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인간 욕망 해방구 지나친 평등과 공정요구는 무리

착한 자본주의?

   
▲ 남정욱 숭실대교수
80년대 초반 운동하던 선배와 나눈 대화다. “형, 북한에도 학생운동이 있을까?” “운동은 세계의 본질이니까 아마 있지 않을까?” “그럼 걔네는 무슨 이데올로기를 갖고 운동해?” “거기는 사회주의니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우리랑 반대네? 그럼 복잡하게 굴지 말고 그냥 우리랑 걔네랑 바꿔 살면 되잖아.” 퍽! 퍽! 퍽! 무수한 ‘아마’에 이어 무수한 폭행으로 끝난 대화였다.

인지가 다소 향상된 지금이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선배, 우리는 평등을 이슈로 운동하잖아. 그럼 북한은 자유를 이슈로 운동하는 거야?” “당연하지. 걔네는 평등이라면 지겹게 겪었잖아.” “선배, 미안하지만 북한이 지겹게 겪은 건 가난이지 평등이 아니죠. 다 같이 못 사는 걸 평등이라 부르면 평등이 화내죠.”

   
▲ 신간도서 『불평사회 작별기』 북콘서트에서의 남정욱 작가 

평등. 참 아름다운 발상이기는 하지만 인간하고는 인연이 없는 단어다. 인간, 애초부터 평등하지 않다. 가끔 법 앞에서 평등할 때도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심성으로 평등을 성취하자는 분들 있다.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나눠주잔다. 인간의 본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상이다. 아흔아홉 개 가진 놈이 한 개 가진 놈 것을 빼앗아 기어이 백 개를 채우는 게 인간이다.

이 끔찍한 자본주의가 3세기째 이어지고 있는 건 이 체제가 경제공학적으로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100퍼센트 욕망 덩어리인 인간이란 종에게 너무나 잘 맞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착한 자본주의? 다 사기다. 차라리 영양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자, 채식하는 사자를 찾아나서는 게 빠르다. 자본주의 4.0? 자본주의가 무슨 윈도우냐.

   
▲ 남정욱 작가의 『불평사회 작별기』 신간도서 

해서 나온 게 ‘공정’이다. 기량이 다르니 출발이라도 같게 해주자는 얘기다. 실은 이것도 자본주의의 간계다. 계속 빨아먹기만 하면 판이 엎어지니까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해보자는 발상이다. 그렇게 나쁜 거라면 당장에라도 갈아치워야 하는 거 아닌가. 앞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만큼 인간에게 맞는 옷도 없다. 다들 잘살고 싶어 한다. 쌓아놓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더라도 내 가정의 식탁은 호화롭기를 바란다.

이제껏 경제시스템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욕망을 허한 게 자본주의다. 인간은 절대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진보니 좌파니 하는 사람들은 자꾸만 이 사실을 망각한다. 혹은 모른 척한다. 평등 사회에 도전했다가 몰락한 공산권을 보고서도 다시 해보면 될 수도 있다고 우긴다. 인간 자체를 개조해보겠다고 나선 끝에 국민의 5분의 1을 죽인 크메르루주를 보고도 딴소리를 한다. 인간은 안 바뀐다. 그래서 인간이다.

경제 민주화가 화두다. 일부 수긍할 내용도 있지만 경제 민중화를 잘못 쓴 것 아닌가 싶게 주장들이 사뭇 ‘약탈’적이다. 소생이 생각하는 진짜 경제 민주화는 ‘일자리’다. 돈을 내놓는 대신 일자리를 내놓아라, 주문하는 게 맞고 옳고 현실적이다. 일자리를 내놓는 쪽이나 일자리를 얻은 쪽이나 똑같이 수입이 생겨서 좋은 일이다. 양쪽의 욕망을 다 충족시켜줘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하며 욕망에 호소했다. 빼앗아보세, 나눠줘보세가 아니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다. 청년 아홉 명 중 한 명이 서른까지 취업을 한 번도 못해봤다는 기사를 읽었다. 답을 오래 연구할 필요가 없다. /남정욱 숭실대교수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나가는 토크프로그램 명이 ‘힐링캠프’인 것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힐링의 시대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 쯤 겪는 불평불만은 주로 2030세대에 그 정점을 찍는데, 젊은이들의 이러한 삶을 어루만져 주는 힐링이 인문학․문화․출판계의 대세이다.

힐링의 시대, 힐링이 범람하는 시대는 역으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일명 불평사회 말이다. 그리고 과연 불평과 불만이란 무엇일까. 현 시대를 불평사회라 명하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평과 불만을 명랑하고 맹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취지로, 남정욱 작가가 신간도서 『불평사회 작별기』를 펴냈다.

남 작가는 책에서 “불평, 불만은 내가 생각하는 내 존재와 세상이 보는 내 존재 사이의 격차이며, 내가 바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세상과 실제로 돌아가는 냉정한 세상 사이의 간극이다”라고 밝히며, 이어 “사람들의 충족되지 않은 불만은 결국 자기 연민으로 돌아오고, 스스로 상처 입었다고 인지하여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상황으로 종료되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남 작가는 도서를 통해 “사람들이 이제는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갖고 있는 한심한 심정 및 불평과 작별했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을 밝힌다.

남정욱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혼자 힘으로 반 평균을 떨어뜨렸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갖고 있다. 글을 쓰게 된 사연은 백 퍼센트 우연이라고 한다. 방송작가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후 영화 프로듀서, 출판사 편집장, IT업체 대표를 경유하다 우연히 응모한 신춘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남정욱 작가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장학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1997년 「일간 스포츠」의 신춘대중문학상 감성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대표저서로는 소설 『천사는 가끔 지상에서 죽는다』, 『약속 거짓말 또 거짓말』 등이 꼽히며, 영화평론으로 『오늘은 어디 멀리 바람나고 싶다』 외 다수를 저술했다. 그 외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저술해 왔는데, 영화연구서로는 『한국 영화 황금기를 찍다』, 긍정사관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 현대사』, 정치평론집 『꾿빠이 전교조』, 『꾿빠이 386』 등이 있다. 한국영화 기획프로듀서협회 이사,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