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가림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가족들에게 이같은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협력은 커녕 몸소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자처하기 바쁘다. 이들은 이제 재계 순위 13위의 체면이고 뭐고 언론을 향해 그동안 속으로 삭혀온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양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지난 23일 “가족과 사전 협의 없이 경영상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있다”고 조 회장을 공개 비판했다. 조 회장의 “삼남매가 자기 분야에 충실하기로 합의했다”는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이틀 뒤 조 회장은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자택으로 찾아가 몸싸움을 벌이는 혀를 끌끌 찰 상황을 연출했다. 가족 간에 후계 경영구도를 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이 드러난 셈이다. 

졸지에 어리둥절한 관객이 된 한진그룹 직원들은 '이러면 안되지 않느냐'는 목소리를 내놨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패대기 갑질, 명품 밀수, 인하대 부정입학 의혹으로 얼룩이 채 지워지지 않은 한진그룹을 또 다시 흔들까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모자는 황급히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감정싸움이 금새 봉합될리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 경영권이 달린 일이니만큼 이들의 싸움을 인간적으로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싸움을 벌여야만 했을까. 가족이 똘똘 뭉쳐도 경영권을 장담할 수 없는 판국에 말이다. 조 전 부사장의 공개 비판은 상황 판단 못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어리숙한 전략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 종료된다. 조 회장 일가는 24.79%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가의 경영권을 위협해온 KCGI는 지분율을 17.29%로 끌어올렸고 주요 주주인 델타항공(10%), 반도건설(6.28%), 국민연금(4.11%)은 누구 편에 설지 미지수다.

실적 개선을 통해 주가 상승, 배당금 인상으로 주주를 포섭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일본 불매운동과 출국자수 증가 둔화 여파로 항공수요가 급감하면서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0%나 감소할 전망이다. 자칫 경영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다. 

더 이상 어린애 같은 경영권 다툼을 벌여서는 안된다. 언론을 통한 ‘제 얼굴에 침 뱉기’ 식의 싸움은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물론 한진그룹에 다니는 3만여명의 임직원, 싸움의 당사자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권은 언제든 능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고 조양호 회장이 국민연금 등의 반대에 부딪혀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걸 잊었는가. 한진가는 자중자애하고 경영 정상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직원들의 일터를 지키고 자기 자리를 보존할 수 있는 길임을 깨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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