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이틀째, 초반부터 여야간 기업인 증인 채택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8일 국회와 여야에 따르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는 정몽구 회장, 삼성전가 이재용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이른바 ‘빅3’ 등의 증인 채택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전날 환노위의 환경부 국정감사도 파행을 겪었다. 여당은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인의 증인 채택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야당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정훈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한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정무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신봉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을 비롯한 재벌그룹 총수들은 해외출장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 뉴시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7일 오후 6시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감 일정이 확정된 후 오늘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증인과 참고인 채택을 위한 여야 간사협의를 진행했지만, 일반 증인 1명, 참고인 1명 이외에는 어떠한 증인도 채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은 “오늘 협상을 벌여 현재까지 일반 증인 8명, 참고인 15명을 부르기로 여야가 합의했다”며 “야당은 일반 증인 1명, 참고인 4명만 채택됐다고 거짓 주장하며 국감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야당이 제시한 기업인 증인 명단은 27명으로 이 가운데 23명이 노사분규와 관련돼 있다”며 “노사분규는 노조측과 사측의 대립으로 사법부 또는 행정부가 판단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가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역설했다.

이후 환노위 여야 간사가 물밑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첫날 국정감사는 10시께 파행됐다.

새누리당 한 의원들은 “그동안 국회는 감사의 목적과 상관없이 감사 대상도 아닌 기업인 증인들을 무더기로 국정감사에 출석시켜 소위 ‘기업 총수 망신주기’ 국감을 해왔다”며 꺼집었다. 이어 “무분별한 기업인 증인 채택을 지양하고 감사 대상 기관들이 법을 지키고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는지 감시하는 감사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정감사 이틀째인 8일에도 기업인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간 신경전은 이어갔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전날 환노위 국정감사가 기업총수 출석 문제로 파행된 것과 관련해 “경제가 대단히 어렵다”면서 “기업인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원내대표는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던가 사회적 파장이 있다면 참고인이나 증인으로 채택해야겠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 국감이 돼야 한다”며 “정치권과 피감기관이 서로 지킬 건 지켜가면서 국감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여당이 증인 채택을 반대해 환노위가 파행 중”이라며 “숫자가 무슨 관계인가, 수백명이라도 필요하면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9.11 테러 당시 1200명의 증인이 채택됐고,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장관이 다 포함됐다”며 “같은 사안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부를 수 있고 호통주기나 망신주기는 안되지만 꼭 필요하다면 여야 합의로 불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감 파행을 놓고 재계 안팎에서는 ‘보여주기 식’ 국감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국감 현장에 1분 1초가 아까운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기업 길들이기’라는 우려다.

실제 매년 국감에서는 여야 의원이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 열중해 정작 증인에게 따지지 않거나, 기업 총수에게 호통과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모욕감을 주는 등 ‘보여주기식’ 국감 행태는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자 여당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국정감사 대장정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감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한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기업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불러서 슈퍼갑질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민생과 동떨어진 정치 싸움을 하는 국감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감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국민 세금을 제대로 썼는지 감시하는 게 목적이지 기업인을 불러 야단치는 게 목적이 아니다”며 “국감 때문에 기업인들이 경영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8일 국회 국정감사나 청문회 등에서 무분별한 증인,참고인을 소환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서면 답변으로도 국회 출석을 대체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의원은 “국회가 국정감사 때마다 민간 기업인들을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정작 답변 시간은 1,2분에 불과하거나 아예 답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무더기 증인채택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개정안은 국회가 특정인의 증인, 참고인 출석을 요구하려면 신문 요지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출석요구서에 첨부하도록 의무화하고 출석 요구서를 받은 증인, 참고인은 신문 요지에 대한 답변서를 출석전에 제출하도록 했다.

또 이 답변서를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 등에서 검토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출석 요구를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미디어펜=이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