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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모델은 왜 미국인가 ?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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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0-01-18 14: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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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일 전 베트남 대사
정치권력은 지배와 통제시스템을 지칭한다. 유럽의 정치잣대로는 양쪽에 좌,우 정당이 있고, 극좌는 공산주의, 극우는 파시즘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전혀 다르다. 잣대는 정당이 아니라 정치권력이다. 잣대의 한쪽 끝은 폭정이고 그 반대쪽은 무정부(무법) 상태이다.

'국민의 법(common law)'과 정부는 잣대의 중앙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가 있다.

아담스 2대 대통령이 미국인은 모두 양대 정당의 영역 에서 자기들 생각과 같은 점을 찾을수 있다고 하면서 미국의 두 정당은 '이름은 다르나 같은 원칙을 나누어 가진 형제'일 뿐이라고 한 것은 미국의 양대 정당이 모두 개인의 자유와 "국민이 지배하는 공화주의"를 신봉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의 양당의 차잇점은  사소한 것이어서 연방정부가 관장하는 외교안보문제등 국익에 관한 잇슈에는 양당 입장에 별 차이가 없다.

무정부상태란  혼란한 무법천지로 지배와 통제권력이 작동하지 못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킬 수 없는 상태이다.  

반대쪽은 '지배자 법(ruler's law)'의 횡포로 정부가 과다한 통제와 압력을 국민에게 가하는 폭정이 자리잡는다.

중앙에 위치한 '국민의 법'은 정부가 안보, 정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지만 권력을 남용할 경우에는 국민이 정부를 견제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지배자의 법'은 지배자의 변덕스런 마음으로 구성하는 정부가 명령과 폭력으로 권위를 유지하는 독재체제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은 신분제로 차별화해서 추종자는 우대하고 대다수 일반국민은 폭정의 제물이 된다.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이 범주에 속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프랑스혁명의 과정에서 처음에는 자유.평등.박애를 외치며 무정부상태로 몰아가다가 갑자기 180도 돌변해서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폭정 으로 바꾸는 인간심리의 난해한 광란을 보게 되었다. 

근대 보수주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는 테러로 수 많은 사람을 학살하기 2년전부터 프랑스혁명이 유럽의 영광인 찬란한 문화,도덕,정치적 유산을 말살시켜 유구 한 역사의 지혜와 삶의 원칙을 빼앗으면 그 손해는 엄청 나고 나침판 마져 잃게되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조차 없다고 개탄했다.

그래서 건국의 이버지들은 비이성적 돌발상황도 방지 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았다. 

앵글로삭슨과 이스라엘의 '국민의 법'이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미국헌법의 기본이 되어 중앙에서 균형을 잡아주면, 그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링컨도 원하던 바와 같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정부"를 영속시킬 수 있겠다고 믿었다.

   
▲ 정치권력은 지배와 통제시스템을 지칭한다. 유럽의 정치잣대로는 양쪽에 좌,우 정당이 있고, 극좌는 공산주의, 극우는 파시즘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전혀 다르다. 잣대는 정당이 아니라 정치권력이다. 잣대의 한쪽 끝은 폭정이고 그 반대쪽은 무정부(무법) 상태이다.'국민의 법(common law)'과 정부는 잣대의 중앙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가 있다.사진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페이스북

그렇다면 앵글로삭슨과 이스라엘 "국민의 법"의 골자는 무엇인가 ?

1. 국가의 체제는 국민이 지배하는 공화국이어야 한다.
2. 지도자는 국민 콘센서스로 선출한다.
3. 국민을 지배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따른 자연법이다.
4.권력은 특정계층에 집중되지 않고  전국민에게 분산 되어야 한다.
전쟁시 지도자의 강력한 권력은 임시적이며  쉽게 회수 할 수 있어야 한다.
5. 시민그룹은 소규모로 해 권리행사가 용이해야 한다.
6. 개인권리는 이전불가능하며 이를 침해하면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7. 정의시스템은 완전한 배상을 못하면 엄벌하고,
국민을 배반하면 반역자(비겁자, 탈영자)로 엄벌한다.
경범을 범하면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 
8. 증거가 불충분하면 무죄로 추정한다.

1787년에는 제헌회의가 개최되었다. 13개주 대표들의 콘센서스를 도출하기 위해 제헌회의 는 4개월이란 장기간의 심각한 토론을 거쳐 각 대표의 이견을 최대한 좁혀 나갔다.

이견이 제일 많았던 대통령 선출방식은 무려 60회의 투표를 거쳐야만 했다.다행인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역사, 철학, 정치, 법률, 경제, 교육, 과학등 다양한 분야 를 섭렵한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어서 13개주 대표들 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 헌법은 국민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주정부, 카운티 (군), 타운 그리고 가정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해밀턴, 매디슨, 죤 제이가 꾸준히  발표한 정치, 법, 철학엣세이(Federalist Papers) 100여편은 지금까지도 법원판결에서 인용되는 중요문서로 남게 되었다.

제헌회의 의장 매디슨(제4대 대통령)은 회의를 끝내고 나서, 어려운 고비가 수없이 많아서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 덕분에 성취 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헌법이 제정되고 나서 2년후 워싱톤 대통령은 3년전만 해도 전혀 기대하지 못 했으나, 앵글로삭슨 방식의 국민친화적 헌법이 단기간내에 국민생활을 풍요롭게 해 줘 국민들이 안심하고 새 정부를 신뢰하게 된 데 대해 남다른 기쁨을 느낀다고 표명했다.

유럽의 각국도 줄이어 미국의 훌륭한 헌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대해 찬사를 보냈다. /조원일 전 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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