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기능 독점 대의정부 독식 행정.사법부 위 군림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요즘 국회의원의 지나친 특권이 우리 사회의 화두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의회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국가의 중요한 입법기능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이 사회에서 존경 받고, 공적 임무 수행에 따른 위엄을 갖출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의식과 행태, 그들의 활동성과가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미처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들이 국회의 무용론을 입에 올리며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가? 두 번째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비록 국회의원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지라도 국민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하여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기능한다면 ‘국회 무용론’, ‘국회의원 해악론’과 같은 호된 비판은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저변에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면서 특권만 누리는 무능하고 해로운 집단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깔려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무능하더라도 사악하지는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 무능,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해악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일찍이 ‘대의정부론’을 저술하여 대의민주주의의 모순과 대안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한 존 스튜어트 밀의 혜안을 재검토해 보면서, 대한민국 국회의 고질적 병폐를 일소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실천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필요한 때다.

첫째, 국민의 보편적 의사를 대변하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정부의 모든 일에 일일이 대응하거나 간여할 수는 없다. 주기적인 선거에 의해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고 이들이 국민들의 바람을 충족해 주기를 요구하고 기대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국회와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사와 욕구를 얼마나 잘 ‘대변’하고 있을까? 현재의 정당정치체계와 국회의원들은 과연 제대로 된 ‘대의(代議)’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회가 국민의 일상과 삶을 보다 안락하고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을까? ‘자유주의의 정신이며 양심’으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대의정부론(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1861)에서 국민들의 인간성(humanity)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시 말해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도덕적·지적 자질을 잘 발전시킬 수 있는 정부가 ‘좋은 정부(Good Government)’, ‘탁월한 정부’라고 보았다.

그가 희구하는 좋은 정부는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진보를 촉진하는 정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사법 정의가 실현시킬 수 있도록 사법제도가 탁월하게 작동되도록 해야 하고,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덕성과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단순히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그 사회 고유의 교육 수준에 맞게 공공업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대의기구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정부의 국민 교육 기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역할이 바람직한 대의정부의 기능이라면 현재 우리 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한참 부족하다는 점만 일단 지적해 둔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3대 대의 정부기구 중에서 최근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영역은 입법부이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우 정권의 지향에 따라 편향적 정책이나 판결을 생산하여 국민의 보편적 의사와 정서에 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우 오랜 동안 안정된 법체계와 제도에 의해 운용됨으로써 큰 틀에서 기본 골격이 유지되며, 국가발전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도 자기 회복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이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 개최된 '특권의 전당 국회,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반면에 입법부의 경우, 불안정한 정치 영역의 특성 상 일관된 입법 가치나 정책 지향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국회의원의 수나 정당의 지형도와 영향력에 따라 법과 정책, 제도의 정략적 형성과 변형이 수시로 일어나고 시도된다.

정당의 이합집산과 정당 내 계파주의가 심각한 한국의 경우 국회의 비정형적 입법기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은 단순히 정당의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정당한 국가 법체계의 형성자로 기능하기보다,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을 활용하여 국가의 여러 기능에 음성적으로 개입하여 사익(private interest) 추구에 몰두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국회가 국민의 보편적 의사를 대변하기보다, 주로 정당과 특수 집단의 편향된 의사를 더 자주, 더 많이 대변하게 된다. 이는 ‘대의(代議)정부’와 ‘의회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의미한다.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일부 국민들이 개별 정당에서 “대신 해줄 의지나 능력”을 찾게 되는 경향이 심화된다.

‘편향적 대의’의 관행은 정당과 국회의원에 연줄을 대는 음성적 행태를 고착시키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게다가 국회의원들은 입법기능을 담보로 국가의 여러 영역에서 전제적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는 이른바 ‘과잉통제(over-government)’가 발생한다. 이런 통제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거래 비용’이 바로 부패다.

특히 입법을 전제로 한 이해집단과의 ‘입법 거래’는 그 일탈과 죄질이 너무나 무겁다. ‘보편적 대의’의 관행이 정착되면 부패가 끼어들 틈이 축소된다. 따라서 국민의 보편적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로 거듭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둘째, 국회의 입법과정에 전문가의 감시와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다수의 사람으로 구성된 대의기구의 전문성 부족을 우려한 바 있다.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입법을 위해 국회의 입법 활동에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의회가 민의를 대변해야 하지만, “입법과정에서 숙련된 노동과 전문적인 연구, 그리고 경험이 가미된” 제대로 된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 각료의 수를 넘지 않는 선에서 법안을 만드는 일을 전문으로 맡아서 하는 ‘입법위원회(Commission of legislation)’같은 특별 조직을 반드시 갖추는 것이 좋다.”고 제안한 바 있다.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그 취지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현대 대의정부의 입법부가 ‘입법기능’을 제1의 핵심기능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의회가 잘 할 수 없는 행정과 입법에 지나치게 관여하려하지 말고, 즉 ‘행동(doing)’을 하지 말고, ‘담화(talking)’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대의기구가 국정의 당면과제에 대한 담화와 토론을 일차적 임무로 수행하라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이런 주장은 입법과정을 통해 정책을 형성하고 정부를 통제하려는 현대 의회주의자들에게는 매우 도발적이고 불쾌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대의정부에 내재한 결함과 초래하기 쉬운 위험요소들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의기구가 전반적으로 무지와 무능력에 빠지거나, 공동체 전체의 복리와 일치하지 않는 이해관계의 영향 아래 놓이는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민주 정부는 꽤 괜찮은 경우에도 변덕스럽고 근시안적 행태를 보일 때가 너무 많다.”는 우려도 설득력이 있다. 전문지식이 턱 없이 부족하거나, 특정 지역이나 계층의 이해에 얽혀 편벽된 입법을 하기 일쑤인 우리 국회의원들에겐 분명한 일침이다.

