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국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의 상징적 존재인 쿠팡이 한국 증시가 아닌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업계 파장이 일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음식배달 앱인 '배달의 민족(우아한형제들)'의 국내 상장유치를 놓친 한국거래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유니콘 기업인 우아한형제들이 국내 상장 대신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 달러로 매각됐다. 이는 한화 가치로 4조 7000억원의 거액이다. 아울러 우아한형제들은 이번 매각으로 독일 증시에 상장된 것과 동일한 상황이 됐다. 한국 증시 입장에서는 ‘대어’를 놓친 셈이다.

   
▲ 사진=연합뉴스
이 가운데 또 다른 유니콘 기업인 쿠팡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9일 쿠팡이 ‘2021년 상장’을 위한 개편에 착수했다는 기사를 송고했다. 여기에서의 상장이란 국내 증시가 아닌 뉴욕증시, 즉 나스닥을 의미한다. 쿠팡은 창업 이후 줄곧 나스닥 입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혀왔다. 이제 드디어 구체적인 실행을 시작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코스피(유가증권시장)나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한때 금융투자업계의 상식이었지만 최근엔 그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해외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늘어난 것은 물론 상장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않는 회사들도 많아졌다.

해외증시와 국내증시의 매력도 차이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기업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회사들에게 ‘애국심’ 같은 명분만으로 국내 상장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국내 소비자들과 함께 성장한 회사들이 정작 상장은 해외증시에서 하는 상황이 한국거래소 입장에서 뼈아픈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증시의 경우 국내 증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넓고 투자자가 많다는 게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 “보다 큰 ‘판’에 상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회사들이 국내 증시를 건너뛰고 선진국 시장으로 넘어가는 건 한국만이 아니라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라진 또 한 가지 점은 해외든 국내든 주식시장 상장을 아예 하지 않는 회사들도 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이다. 장외시장에서 거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여기에는 국내 증시 상장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를테면 차등의결권 문제가 그렇다. 차등의결권이란 특정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경영권 방어 제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창업한 미국의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주식을 20%도 갖고 있지 않지만 의결권은 거의 60% 정도를 갖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이 국내와 달리 차등의결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에서도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대기업의 편법 상속에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번번이 무산돼 왔다. 작년에 정부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서는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뿐더러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서는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한국 증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대어를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거래소는 개별 기업에 접촉해 코스닥 시장의 장점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유니콘 기업의 상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증시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차등의결권을 비롯한 과감한 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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