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창출 우선 돼야 고용 늘어...반기업·반시장 정서가 문제

닥치고 일자리나 만들라니

   
▲ 남정욱 숭실대 교수
얼마 전 한국기업공헌평가원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갔다. 문창과 소속이 경계를 이탈하여 주제넘게 그런 자리에 참석한 것은 그 단체 이사장을 맡고 계신 같은 학교 경영대학 이종천 선생 때문이다.

허명에 약한 것을 어찌 아셨는지 불쑥 전화를 하여 양극화로 반기업 정서가 팽만한 이즈음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국민, 정부 그리고 기업이 서로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며 동참을 청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오나 아는 게 없습니다, 했더니 친절하게 알려줄 테니 걱정 말라신다. 요약해서 설명을 해주시는데 쏙쏙 들어왔고 기꺼이 수락했다.

친절은 거기까지였다. 막상 컨퍼런스에서 받아 본 통계와 수치로 가득한 자료는 하나도 친절하지 않았다. 안구가 적화될 때까지 읽었으나 역시 수치는 판독이 되지 않았고 문자영역만 뜻을 겨우 짐작할 수 있었으니 대략 다음과 같다.

기업의 공헌을 가치창출과 외화 획득, 일자리 창출 및 국가 경쟁력 제고 등 5개 부문으로 구분하여 평가한 뒤 기업이 이익 및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과거의 경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양극화 해소와 다양한 사회 현안 해결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게 뭐가 어렵냐고? 문장에서 숫자를 걷어내기 전까지는 거의 외계어였다는 사실을 변명에 대신한다. 과도하고 사뭇 감정적인 반시장경제 정서를 완화시키는 데 제대로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조사 결과 중 흥미롭지만 씁쓸한 대목 하나가 눈길을 끈다. 기업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가치 창출을 꼽은 반면 일반인들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반면 일반인들의 답변에서 가치 창출은 꼴찌였다. 딴짓하지 말고 닥치고 일자리나 만들라는 얘기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투다. 다 필요 없고 돈이나 많이 벌어 오라는, 대한민국 대부분 가정에서 가장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본질이 같다.

   
▲ ▲ 신간도서 『불평사회 작별기』 북콘서트에서의 남정욱 작가

이런 집안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창출할 것인가를 놓고 쫙 벌어진 시각차는 대한민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고단할지 알려준다. 소생의 생각은 이렇다. 기업은 존재 자체로 공헌이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려다 보니 고용이 발생되는 것이다. 일의 순서가 그렇다. 기업은 복지재단이 아닌데도 우리는 가끔 이 사실을 망각한다.

최근 부는 협동조합 열풍도 일자리 창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마음 맞는 다섯 사람만 모으라고 그러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선전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말보다 더 공허하고 철없다. 일찌감치 주식회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사라진 모델을 21세기에 또 끄집어 내다니.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수리해서 쓰면 될 것(기업)을 폐기하자는 소리다.

게다가 협동조합은 1인 1표 원칙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진취적인 결정 절대 안 나오고 안전만 추구할 것이니 창조경제와도 궁합이 아니다. 주식회사는 독창적이고 뛰어난 한 사람의 재능에 묻어간다. 우리는 그런 이유로 주식을 산다.

협동조합이 그렇게 되려면 다섯 명 단위의 조직마다 기발한 범재들이 하나씩은 있어야 하고 또 그렇다고 그의 의견이 항상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1인 1표 때문이다. 결국 그 리더는 주식회사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 이것이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에 패한 이유다.

과민해진 탓일까. ‘공동체주의자’로 유명한 강단 좌익 마이클 샌델을 그렇게 띄우더니 이어 우리 시대 고통의 근원으로 시장경제를 지목한 칼 폴라니의 이름도 요즘 부쩍 자주 들린다. 프로파간다(선전)를 하자니 이론적인 밑밥이 필요한 모양이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아니라 덜 나쁜 세상이다. 인간은 수만 년 그렇게 살아왔고 지구를 말아먹기 전까지 또 몇백년 그렇게 살 것이다.

시장은 나쁘고 공동체는 무조건 좋다는 위험한 발상 앞에 대한민국은 무장해제 직전이다. 선배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기 싫은 모양입니다.”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나가는 토크프로그램 명이 ‘힐링캠프’인 것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힐링의 시대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 쯤 겪는 불평불만은 주로 2030세대에 그 정점을 찍는데, 젊은이들의 이러한 삶을 어루만져 주는 힐링이 인문학․문화․출판계의 대세이다.

힐링의 시대, 힐링이 범람하는 시대는 역으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일명 불평사회 말이다. 그리고 과연 불평과 불만이란 무엇일까. 현 시대를 불평사회라 명하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평과 불만을 명랑하고 맹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취지로, 남정욱 작가가 신간도서 『불평사회 작별기』를 펴냈다.

남 작가는 책에서 “불평, 불만은 내가 생각하는 내 존재와 세상이 보는 내 존재 사이의 격차이며, 내가 바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세상과 실제로 돌아가는 냉정한 세상 사이의 간극이다”라고 밝히며, 이어 “사람들의 충족되지 않은 불만은 결국 자기 연민으로 돌아오고, 스스로 상처 입었다고 인지하여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상황으로 종료되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남 작가는 도서를 통해 “사람들이 이제는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갖고 있는 한심한 심정 및 불평과 작별했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을 밝힌다.

남정욱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혼자 힘으로 반 평균을 떨어뜨렸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갖고 있다. 글을 쓰게 된 사연은 백 퍼센트 우연이라고 한다. 방송작가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후 영화 프로듀서, 출판사 편집장, IT업체 대표를 경유하다 우연히 응모한 신춘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남정욱 작가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장학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1997년 「일간 스포츠」의 신춘대중문학상 감성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대표저서로는 소설 『천사는 가끔 지상에서 죽는다』, 『약속 거짓말 또 거짓말』 등이 꼽히며, 영화평론으로 『오늘은 어디 멀리 바람나고 싶다』 외 다수를 저술했다. 그 외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저술해 왔는데, 영화연구서로는 『한국 영화 황금기를 찍다』, 긍정사관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 현대사』, 정치평론집 『꾿빠이 전교조』, 『꾿빠이 386』 등이 있다. 한국영화 기획프로듀서협회 이사,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