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병역 수급문제는 국가 전략적 차원서 접근해야...모병제는 시기상조”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의 악몽이 아물기도 전에 일어난 28 사단 윤 일병 사건으로 군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군 병영문화 때문에 시끄럽다. 병사들의 신상관리를 제 1의 가치로 삼고 있는 오늘의 군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군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평생을 군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자괴감과 수치심 그리고 죄송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진보적 시각을 가진 언론이나 학자들이 징병제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대안으로 징병제의 대척점에 있는 모병제를 주장하고 있다. 군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군에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징병제는 단점을 부각시키고 모병제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포장하여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전제는 징병제는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므로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만 모여서 많은 병영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만 가는 모병제를 실시하면 그런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군의 병력 수급 시스템은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증요법적 또는 즉흥적 사고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세상에 절대 선은 없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모든 것은 장점에 비례한 단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과연 어느 제도가 우리의 현실적 상황에 맞는 것이냐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적 상황에 어떤 병역 제도가 적절한지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 기준으로 비교 분석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진항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예비역 육군 소장) 

1. 병역제도를 선정하는 기준

병역제도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징병제와 모병제로 구분된다. 징병제(徵兵制, conscription)는 국민에게 국가를 방위할 병역 의무를 강제하는 제도이다.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은 반드시 징병검사를 실시하고 군인으로 일정기간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모병제는 자국민 중에서 원하는 자를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여 군인으로 모집하는 제도이다.

양 개 병역제도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각 나라는 그 나라가 처한 상황을 면밀히 분석 평가하여 병역제도를 채택 시행하고 있다. 징병제는 강제로 병력을 징병하다는 점에서 모병제에 비해 대 규모 군 병력 유지에 유리하고, 이와 연계하여 대규모 예비군 운영이 가능하므로 적은 예산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병역제도다.

이에 비하여 모병제는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제도로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군 복무를 하니 적극적인 성향이 높다. 반면, 군이 국민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하여 국민의 지지 획득이 어렵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막대한 인건비가 든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주요 이해관계가 있는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미국은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모병제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 나라마다 가지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일본은 안보위협의 강도가 높지 않으며,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지원자가 많고, 북한은 군이 권력의 실세일 뿐만 아니라 군 복무는 많은 혜택이 부여되므로 지원자가 많다. 미국 역시 인구가 많고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모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은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 경제진화연구회 토크파티 전경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병역제도를 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기준은 먼저 그 나라가 처한 군사전략환경이다. 군이란 국가 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므로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군사전략환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두 번째, 병역제도는 인건비와 관련된 경제적 부담 능력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세 번째는 첨단무기 체계 보유 여부다. 전문 기술 군으로 국가 방위가 가능한 수준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 문화와 국민정서다. 적어도 이 네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어느 제도가 가장 그 나라에 적절한지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 경제진화연구회 토크파티 <군대의 진화: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포스터 

2. 우리나라에 적합한 병역제도

가. 군사전략 환경

우리나라는 냉전의 잔재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로 남북 간 첨예하게 대치한 상태다. 북한은 117 만 병력으로 부단하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대 주변국의 간접적 위협도 전혀 감소되지 않고 있다. 적어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현 병력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 한/미 연합방위 체제의 변화 가능성 역시 병력규모 감축여지를 축소한다. IT를 활용한 첨단 무기체계를 확보하면 병력규모를 줄일 수 있고, 이에 필요한 숙련된 전문 요원을 확보하려면 모병제가 유리한 면이 있지만, 첨단 무기체계를 확보하는 것은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므로 우리 군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현대전은 국가 총력전 개념이므로 잘 훈련된 예비군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는 모병제 보다는 징병제가 현실적 대안이다.

나. 경제적 부담 능력

병역제도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병사에게 지급하는 봉급 지불 능력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청년들의 급료 기준을 볼 때 대개 월 200 만 원 정도는 지급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병력 수준인 병사 50 만 명을 기준으로 할 때 소요되는 예산은 12 조원 정도가 든다. 지금 지급하고 있는 병사 봉급을 제하더라도 11 조원을 증액해야 한다. 전력 증강이 계획대로 될 경우, 계획하는 병사 30 만 명을 적용해도 7조 2 천 억 원이 소요된다.

노무현 정권 당시 정치적 목적으로 사병 복무기간을 줄이고 병력 감축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제 사항은 군의 전투력을 첨단화한다는 것이었는데, 640 조 나 되는 돈이 없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방비 전체 규모가 대략 35 조 쯤 되는데 그 중 전력 증강비가 30% 정도이니 10 조 5 천억 원 정도 된다. 만약 모병제를 채택한다면 ‘현재 수준의 연간 전력 증강비’를 상회하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지금의 병사 봉급은 전체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8%에 불과하여 6,700 억 원 쯤 되지만 모병제를 실시하려면 국방비의 30 %를 책정해야 한다. 해마다 상승하는 국가 재정적자 상황을 감안하면 모병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혹자는 국민들의 세금을 1 % 만 올리면 가능하다고 하는 데, 이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가 부담 능력을 고려할 때 모병제는 통일 이후 안보소요가 현저히 줄고 국가의 경제적 규모가 대폭 확대된 이후에나 고려해 봄직하다.

