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쟁력지수 144개국중 하위권...정부 관섭 말고 주인에 맡겨야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실물경제와 금융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근육과 혈관의 관계이다. 어떤 이의 근육이 아무리 튼튼해도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으면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한 나라의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조업의 생산과 수출이 활발해도 금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라 경제 전체에 조금씩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실물과 금융은 상호 보강적으로 발전해야 경제 전체가 활력을 띠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상황은 이런 기대에 못 미친다.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담금질해온 제조업과 달리 한국의 금융산업은 내수시장에서 담보와 보증, 그리고 단순중개 및 이자수익 위주의 영업에 안주해 왔고, 그 결과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매우 열악하다.
 

이 사실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세계경쟁력지수(GCI 2014-2015) 순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지표에서 한국의 금융산업은 노동시장, 제도와 함께 한국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문이다. 전체 조사대상 144개국 중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은 86위, 제도경쟁력은 82위,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이다.

반면에 기업활동 성숙도(27위), 기업혁신(17위), 상품시장 효율성(33위) 등 실물 부문의 경쟁력 순위는 한참 앞서 있다. 심하게 얘기하면 금융부문이 실물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좀먹는 형국이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또 다시 나섰다. 정부는 지난 8월 12일, 대통령 주재의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금융과 함께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교육, 물류, 소프트웨어를 7대 유망 서비스산업으로 정하고 분야별로 성과목표와 정책과제를 담은 내용이다.

금융만 보면, 부가가치(GDP) 비중을 2012년의 6.7%에서 2017년에는 8.0%로 올리겠다는 목표가 그럴 듯하다. 정책 중에서는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금공급, 기업성장 단계별 맞춤형 금융지원은 귀에 익은 레토릭과 함께 금융지주회사의 전략기능 활성화를 위해 지주사에 ‘경영관리협의회’와 ‘위험관리협의회’를 설치하여 그룹 차원의 주요 의사결정을 공식화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 분야에 과문한 탓인지 필자로서는 뜻밖이다. 정부가 금융회사의 전략기능 활성화를 명분으로 경영조직구조까지 개입하는 게 맞는가? 금융 경쟁력 향상을 위해 분명히 정부가 할 일이 있다. 투자활성화 대책 이전에 발표한 ‘금융규제 개혁방안(7.10일)’이 그런 일들이다. 그러나 금융회사는 공공기관이 아닌 주식회사이고, 공기업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주식회사의 의사결정구조, 경영조직구조를 설계하고 대통령 앞에서 국민에게 대놓고 개입을 천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민영화 되었어도 은행은 여전히 관련 부처 공무원들에게 공공기관으로 각인되어 있는가 보다. KB 금융지주 CEO의 인사파동을 비롯하여 관치 금융·관피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 우리나라 금융 경쟁력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금융허브 계획 10년만에 금융 부문의 GCI 순위는 23위에서 81위로 58단계나 추락했다. 이토록 경쟁력이 떨어진 까닭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짚어봐야 했다. 금융의 대형화, 겸업화, 민영화가 되었어도 실질적인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관치의 입김이 더 깊숙하고 은밀하게 작용한 탓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정부가 주도하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 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2003년 12월, 당시 노무현 정부는 우리나라를 홍콩과 도쿄에 버금가는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며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2012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의 지역본부를 유치하고 국내 은행과 보험사를 대형화해서 동북아 대표 금융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어떤가? 외국 금융기관의 지역본부 유치는 흔적이 없고 국내 은행·보험사의 국제적 위상은 아직도 그저 그런 상태이다. 금융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 여의도에 국제금융센터(IFC) 빌딩이 생겼지만 그 안에 외국계 금융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의도 회사원 사이에 IFC는 International Food Court의 약자로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다.

□ 관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금융모델을 통해 경쟁압력을 높이는 게 관건
 

정부의 계획과 달리 우리나라 금융 경쟁력은 완전히 거꾸로 갔다. 금융허브 계획 10년 만에 금융 부문의 GCI 순위는 23위에서 81위로 58단계나 추락했다. 정부가 언급한 2012년도 금융산업의 GDP 비중(6.7%)은 2005년 국민계정방식에 근거한 것이다. 2010년 새 기준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GDP 비중은 2003년도 6.9%에서 2012년도 6.1%, 2013년도 5.5%로 크게 하락하였다.

따라서 현 정부가 금융산업 발전을 논하려면 그동안의 계획과 많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경쟁력이 떨어진 까닭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짚어봐야 했다. 금융의 대형화, 겸업화, 민영화가 되었어도 실질적인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관치의 입김이 더 깊숙하고 은밀하게 작용한 탓이 아닌지 해당 부처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일각에서는 감독부처 공무원이 퇴직 이후 금융회사 경영자로서 또는 감사·이사로서 포진하는 관행부터 끊어야 금융산업이 제 역할을 찾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면 민영화 금융회사에 대해 실질적인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비금융 주력자는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총수의 4%까지만 보유할 수 있게 규제하고 있는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제안은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지형과 정부의 태도를 감안할 때 사실상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기존의 금융업체는 놔두고 이와는 별개로 주인이 있는 새로운 금융 비즈니스 모델을 허용하는 방안은 어떨까.

예를 들어 인터넷 또는 SNS 기반의 금융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허용하고, 전국에 이미 유통망을 갖춘 업체들이 은행 업무를 겸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시장 전반에 경쟁압력을 높이는 방안이다. 금융회사의 전략기능에 까지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개입하지 않아도 업체 스스로 생존을 위해 경쟁력 향상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것이 산업정책의 上策 중 上策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