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바꾸어버린 이건희, 생산성 향상과 인적 청산, 완벽주의로 성공의 신화
   
▲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강연 흐름을 잠시 벗어나고자 한다.

이병철은 같은 해인 1982년 미국에 방문한다. 이병철은 보스톤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휴렛패커드를 견학하게 된다. 컴퓨터는 당시의 우리나라에서 가구보다도 더 커서 상용화의 가능성이 제로인 제품이었다. 그런데 당시 휴렛패커드(HP)는 PC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소형 퍼스널컴퓨터를 만들던 초창기였다.

이병철은 거기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흥미로운 인연이랄 수 있지만, 휴렛패커드를 견학하며 퍼스널컴퓨터에 대한 인식과 가능성을 새로이 확인한 이병철은 거기서 ‘스티브 잡스’를 만난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 매킨토시를 만들고 있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라는 점에서 IBM 컴퓨터 보다도 기술적으로 더 뛰어났지만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이듬해인 1983년, 이병철은 스티브 잡스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재차 만나기도 했다.

후일, 스마트폰 양대 주자로 경쟁의 일선에 서게 된 애플과 삼성전자의 기이한 인연은 이때부터였다.

   
▲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의 이건희 회장 

다시 이건희의 얘기로 돌아와, 이건희 부회장이 1982년 반도체산업이 미래산업이라고 생각해서 사업투자를 했지만, 반도체는 5~6년간 계속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적자 사업, 실패사업이었다.

반도체 사업이 계속된 적자를 보인 이유는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서였다. 삼성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2년이 지나 1984년 24메가D-Ram급의 고집적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지만, 이를 통해 돈을 벌지 못했다. 반도체 가격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파생된 PC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자 반도체 수요가 급상승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수직상승궤도에 오르게 된다. 삼성은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되어 그간의 누적된 적자를 모두 메꾸고 큰 수익을 내게 된다.

하지만 1987년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사업의 성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타계하게 된다. 그리고 이병철의 유언에 따라 입원실 바로 옆방에 삼성 사장단 전원이 모여서 이건희 회장을 최고경영자로 추대하게 된다. 경영권의 공백을 막기 위해서 이를 바로 공표하게 되었고, 현장에서의 사장단 결의 및 이사회, 주주총회를 거쳐 이건희는 경영권을 받아 삼성그룹의 회장으로 올라서게 된다.

1987년 이건희가 회장으로 설 때 외쳤던 취임사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였다.

이건희 회장은 회장으로 서기 전까지 그룹의 실권을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에서의 이건희 회장 

그 뒤로 몇 년 간 삼성이 크게 달라진 바는 없었다. 물론 그로부터 5~6년 간 삼성은 반도체 사업으로 수익을 꽤 올리던 기간이었지만, 그뿐이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이건희 회장은 주로 승지원에 머무르며 출근하지 않기도 했다.

1993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이건희 회장은 한국에 있던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급작스럽게 부른다. 호텔을 잡아놓고 몇박 몇일 간 사장단을 잡아놓고, (그동안 작심했다는 듯이 일방적인) 강의를 1천6백 몇 시간 동안 했다고 한다. 삼성 사장단에게 얘기했던 바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놓고 다 바꿔봐”

이는 이후 세간에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러한 이건희 회장의 일갈을 들었던 삼성사장단의 입장은 “뭐가 어때서 저러지”였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그런 사장단을 데리고 다니며 LA, 프랑크푸르트, 도쿄 등을 모두 방문하여 함께 전자매장에 가게 된다. 소니-필립스-삼성 제품이 가격 순으로 가장 좋은 자리에서 후진 자리에 이르기까지 각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바를 확인하고, 소니와 필립스에 비하면 삼성은 매우 낮은 가치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깨달음을 사장단 모두에게 주었다.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깃발 

물론 내부적으로는 일본인 고문 후쿠다가 작성한 ‘후쿠다보고서’가 이건희 회장에게 전달되었던 것이 이를 촉발하기도 했다. 후쿠다보고서의 요지는, 그간 바뀐 것이 없던 삼성 경영 전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신경영선언 및 후쿠다보고서가 이건희 회장이 은둔하던 5~6년간의 시간동안 칼을 갈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쩌면 직접 쓴 드라마를 스스로 연출했다고 본다.

1993년 신경영선언 및 후쿠다보고서 이후 삼성은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대표적인 것인 74제이다.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한다는 제도 말이다. 이건희는 현지전문가 제도라는 것도 만든다. 세계 각지의 전문가로 별도로 육성하는 제도로서, 이는 당시 인사 기준으로는 파격이었다.

