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법체계 유지하되 단속 안 해
[미디어펜=박규빈 기자]환경부가 중소기업에 대해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유예 없이 전격 적용하기로 했으나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화관법을 중소기업에도 전면 적용하기로 하고 지난 2015년 법을 개정하며 기존 사업장에 대해 5년 간의 유예기간을 뒀다.

당초 환경부는 "선진국들이 유해물질에만 적용하던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우리 역시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례로 '가습기 살균제 살인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며 화관법 도입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목적은 '그 누구도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에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을 포함한 산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당초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사업장 안전 기준은 79개였으나 화관법으로 전면 개정돼 413개로 대폭 늘어났다. 환경부는 이후 320여개 중소기업들과 협의를 거쳐 9월 300여개로 손질했다.

   
▲ 박천규 환경부 차관(오른쪽에서 둘째)이 지난해 7월 29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환경정책협의회'에서 모두발언하는 모습./사진=중소기업중앙회

이상오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시설개선 비용을 지불하느라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한 예로 화관법 제21조(취급시설의 배치·설치 및 관리 기준)는 방류벽이나 실내 탱크 간 거리 등을 환경부 장관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들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물리적 공간을 늘리고 싶어도 쉽게 행할 수 없는 실정이다.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커지자 환경부는 중소기업에 대해 화관법 관련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해 CCTV와 가스 누출 감지기를 설치할 경우 이격거리에 관한 대체 규정을 지난해 9월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업계가 강력히 반발해 법체계는 유지하되 단속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준수하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설계주의적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안전 시설이 미비해 정부가 직접 지원한다면 문제가 없다"며 "빌려주는 건 결국 (중소기업) 경영상 부채로 남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늘상 돈 퍼주는 정책을 펴면 사고가 안 날 것이라고 착각한다"며 "이것이 곧 사회주의식 계획경제이며,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산업 재해 대부분은 화학공장이 아닌 건설현장에서 발생한다"며 "정부는 산업 재해가 줄었다고 근거없는 자랑할 시간에 사고 원인 분석에 힘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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