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 홀대 축구·야구 등 인기종목 중복 중계...국제대회가 안방대회 전락 자초

   
▲ 이태희 전 방통위 대변인
유례없는 운영미숙으로 비난을 받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중계방송을 맡은 지상파 방송사들은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관점들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방송의 실패’에 가깝다. 사실 출발부터 낙제점은 예정되어 있었고, 정부 당국과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방송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다. 우선 국내에서 열린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였는데도 국민들의 시청권이 충분히 보장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방송법에서는 주요 스포츠 행사에 대해 국민들의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편적 시청권’(universial access)이라고 부르며 보호하고 있다. 둘째는 과연 지상파 방송사 중심의 중계가 스마트 모바일시대에 적합한 방송모델을 제시했느냐는 것이다. 사실 두 쟁점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편적 시청권 논란의 대표적 사례는 대회초반 아시안게임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기억될 한국과 중국의 남자 배드민턴 단체전 결승전 중계를 지상파 3사가 외면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경기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 국내의 어떤 미디어에서도 볼 수 없었고, 물론 지금 VOD로도 볼 수 없다. 일부 발빠른 네티즌들은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5시간 동안 혈투를 벌인 한·중전 경기를 시청한 뒤 “한국에서 열린 경기를 중국을 통해 봤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비인기 종목의 한국 선수들의 경기는 결승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중계되지 않은 반면 축구, 야구 및 스타플레이어 들의 경기는 예선전부터 중복 중계됐다. 지상파의 자회사인 케이블 채널들도 계약에 따라 지상파가 중계한 경기만을 재방송했고, 한국선수들의 메달 장면만을 하이라이트로 편집해 반복 보도했다.
 

더욱이 명실상부한 국제 대회였지만 방송은 완전히 국내용이었다. 대회 조직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양궁과 사격, 역도 3개 종목에서 모두 17개 세계신기록이 나왔고, 이중 12개가 역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중 북한 선수들이 5개의 세계신기록을 들어 올린 역도 경기는 중계방송은 물론 경기 장면을 담은 동영상 조차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프리카TV사이트에도 사재혁 선수 실격 장면 등 딱 두 건만이 올라있다).

   
▲ 방송사들이 '우생순' 신화를 다시 쓴 여자 핸드볼 중계를 외면해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진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여자 핸드볼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 경기.
대신 북한 역도 선수들의 경기후 인터뷰 장면만 TV조선이 따로 녹화해 보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이 역시도 다소 희화적으로 보도됐다). 결국 스포츠의 진수를 알린 세계 신기록 장면도, 불모지를 일구며 국민들에게 자신의 종목을 알리려고 피땀 흘린 한국의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경기들도 국민들은 즐길 수 없었던 것이다.
 

스포츠 중계에서의 보편적 시청권(universial access)은 방송법 76조에 보장된 시청자의 권리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07년 방송법 개정에서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로 보편적 시청권을 법제화했다. 방통위는 국민적 관심이 큰 체육경기로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축구경기, 아시안게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국가대표 축구 A매치를 선정하고,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민저체가구수의 90%이상, 나머지는 국내전체가구의 75%이상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방송수단을 확보하도록 했다.
 