셋째, 국회의원들의 ‘계급입법(class legislation)’을 막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특수한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특수한 입법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특정한 법률 제정 및 개정, 또는 특수한 사업 예산의 편성 등을 조건으로 삼아 일체의 입법행위를 방임하거나 거래하려는 관행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 현상 가운데 하나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기구가 입법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고, 공동체의 일반 이익과 충돌하는 특정 이해에 억매인 ‘사악한 이해(sinister interest)’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갈파했다. 그는 의회권력이 “특정 집단 또는 계급의 이해관계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기적 동기에서 권력자들이 ‘사악한 이익’에 몰두하여 빚어내는 ‘계급입법(class legislation)’이 최선의 대의정부를 위협하는 중대한 해악임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최선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이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밀이 ‘숙련 민주주의(skilled democracy)’를 꿈꾼 이유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민주적 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그에 못지않게 소수파의 존재 이유, 특히 전문가의 역할을 집중 조명했다.

대의정부는 이런 정치적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운용되어야 한다. 대의기구를 통제할 수 있는 국민의 지적 수준이 낮거나, 다수파가 당파적 이익에 따라 계급입법을 시도할 때, 대의민주주의의 존립이 흔들린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다수파의 횡포보다 오히려 소수파의 전횡이 더 큰 역기능을 만들어내는 기이한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특히 특수한 이해를 대변하는 강경한 소수파 국회의원들이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의 원리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고수하려 할 때 당내 민주주의와 보편적 국민의사의 합리적 대의 과정은 실종된다. 이는 ‘거짓 민주주의(false democracy)’에 불과하다.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참된 민주주의’의 구현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의민주주의의 황금률을 벗어난 국회선진화법의 모순을 시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요즘 국회의원의 지나친 특권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의회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하는 박경귀 원장.
넷째, 국회의원들은 주인이 아니라 대리인일 뿐이다(Principle-Agency Theory). 특권은 내려놓고 소명을 짊어지라.

존 스튜어트 밀은 국회의원들이 이기적 당파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의회에서 무기명 투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의원들이 유권자에게 매달리는 폐습을 극복하기 위해 의원 임기를 5년 이상으로 하고, 의원들이 출신 지역 유권자의 대리인으로 전락하지 않고 독자적인 대표(agent)로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것을 서약하도록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현대 대의제도에서도 숙고해 볼만하다.

이른바 ‘당론 투표’라는 명목으로 강요되는 비민주적 의사(議事)행위는 참된 대의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나쁜 행태다. 국가의 발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심의안건에 대해서 국민들이 개별 국회의원들의 의사결정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도 대의민주주의의 참뜻을 살리는 길이다. 국민의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당파적 이기심과 계급적 이해에 휩쓸릴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내재적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논의가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들은 이성의 힘이 작동되는 합리적 대의정부를 희구한다. 이기적 당파성에 좌우되는 대의기구에 입법 기능을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 대리인(Agent)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주인’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국회’라는 헌법적 대의기구의 틀을 유지하되 진정한 주인(Principle)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즉 입법과정에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입법기능에 대한 국민의 단순한 모니터링을 넘어 적극적인 참여 방식의 도입을 검토할 때다.

각 상임위원회에 가칭 ‘국민입법위원’ 제도를 신설하여 법률안 검토 과정에 국회의원들의 ‘사악한 이해’가 개입되는 것을 방지하고 전문가의 합리적 입법대안이 폭넓게 검토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국민입법위원은 각 정당에서 공개 공모를 통해 선발하여 국회에 추천하고, 이들의 활동이 체계적으로 기록 관리된다면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법기능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대의민주주의의 시험이 필요한 시기다.

모든 독점은 폐해를 낳는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는 입법기능을 토대로 대한민국 대의정부 전체를 독식하려 하고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을 보인지 오래다. 이에 따라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국회의원의 특권의식과 반칙이 고착화되고 국민들의 정치혐오는 깊어진다. 국회가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이끄는 주체가 되기보다 이를 지체시키고 제약하는 상황을 양산하는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회의 새로운 변신은 국회의원들이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한 정파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진정한 대리인이 되고자 하는 겸손한 소명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 SNS 혁명으로 대중들의 의사 표명의 기회는 획기적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과 입법 과정에서 국민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국민들이 국가의 정책과 정치적 이슈에 대해 광범위하게 토론하고, 입법과정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대의’가 구현될 수 있다. 이를 희구하는 국민들의 욕구와 압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정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이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 개최한 '특권의 전당 국회,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의 발표한 토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