공조'(2016), '강철비'(2017), '공작'(2018)까지. 주연 배우와 서사는 각기 다르지만 영화의 끝에는 늘 남북 평화에 대한 달콤한 신기루만 남았다. 

영화계는 북한 인권의 처절한 현실보단 그저, 무뚝뚝하지만 순박하고 꽤 멋들어진 북한 사람의 이미지를 쌓는 데 충실했다. 한민족이 힘을 합쳐 목표를 성취하는 모습이나 뜨거운 브로맨스가 퍽 흐뭇했다. '백두산'도 똑같다. 그렇고 그런 남북 버디물에서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다.

'백두산'은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백두산의 마지막 화산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남과 북의 운명이 걸린 작전의 책임자가 된 조인창(하정우)과 비밀 작전에 합류하게 된 리준평(이병헌)이 극의 전개를 이끈다.

영화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장르 삼았던 블록버스터의 관행을 철저히 따른다. 그렇기에 '백두산'의 만듦새에는 큰 실책이 없지만 새로울 것이 없고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든지 하는 이야기꾼의 기질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던 남북의 사내가 일련의 사건들로 결속력을 다지고, 마지막에는 수십년지기 친구라도 되는 양 애틋하게 군다. 상투적 전개에 신물 난 관객들이 조롱조로 써내리는 가상 시나리오와 꽤 비슷한 내용이다.


   
▲ 사진='백두산' 스틸컷


더불어 '백두산'은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정치적 이미지를 주입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는 도입부터 북한의 핵 폐기가 마지막 수순에 이르렀다는 뉴스를 전하고, 조선노동당대회의 완전한 비핵화 선언을 예상하는 보도로 남북 평화를 노래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남북 화해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북한의 화전양면은 더욱 굳건해졌고, 우리의 주적이 북한임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두산'은 전시작전통제권, ICBM과 같은 소재들을 통해 이념적인 부분들을 주기적으로 건드리고, 한민족의 끈끈한 우정이라는 환상을 설파하려 부단히 애쓴다.

"재난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도 미합중국과 대한민국의 동맹은 굳건할 것"이라며 전작권을 주장하고 한국의 군사 작전을 무산시키는 미군, 남북이 하나 되어 미군과 총을 겨누는 장면, 미군의 통신망을 해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 남북에서 공동으로 출범하는 한반도 재건위까지 영화 속 수많은 장면들이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말하는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영화가 이념에 매몰되면 영화의 가치는 힘을 잃는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남북의 화합이고 평화 통일임을 차치하더라도 '백두산'이 규정하는 선악 구도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의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사와 메시지는 관계 없이 쾅쾅 터지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다. 260억원의 제작비, 70억원 규모의 시각특수효과가 무색하지 않게 재난 상황뿐만 아니라 총격 신, 액션 신을 화려하게 연출한 '백두산'이다. 영화는 재난물이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은 최대한도로 삽입하고, 관객들의 마음에 계속해서 기폭을 시도한다. 그래서일까. 요란한 CG와 굉음을 지나온 128분 러닝타임 끝에는 그저 인스턴트성 시각적인 쾌미만이 남는다.


   
▲ 사진='백두산'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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