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 올해의 사자성어…혼자 살려고 하지만 결국 공멸하는 '운명공동체'의 위기
   
▲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지난 15일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046명을 설문조사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꼽았다고 했을 때 나는 '한고조(寒苦鳥)'를 생각했다. 둘 다 불경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둘 다 춥고 추운 히말라야 설산에 살고 있다고 한다. 

공명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이 새는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이를 질투한 다른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 결국 두 머리 모두 죽었다.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한고조는 이름 그대로 "추위에 고통스러워하는 새"다. 그 추운 설산에 사는 한고조는 집이 없다. 밤이 오면 추위에 떨면서 "내일 낮에는 꼭 집을 지어야지"라고 결심하지만 아침에 해가 뜨고 온기가 조금 돌면 간밤의 혹독했던 추위를 한순간에 다 잊어버리고 양지바른 곳만 찾아다니며 햇볕 쬐기에 하루를 다 보내고 만다. 그러다가 또 밤이 오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를 되풀이하며 구슬피 운다. 어떤 이는 한고조 암컷은 추워 죽겠다고 울고, 수컷은 미안하다고 울었다고 우화를 전한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공명조와 비슷한 것 같다"며 "모두가 상대방을 이기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함께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조국 수호'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를 위한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나는 한 몸통에 머리 둘 달린 공명조는 한고조가 변해서 생겨난 것일 거라고 상상한다. 아니면 암수 두 마리의 한고조가 한 몸으로 합해진 것이거나. 한고조의 우화는 게으름을 경계하라는 것이지만 그 망각의 힘이 더 놀랍다. 어찌 그 혹독한 고통과 괴로움을 그리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무엇을 반드시 꼭 이뤄내자고 굳게 마음먹지만 환경이 바뀌면 금세 그 결심을 잊어버리는 새. 무엇만은 반드시 하지 말자고 맹서해놓고 시간이 지나면 그 맹세를 망각하는 새. 두 가지 반대되는 생각이 수천, 수만 번 벋어나 결국엔 머리가 둘로 나뉜 새. 

한 머리는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데, 다른 머리는 절대 잊어버리지 못하는 새. 자기가 전에 했던 말인 줄도 모르고 다른 머리의 말을 무조건 반박만 하는 새. 그러면서 서로 쪼고 물어뜯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새. 그게 한고조가 변한 공명지조라고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고조와 공명지조, 설산의 두 마리 새가 급기야 우리네 장터 바닥의 새 이야기를 불러일으킨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새 이야기다. 거지가 장터에서 각설이타령을 신명나게 불러 제키다가 구경꾼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빠른 새가 무슨 새여?"라고 묻는다. "눈 깜빡할 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사람에게 거지는 "그렇게 쉽게 맞힐 문제라면 내지도 않았어!"라며 타박을 준다. 

조금 뜸을 들인 후 거지는 "배고파 오는 새가 세상에서 제일 빠른 새"라고 정답을 알려주고는 각설이타령을 다시 시작한다. "얼시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밝은 구석이 별로 예상되지 않는 새해를 앞둔 탓인가, 한고조와 공명지조가 이 나라에 머무는 한 허전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각설이들의 구슬픈 장타령도 더 자주 들릴 거라는 상상이 머릿속 저쪽에서 생겨나고 있다.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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