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제도 따라 1837년 제작…측우대 2건도 승격 예고
   
▲ 국보로 승격되는 '금영 측우기' [사진=문화재청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조선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유물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존한다고 알려진 측우기(測雨器)가 기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기상청에 있는 보물 제561호 '금영(錦營) 측우기'를 '공주감영 측우기'라는 명칭으로 바꿔 국보로 승격 예고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측우기 받침인 측우대(測雨臺) 중 기상청 소장 '대구 선화당 측우대'(보물 제842호)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창덕궁 측우대'(보물 제844호)도 '대구감영 측우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로 각각 이름을 변경, 국보로 승격 예고했다.

금영 측우기는 48년, 측우대 두 점은 34년 만에 각각 보물에서 국보가 된다.

강수량을 측정하는 장치인 측우기는 세종 재위기에 처음 제작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1442) 기록에는 "쇠를 주조(鑄造)하여 기구를 만들어 명칭을 측우기라 하니, 길이가 1자(尺) 5치(寸)이고 직경이 7치입니다. (중략) 객사의 뜰 가운데에 대를 만들어 측우기를 대 위에 두도록 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국보가 되는 측우기는 헌종 3년(1837)에 만들었음이 확인됐다. 

세종대 실록과 마찬가지로 길이 1자 5치, 지름 7치이며, 무게는 11근으로, 오늘날 치수로 높이 31.9㎝, 지름 14.9㎝, 무게 6.2㎏이다.

조선시대 충남 지역을 관할한 공주감영, 즉 금영에 설치됐는데, 일제강점기인 1915년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반출했다가, 지난 1971년 한국에 돌아왔다.

또 대구 선화당 측우대는 1770년 5월에 화강암으로 제작했고, 창덕궁 측우대는 1782년 만들어 이문원 앞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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