따라서 핸드볼 결승전 불방 등은 법조항으로 따지자면 ‘보편적 시청권’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에서 아시안게임을 중계하면 된다고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종목을 중계할지는 방송사의 ‘자율영역’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지상파 방송3사는 이번에 개폐막식만 3사가 동시 중계하고, 439개 경기 가운데 21개 주요 종목 경기와 시청자 관심이 높은 수영과 리듬체조, 야구, 축구 경기를 일자별 예선별로 단독 또는 2사 동시 중계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배드민턴은 방송사가 합의한 인기종목에 포함되지 않았고, 방송사들은 5시간이 넘을 수도 있는 단체전 결승전 중계를 포기한 것이다. 방송사들의 중계방송 경기 선정 원칙은 당연히 ‘시청률’일 것이다. 엄청난 금액의 중계료가 들어갔으니 ‘본전’을 뽑기 위해선 광고 수요가 있는 시청률 높은 경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불가피한 측면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법은 방송사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지만 ‘상식’은 지상파 방송들의 행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보편적 시청권 규제가 전반적으로 업데이트될 시점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스포츠 경기를 ‘무료로 (혹은 추가부담없이) 시청’할 수 있도록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스포츠 상업주의가 맞물려 지상파와 유선방송 채널간의 경쟁으로 중계권 가격이 폭등했고, 일부 유료방송 채널의 중계권 독점으로 유료채널 비가입자는 주요 스포츠경기를 볼 수 없게 되자 도입된 개념이다. 때문에 보편적 시청권은 ‘넓은 커버리지를 지닌 지상파 방송사가 국민 관심 경기는 중계하라’는 지상파에 대한 특혜적인 성격이 있다. 한명이라도 많은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보편적 시청권 제도가 국민의 시청권 보호를 넘어서 지상파 상업주의 보호를 위한 버팀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최근 수년간 올림픽과 월드컵 등 주요행사가 있을 때마다 중계권을 쥔 지상파와 재송신을 해야 하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유·무선 IPTV, 포털 및 인터넷TV간의 재송신료 다툼이 반복되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때는 통신사과 운영하는 모바일 IPTV나 ‘티빙’같은 N스크린서비스에서 중계권료 협상 불발로 중계를 하지 못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주요 포털들이 중계방송을 포기했고, 심지어 다시보기 서비스도 하지 않았다. 네이트와 아프리카TV만이 협상에 성공,중계권을 획득했다.
 

다시 두 번째 이슈로 돌아가자. 다매체 다채널 환경을 넘어 이제는 스마트 모바일시대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지상파방송의 중계를 TV앞에서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실제 보도에 의하면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 한국과 러시아전은 PC와 모바일 플랫폼을 합쳐서 ‘네이버’를 통해 250만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필자 역시도 스포츠 경기를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볼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재송신료 때문에 지상파와 모바일IPTV, 포털들이 매번 중계를 하느니 마느니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 많은 국민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하는 것이 ‘보편적 시청권’의 취지라면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포털에선 네이트가 끼었지 않느냐’는 반론은 적절하지 않다.)
 

과연 지상파 중심의 스포츠 중계독점이 과연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도 ‘보편적 시청권’ 정책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이 이슈는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느냐’를 넘어서 ‘얼마나 다양하게 보여주느냐’ 하는 ‘다양성’의 도입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점을 포괄한다.
 

   
▲ 2일 인천문학축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
지상파는 커버리지는 넓지만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플랫폼(지상파의 유료방송 자회사 포함)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비인기종목이나 세계적 수준의 경기를 모두 커버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렇지만 포털 등의 유무선 플랫폼은 그런 제한에서 자유롭다.
 

물론 포털이나 IPTV, 케이블 등이 지상파 만큼의 자금력이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중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지상파와 함께 풀(pool)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면 어떨까. 이들이 방송의 당사자로 참여하면 해묵은 재송신료 논쟁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지상파에서 시간과 플랫폼의 제한으로 방송하지 못하는 콘텐츠들은 새로운 스마트미디어 플랫폼들에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의 주요경기 중계를 지상파 방송3사의 인력만으로 할 수 없다면 종편을 포함한 케이블의 인력과 장비 등이 투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의 룰을 버리고 사고의 전환을 하기 위해선 많은 제도적 현실적 난관이 있을 것이다. 당장 스마트미디어 플랫폼은 방송법이 정한 ‘방송’에 해당이 되지 않으니 보편적 시청권제도의 법적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이 문제를 풀려면 관련법 먼저 바꾸어야 하지만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시장의 영역에서 중계권료의 배분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주요 스포츠행사 중계를 둘러싼 분쟁은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이탈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이제는 정책당국과 미디어 업계 스마트 모바일 미디어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국민들의 시청권을 적정하게 보장하는 합리적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 지상파의 울타리에 갇힌 보편적 시청권에 더 효율적인 새 울타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좋아질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방치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태희 전 방통위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