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도 법 제정땐 평균 수명 50세...정부·여당 개정 앞장서야

공무원 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당장 2조 원이 넘는 재정적자를 국고로 메워주는 상황에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과 연금은 민간대비 낮은 급여, 정치적 중립의무와 퇴직 후 재취업 제한 등에 대한 보상이라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저출산에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의 연금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에는 양쪽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재 이성적인 논의보다 격한 찬-반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바른시민사회회의에서는 2일 프레스센터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를 개최, 폭 넓은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재정 안정화를 위한 공무원 연금 개혁방안-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토론문]

지난 9월22일 국회에서 예정됐던 공무원연금 개혁 정책토론회가 일거에 몰려든 공무원노조의 육탄저지로 무산됐다. 공무원연금 개선방안이 공론의 장에 오르지도 못한 정말 유감스런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개혁안은 공무원 연금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 단체인 한국연금학회가 오래 연구해온 결과였다. 쌀 관세화를 앞두고 일부 농민단체가 정부의 전국순회 설명회를 줄줄이 무산시킨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공무원의 저항은 어느 정도는 예견됐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더기로 몰려가 국회에서 진행되는 토론회 자체를 가로막은 건 정말로 상식 밖의 일이었다. ‘공무원들이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는 일각의 비판처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물론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반대에는 귀 기울여볼 대목도 분명히 있다. 채용 때 조건, 국민연금과 차이점 등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입장도 토론회장에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당시는 여전히 공론화의 초기단계라고 할 상황이었다. 이후로도 당정협의 같은 과정이 남아 있었고, 본격적인 법개정 작업도 남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민주적 절차에 참가하기는커녕 이를 몸으로 막아섰다. 이들의 고용주인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 일인가. 공무원연금 문제의 본질은 매우 분명하다.

당초 설계된 대로 계속 지급할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연금법이 제정된 1960년도만 해도 평균수명이 겨우 50세를 넘길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80~90세는 예사이고, 100세 시대로 간다. 2014년 현재 37만 명인 연금수령자가 2025년에는 65만 명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

지금 고령화 추세를 보면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많아 질 것이다. 기금이 고갈돼 이미 연간 2조원의 세금이 투입되지만 4년 뒤엔 이게 5조원에 육박한다는 계산도 나와 있다. 더 내고 덜 받게 하고, 신규 임용자는 연금의 틀을 바꾸자는 개혁의 당위성과 개혁의 방향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단순히 국민연금과 형평맞추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에도 문제는 있다.

둘 다 연금이라고 부르지만 법적인 연금과 사회적 부조는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 납부액 대비 지급률, 소득대체율에서 과도한 격차를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연금은 연금, 사회보험은 사회보험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본질을 정부가 솔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연금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세금에 기대서라도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국민의 집단 적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 오해도 풀린다.

또 공무원들이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확 끌어올리자는 황당한 주장도 막을 수가 있다. 사실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도 때로는 국민연금과 직접비교 때문에 희석되어 버리는 일이 생긴다. 한 묶음으로 무리하게 엮을 게 아니라 한쪽은 기금의 고갈 사실을, 또 한쪽은 그 실체를 명확히 할 때 제대로 된 개혁안이 나올 수 있다.
 

수개월째 제자리인 공무원개혁은 앞서 여러 번 시도가 됐었다. 1995년 이후 네 번째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무엇보다 국회와 정치권이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퇴직 후 노후보장에 스스로 칼을 대야 하는 셀프개혁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고려할 사항도 한둘이 아니다. 가중되는 재정부담이나 국민연금과 비교해서도 개혁의 필요성은 진작 제기됐지만 속도를 못내는 까닭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임용 조건, 법적 성격의 차이, 공직의 안정성 등 여러 가지 고려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거듭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간 드러났던 새누리당의 묘한 입장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 문제를 정부(안전행정부)에 주로 미뤄왔다. 정책라인의 고위 당직자들은 “표 떨어질 일에 왜 나서나”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였다. 100만 공무원들에게 원성 살 일에 앞장설 이유가 없다는 당당하지 못한 입장이었다.

집권 여당의 이런 저급하고 이기적인 무책임성에 기가 막힐 정도였다. 이러니 집권당의 책임성은 온데간데없다. 정부가 임무를 게을리하면 이를 재촉해야 할 곳이 새누리당인데 안행부가 안을 만들어오면 뒤늦게 취사선택하고 생색용으로 약간의미세조정이나 하면서 슬며시 추인하는 모양새로 가겠다는 꼼수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몇 차례 당·정·청 협의를 가졌으면서도 때로는 논의 자체가 안됐다는 공식 발표만 있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공무원연금 개혁은 난제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큰 틀에서 원칙론으로 보면 답이 없을 리 없다. 연금 산정기준을 퇴직 전년도 소득에서 가입기간 전체평균 소득으로 내리고, 월 소득의 14%인 보험료율도 점차 높이는 등을 두루 결합하면 매년 수조 원씩인 국고보전액도 줄여나갈 수 있다. 연금 제도의 유지나 국민통합 차원에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지급률 격차가 줄어들도록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에도 정부와 여당은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기능이고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라고 본다.
 

새누리당이 끝내 책임은 피하면서 큰소리나 치겠다면 한심한 일이다. 공무원표를 얼마나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엄중한 시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처사다. 거듭 생각해봐도 정말로 무책임한 집권 여당이다.
 

한편 2014년 공무원들 평균 월 소득이 447만원이라고 안전행정부가 관보에 고시했다. 전년보다 12만원 올랐다. 직급보조비 등 비과세 항목을 합치면 물론 더 많아진다. 이 금액만으로도 300명 이상의 중견·대기업 평균 432만원보다 많다. 종업원 5인 이상 중소 사업체의 305만원과는 비교도 안 된다. 공무원 임금의 절대수준을 놓고 높낮이를 말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무조건 ‘공무원=박봉’이라는 주장도 맞지 않다. 국민연금에 대한 개혁압박 여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측면이 있다.

2014년부터 공무원 100만명 시대가 됐다. 공직 유지 때문에 재정위기가 온다면 남유럽국(PIIGS)꼴이 될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이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일 개최한 ‘공무원 연금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발표한 토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