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유승민 심판론' 등장..."서울 출마·대권 염두 둔 것"

"위력 상실해 백기투항 한 것...열혈 지지층도 돌아서"
[미디어펜=손혜정 기자]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은 지난 9일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에 '신설 합당'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자기희생'이라고 높이 평가한 반면, "대구 필패를 감지하고 서울 출마나 대권 행보를 위해 깔아놓는 포석"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나타났다.

유 위원장은 "보수재건을 위한 결심"이라며 "개혁보수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출마와 당대당 통합을 제안하며 공천권 및 지분 요구는 물론 어떠한 당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유 위원장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문재인 정권의 불법을 당당히 탄핵할 국민적 명분과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탄핵의 강을 건널 것'을 재차 강조하며 "개혁보수"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러한 유 위원장의 행보에 정치권에서는 중도보수 대통합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가 '자기희생'의 모습으로 솔선수범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자유통일당 등의 세력들이 각자도생보다는 당의 진로를 한국당과 통하는 쪽으로 수렴하도록 유인 작용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 유승민 새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사진=연합뉴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그의 신설 합당 제안을 수용하며 "소신 있는 입장"을 "적극 환영"했다.

유 위원장과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념에 반대 의사를 밝혀왔던 김진태 한국당 의원도 곧바로 "유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김 의원은 "오랜 시간 애국세력이 바라던 모습, 바로 이거다. 힘든 결정을 내려줘서 고맙다. 보수통합에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개혁보수, 개혁보수 그러는데 보수 우파는 원래 그런 거다. 따로 수식이 필요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 위원장이 '자기희생' 모습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통합신당을 통한 당권 장악과 서울 출마, 그리고 대권을 생각한 정치적 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그간 대구 동구을 출마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유 위원장의 행보를 두고 '탄핵의 강을 건너는', 즉 탄핵을 찬성 또는 주도했던 자신이 대구시민들에게 평가를 받겠다는 의도로 평가했다.

요컨대 "유 위원장이 대구시민들에게 평가를 받음으로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색깔'을 대구에서 완전히 지운 뒤 스스로 대구경북(TK) 대선 후보로 올라서겠다는 목표의 행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 위원장의 당적이 수차례 바뀌었던 데다 현재 대구에서는 '유승민을 잡겠다'는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출신 도태우 변호사, '배신의 정치를 끝내겠다'며 출마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유승민 심판론'이 등장한 상황이다.

또한 한 정치평론가는 "국민에겐 '진작 불출마했어야 할 사람이 불출마한 것뿐'이라는 부분이 더 강하게 인식되는 데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것은 자신의 배신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취약한 변론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모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유 위원장이 대구 필패를 감지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마치 자기가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득권을 포기한 척 하고 대구 불출마가 보수통합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춰 '신설 합당'의 지도부를 장악, 또는 통합신당의 신분으로 서울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 대구에서는 '유승민 심판론'이 등장한 상황이다./사진=도태우 변호사 페이스북
그 근거로 "유 위원장이 '마치 책임지고 불출마'하는 양상을 띄면 그와 같은 탄핵 찬성 또는 주도 세력으로서는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대구는 너무 위험하니 서울로 끌어들여 유 위원장을 내보내야 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은 현재 보수 진영 정당에게 '험지'로 간주되고 있어 유 위원장이 서울에서 당선되면 '화려한 부활'을 할 수 있고, 낙선하더라도 '헌신적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유 위원장의 불출마 기자회견 직후 "지금이라도 불출마 입장을 바꿔서 서울이나 험지에서 싸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당의 핵심관계자는 "황 대표와 유 대표가 시일 내에 회동할 것으로 안다"며 "황 대표가 이 자리에서 유 대표의 불출마 결단을 높이 평가하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서울·수도권 출마를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전한 바 있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대권 행보"라며 "2022년 대선 일정으로 이번 국회는 2년도 다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유 위원장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된 터에 보수통합을 거부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까지 총선에 나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을 희생시키는 듯한 이미지'를 주는 것이 대권을 노리기에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는 뜻이다. 특히 황교안 체제가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물으며 유 위원장이 야당의 대안적 지도자로 자처하거나 부각될 기회를 노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유 위원장이 정치적 위력을 상실했으며 백기투항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물론 대선 행보겠지만 과연 의미 있는 대선 행보일까 생각했을 땐 그럴 것 같지는 않다"며 "이번 결정으로 약간의 생명연장이 됐겠지만 생명연장했다고 꼭 살아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유승민은 이번에 힘을 크게 잃은 것이다. 대구도 서울도 힘드니 통합을 위해 희생한다는 명분을 보여주면서 위기를 넘긴 것 뿐"이라며 "유승민의 열혈 지지층에서마저도 '이제 유승민 얼굴 안 봤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다 그를 따르는 의원들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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