다. 첨단 무기체계로 무장한 기술군

우리 군은 아직도 첨단 무기로 장비하고 있지 못하다. 기술 수준도 문제지만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예산이 문제다. 예를 들면, 주변 강국들이 최첨단 항공기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우리 공군은 그들 보다 한 차원 낮은 전투기로 만족하고 있다. 이것은 기술 군인 해군도 마찬가지이고, 육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부족한 첨단 무기를 주한 미군이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탈냉전 이후 선진국들은 국방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을 포함한 군사 선진국들은 강력한 국방개혁을 추진하여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규모 공격 대신 정밀표적타격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현대전 수행에 적합한 군으로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대규모 병력 중심의 재래식 군대를 정예화하여 첨단과학 기술 군으로 재편하였다. 우리나라도 2009년 7월 국방개혁 청사진 「국방개혁기본계획 2009~2020」, 2011년 5월 「국방개혁기본계획 2011~2030」이 발표하고 개혁드라이브를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하였다.

군의 실상을 잘 모르는 언론인들은 모병제로 첨단 기술 군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막대한 소요 예산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 군의 실정은 양적 병력으로 국방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에 적절한 병역제도는 징병제다.

라. 사회 문화와 국민 정서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초 저 출산 국가다. 한 가정에 한 자녀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귀하게 키운 아들을 군에 보내고 싶은 엄마는 없다. 모병제를 실시하여 군에 가지 않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돈으로 병역을 대체한다고 할 경우 부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돈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자책할 가능성이 크며 아들은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할 것이다. 또한, 모병제가 될 경우 경제적 약자만이 군에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대가 국민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군은 하나의 특수 이익 집단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돈 없는 집 자식만 군대를 가게 되면 군은 가난한 사회적 약자의 집단이 될 것이고, 계급의식이 조장되어 사회적 계급 갈등으로 사회는 분열될 것이다. 부가하여 우리 사회는 현재의 배금사상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문화적 측면이나 정서상으로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공공의식이 박약하다. 따라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곳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의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래 희망은 소방관이라고 한다. 군인도 많은 아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그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직업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역사적으로도 조선시대에는 무관을 천시하였으며 가문의 영광을 위해 노력하였지, 지역사회나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장려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모병제로는 소요되는 병력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자위대는 정식 군대가 아님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징병제하에서 발생한 병영 부조리가 모병제가 되면 없어질 것이라는 가설도 어불성설이다. 수직적 의식 구조와 서열의식이 강한 우리의 문화에서 모병제라고 해서 평등의식이 향상되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만약 이 가설이 성립되려면, 일본 자위대에서는 이지메가 없어야 하며 대학 동아리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자기가 원해서 자기 돈으로 학비내고 다니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이지메가 성행하고 있고, 우리나라 운동선수 집단 내 구타 및 가혹행위는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병영 내 구타 및 가혹행위는 병역제도와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군대는 어디까지나 규범적 조직이다. 규범적 관계가 물질적 거래관계보다 단결력이 높고 충성심이 높다고 한다. 모병제가 되면 금전적 가치가 군대 내에서 중요한 가치로 등장할 것이다. 규범적 가치는 무한의 충성심 유도가 가능하지만, 경제적 가치 체계 하에서는 받는 봉급에 비례한 충성심만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발성이나 헌신과 같은 가치를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 정서에서는 모병제로 군을 운용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직업군인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군의 가치 구현이 가능한 것은 임관과정에서의 교육기간이 길고 거기서 인생관, 사생관, 군인관, 직업의식, 국가에 대한 충성심, 애국심 등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때문이며, 오랜 시간 직업 군인으로 살아가기에 그 자체 내에서 형성된 직업윤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사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기가 어렵다.

3. 결언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서 거론되고 회자되는 징병제는 문제의 본질을 잘 못 짚은 것이다. 병영 내에서 벌어지는 구타 및 가혹행위의 악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병영제도와 상관이 없다. 특히,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고려할 때 더더욱 그렇다.

병영 문화 개선은 군의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 인식으로 바꾸고, 자신감에 넘치는 장병 육성을 위해 군 교육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군의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초급 간부의 질적 향상을 위해 초급 간부 수급계획을 전향적으로 대폭 손질하고, 병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직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맥가이버 형의 전투병으로 양성하고, 지휘관은 사고 발생 시 적절하게 조치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가능하다.

병역제도를 징병제로 할 것이냐 모병제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처한 군사전략적 환경, 국가의 경제적 부담 능력, 군의 첨단 전투력 수준 그리고 우리의 문화 사회적 환경과 정서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하며, 현재의 징병제는 적어도 이러한 제반 요소를 고려할 시 통일시 까지는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014년 9월 25일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에서 열린 경제진화연구회 토크파티 <군대의 진화: 징병제냐 모병제냐>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김진항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예비역 육군 소장)의 토론문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