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유권자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국당에 실망감

좌파 중에서도 급진 성향 진중권에 시원해하는 기현상
[미디어펜=손혜정 기자]제21대 총선을 80여일 앞둔 최근 야당 정치권의 화두는 단연코 '중도·보수 대통합'과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다.

그러나 '정권 심판'과 관련해서 자유한국당의 주요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 중 일부는 '반문연대'를 주도하는 한국당이나 그 어떤 보수 오피니언 리더들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1명이 보수 10명보다 낫다'는 듯한 반응이다.

이에 "좌파를 우파가 아니라 또 다른 좌파가 맞서 싸우는 구도가 정국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보수 진영의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타난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사진=진중권 페이스북
진 전 교수는 지난해 '조국 사태'로 드러난 좌파 여권의 위선과 이중성 등에 대해 '사이다' 비판을 내놓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조국과 친구지만 정의는 외면할 수 없다"며 "조국 문제를 진영논리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권을 향해서도 현재 수사 중이거나 의혹이 제기된 권력형 범죄를 거론하며 "관련된 의혹들에 연루된 친문 실세들은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치외법권의 영역에서 살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이 양아치들에게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졌다"고 전면 공격했다.

이처럼 진 전 교수와 같은 좌파 중에서도 급진 성향을 보이는 논객이 자기 진영을 향해 던지는 날 선 비판에 대해 보수 유권자 일부는 호응을 보내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조국 사태와 청와대 발 게이트 의혹 등을 거치면서도 반사이익은커녕 항상 싸움에서 밀리는 한국당의 모습에 보수 진영은 거듭 실망과 피로를 쌓아온 눈치다.

뿐만 아니라 한국당은 현재 '중도·보수 통합' 논의에 더 집중하는 터라 문재인 정부와 비리 의혹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검찰 인사' 단행,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해서도 회의 때 몇 마디 비판하는 것 외에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전혀 도닥거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반문연대라하면서 현 사안에 대한 진 전 교수의 강력한 비판만큼 정치권이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으니, 보수 정당에 만족하지 못한 한국당 지지층이 진 전 교수에게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22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중도보수 통합에 대해 논의했다./사진=자유한국당
그러나 진 전 교수는 정의를 내세우며 이른바 진보 진영의 사실 왜곡과 여론 선동에 진저리치는 것일 뿐,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보수 진영으로 전향을 하거나 돌아선 것은 결코 아니다.

진 전 교수의 친문 비판에 대해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칭찬하자 그는 '정치좀비'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이 의원도 이른바 진보 진영에 몸 담고 있다가 갑자기 같은 진영을 향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수의 지지를 단숨에 얻은 케이스다.

또한 진 전 교수는 보수 진영이 지향하는 가치와는 여전히 전면 배치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성전환 하사 강제전역' 건에 대해서도 진 전 교수는 "입으로 '애국'이니 '국방'이니 떠드는 인간들 다 가짜, 위선"이라며 "보수주의자들이 나서서 '그들에게도 애국을 허락하라'고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며 "휴가 중 성전환이라는 엄중한 결정을 자기 마음대로 해놓고 그것을 받아달라는 일방적 행위는 군대를 넘어 모든 국가의 모든 조직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사항"이라는 신중한 입장이다.

아울러 이들은 진 전 교수의 견해에 대해 "사회철학에서나 통할 인간의 자기 결정권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라는 공동체 운영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권위를 모조리 무시하는 것"이라며 "진 전 교수가 말한 '애국할 권리'는 요구라기보다 일방적 자기 선택을 한 자의 일종의 감성폭력"이라는 시각이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성전환 하사 강제전역' 건에 대한 비판 글을 게재했다./사진=진중권 페이스북 캡처
한 정치학 교수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좌파를 우파가 아니라 또 다른 좌파가 맞서 싸우는 구도가 정국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은 우파의 진정한 위기를 방증한다"며 "우파는 진정 멸종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 다른 교수는 '미디어펜'에 현재 진 전 교수에 대한 보수의 호응을 두고 안일함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파는 3가지에서 오류를 범했다"며 "첫째, 이명박 정부 시절 천안함·연평도 포격 때의 안보 포기. 자국이 공격당했을 때 공격당사국에 대한 어떤 응징 타격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둘째, 여론을 읽지 못하는 점. 수도권이 모두 좌파에게 넘어가는 이유를 조금도 인지하지 못하며 형식적으로라도 지역구 이익을 위해 뛰어야 하는데 마치 전리품 챙기듯 의원직을 받고 누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셋째로 "이념 투쟁의 부재. 이것은 끊임없이 국가의 가치를 흔들고 들어오는 좌파들의 이념 투쟁을 피하기만 했지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은 것"이라며 "정치는 여론전이고 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정치 활동과 노선 투쟁이 필요한데 우파는 최대한 일을 만들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고 분석했다.
[미디어펜=손혜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