불량품이 생기면 해당 Line을 전부 다 세워서 불량품이 해결되기까지 운영하지 않는 Line-Stop 제도도 실시했다. 품질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 운영으로도 부족하자,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구미공장에 임직원들을 불러놓아 그 앞에서 ‘애니콜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해머를 갖고 와서 자사의 불량제품들을 두들겨 부시고, 기름을 부어 태워버리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벤트였다.

삼성 직원들이 비장감을 갖고 스스로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필자가 추측하기에, 이러한 일련의 이벤트들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충격요법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인적 청산이다.

이건희 회장은 말단 직원들까지의 사고방식을 뜯어고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꾀했고, 충격적인 이벤트를 통하여 창업주 이병철의 수족이자 분신과도 다름없던 비서실 인사들을 모두 혁파하게 된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부터 비서실을 맡던 소병해 실장을 내보내고, 감사원 및 신라호텔 사장 출신의 현명관씨를 비서실장으로 삼게 된다. 비서실장의 권한은 예전과 달리 축소되었고, 이후의 비서실 계보는 이학수, 김순택으로 이어진다.

삼성이라고 하는 기업은, 한국 기업의 역사 및 대한민국 경제사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치밀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병철 시절부터, 삼성은 돌다리도 두들기는 방식으로 실패에 대한 대비책까지 마련해서 사업에 임했다. 동시에 교육에 지속적인 큰 투자를 해서 직원들의 생산성과 근무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기존 삼성이 갖고 있던 기업문화 보다 더욱 강한 ‘완벽주의’를 삼성에 뿌리내리게 하여, 삼성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한다.

   
▲ 현재의 삼성그룹 서초사옥 

삼성은 이후 혁신을 거듭하여, 세계 최정상 전자기업이던 소니의 매출과 시장잠식도를 지속적으로 뺏어오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소니, 필립스, 도시바 등 세계 유수의 전자제조업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월한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삼성은 진정한 세계 초일류기업에 다다른 것이다.

물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 전자업계에서, 삼성의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기존 경쟁자인 애플은 건재하며, 중국의 화웨이 및 샤오미와 같은 후발주자가 급속도로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제품이 사라질 것이므로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에게는 일종의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다.

   
▲ <대한민국 기업가열전>제 10강, ‘제조업 절정에 달하다’의 전경 

 

김정호의 프리덤팩토리, 이번 이야기는 프리덤팩토리와 자유와창의교육원이 함께 기획하여 제공하고 있는 강의시리즈, <대한민국 기업가열전>의 제 10강, “제조업 절정에 달하다”의 강연 일부를 김규태 미디어펜 연구원이 요약 정리한 것이다. <대한민국 기업가열전> 제 10강은 29일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렸다.

‘자유와창의교육원’은 6월 26일(목) 시장경제교육의 진흥을 목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서 개원하였다. 자유와창의교육원은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리더와 일반 시민들의 경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경제의 기본원리에서부터 한국경제발전사, 기업의 이해, CEO 특강 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교육하고 있다.

시민주주 731명의 참여로 시작한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씽크탱크 ‘프리덤팩토리’와 마찬가지로, 자유와창의교육원은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 가치로 삼고 있다. 그동안 전경련 차원의 교육이 군, 경찰, 교사, 공무원, 법조인, 언론인 등에 한정된 측면이 있었지만, 동 교육원 개원을 통해 기업체 임직원은 물론 일반시민, 대학생, 청소년까지 교육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교육 내용도 시장경제 원리, 한국경제 발전사, 기업의 이해, 창업가 열전, 경제현안 이슈 등이 공통 과목으로 구성되는데, 그동안 이렇게 시장경제와 관련된 내용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없었다는 점에서 개원의 의미가 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가 초대 원장을 맡았으며, 교수진도 다양한 분야에서 초빙했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안재욱 경희대 교수를 비롯하여, 박재완 前기재부 장관,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김현준 삼성 전무, 김명환 GS칼텍스 부사장 등이 주요 교수진으로 참여한다. 전현직 CEO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해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론과 실제가 접목되는 ‘살아있는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자유와창의교육원의 첫 강의는 7월 7일(월) 시작한다.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대한민국 기업가열전’이라는 주제로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며, 총 13주차로 구성되었다. 김 대표는, 1세대 기업가인 ‘인삼 상인 임상옥’부터 ‘이병철, 구인회, 정주영’ 등을 거쳐 ‘SM 이수만, YG 양현석, JYP 박진영’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기업가들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펼친다. 대학생 및 일반인 누구나 참여가능하며, 신청은 www.fki.or.kr에서 가능하다. 참가비는 학생 1천원, 일반인 5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