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 기간이 곧 만료돼 이주를 해야하는데 전셋값이 너무 비싸 걱정입니다. 5년전에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이 곳으로 전세로 들어온 것이 후회가 돼요."

   
▲ 올가을 심각한 전세난이 예상되는 가운데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부동산중개업소 밀집 지역에 전세와 월세 시세표가 붙어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모(52·여)씨는 날로 상승하는 전셋값이 남 일 같지 않다. 그는 현재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아파트 전세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최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9월 전국 아파트 매매시장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64.6%로 지난달보다 0.02%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01년 9월과 10월 당시 64.6%를 기록한 이후 13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3억1115만원으로 지난 2월 3억원대(3억25만원) 돌파 이후 꾸준히 신고가를 갱신하고 있다.

이 같은 전셋값 고공비행 현상은 저금리 속에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 사례가 늘어나면서 전세 매물이 줄어 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올 하반기부터 예정된 강남 재건축아파트 이주가 시작되면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세금 상승이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여 '제2의 전세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 강남 재건축 열풍에 내몰린 2만5000여 세입자들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빗발치는 문의 전화에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강남 일대 재건축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대의 전.월세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전세 물량이 구하기 어려운데다 전셋값이 매매값을 위협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강남 4구(강남·강동·서초·송파) 지역의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로 전세대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 따르면 강동구 고덕동 주공 2단지 2850가구와 강남구 개포동 주공 2·3단지 3000여 가구 등이 올해 말에 이주를 시작한다.

이어 개포지구와 고덕지구, 신반포지구 등 총 2만5000여 가구가 이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강남 지역의 신규 공급은 9000가구에 불과해 사실상 1만6000여 가구에 대한 공급이 부족해 강남 지역의 전·월세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들이 동시에 이주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전.월세 임대료가 재건축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전셋값도 동반 상승할 우려가 있다.

실제 인근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셋값이 한달 새 5000만원이 올랐다.

이에 서울시는 하반기 공급이 예정된 약 9000가구의 임대주택을 조기에 공급하고 강남4구 내 매입임대와 전세임대 등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 1~5월 동안 강남4구에서는 매입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다가구와 다세대주택이 단 한 채도 매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강남4구 재건축 지구의 사람들이 주변 아파트에서 살기에는 전셋값의 부담이 클 것"이라며 "강남권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찾아보려 해도 저렴한 집은 드물기 때문에 수도권 일대로의 이주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서울 강북.수도권도 피해가기 어려운 '전세대란'

강남 재건축 이주 역풍은 서울 강북과 수도권 신도시를 향해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부동산114에 따르면 학원이 몰려있는 중계동 일대 아파트의 경우 이달 들어 전용 59㎡ 전세가격은 1000만원, 84㎡는 2000만원 상승했다.

신혼부부 등의 수요가 많은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에선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들이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셋값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분당과 야탑동, 장미동부, 일산 마두동 백마5단지 쌍용 등은 최근 2주 새 전셋값이 500만~1000만원으로 올랐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강북구와 서대문구 등 강북지역 전셋값의 오름세가 지난달 전국 평균 5배(0.25%) 급등했다"며 "호가만 오르고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으면서 집주인들이 최근 시세를 반영해 전셋값을 올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재건축 세입자들의 이주가 현실화되면 (전셋값이) 지금보다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며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기존 거주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조항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