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재시도 청신호
미래 모빌리티 사업 투자 자금마련 숨통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에 제동을 걸고 나섰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모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시장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지배구조개편 작업에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투자도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 없이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 현대·기아자동차 양재동 사옥. /사진=현대차그룹


22일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엘리엇은 그 이전까지 이들 3사의 지분을 각각 2~3%씩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까지 알려진 엘리엇의 보유 지분 규모는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6%, 기아차 2.1%였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던 2018년 4월 이들 3사의 보통주 10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1조500억원) 상당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다음 달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를 통해 엘리엇은 지배구조 개편 관련 사안을 의안으로 하는 임시 주주총회 취소까지 이끌어냈으나 지난해는 8조3000억원의 고배당과 사외이사 선임 등 무리한 요구를 안건으로 제시했다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정기주총 표대결에서 패했다.

당시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대차대조표를 정상화하고 기업 경영구조 개선과 책임경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주장했으나, 기업의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여력을 약화시키고 외국계 자본에 의한 경영간섭이 심화된다는 우려 속에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은 통상 특정 기업의 지분매입 후 지배구조 관련 이슈로 뒤흔들어 주가를 부양한 뒤 지분을 팔고 빠지면서 차익을 챙기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만 엘리엇은 이번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 매매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 주가는 2018년 초 15만∼16만원대였는데 최근엔 12만원 전후다.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패한 뒤 더 이상 표 대결을 통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고 판단, 일찌감치 철수를 결정하고 시기를 가늠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엘리엇이 끼어든 뒤 현대차 주가가 주당 9만원대까지 떨어지면서 매각 손실이 커질 것을 우려해 시기를 지켜보다 지난해 말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매각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엘리엇은 앞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으며 2016년에는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라고 요구하는 등 국내 대기업 경영이슈에 수시로 개입해 왔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함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향후 재개할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확실성 요인 하나를 제거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2018년 5월 지배구조 개편 작업 중단을 선언하면서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해 개선토록 할 것"이라며 향후 재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엘리엇 변수가 사라지면서 현대차그룹이 추진해온 미래 모빌리티 사업과 수소경제 등 중장기 투자사업도 힘을 받게 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외국계 투기자본은 주가 부양을 위한 정책에 자금을 집중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투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미래차 시대에 대비한 투자가 시급한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엘리엇의 철수로) 큰 우환거리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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