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08.08 16:54 토
> 칼럼
좌회전하는 한국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보수주의의 가치'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정치를 지배하는 보수주의는 '영속적 정치철학'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승인 2020-03-12 10:24:29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스토리
온 나라가 다시 좌회전을 하고 있다. 긴 겨울 그 절절한 투쟁 끝에 마침내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보수 진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유한국당 최고지도자가 된  황교안 대표는 중도라는 어정쩡한 공간에 서 있던 박형준씨를 영입해 미래통합당이라는 이념도 가치도 불분명한 정당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황 대표가 '공들여' 영입했다는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그 겨울, 그 여름 사시사철 광화문을 지키며, 눈물겨운 투쟁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든 투사들을 소외시키는 공천을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이제 '경제민주화'의 주창자인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원죄적 인물'이 보수 정당의 지도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 와중에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와 유튜브 스타 공병호씨는 '중도의 사나이'이자 '다당제의 옹호자'로 '강남 좌파' 냄새를 물씬 풍기는 안철수씨와 합당해 중도를 아우르는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자 한다. 당의 대표 자리도 안철수에게 넘기겠다고 한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대한민국은 오늘 이 순간에도 세계 정치를 주도하는 위대한 정치철학인 '보수주의(Conservatism)'가 뿌리내리고 자랄 수 없는 토양인가? 한반도 남쪽 땅에서 보수주의는 그저 이용당하고 구겨진 채 '수구의 낙인'이 찍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회용 정치사상에 불과한 것인가? 무능이 증폭시킨 전염병으로, 인적마저 드문 광화문 광장을 내려다보며 '보수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달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당 '희망 대한민국 만들기 국민대회'에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 마이클 하워드 前 英國 보수당 당수가 정리한 보수주의의 가치

요동치는 현실 정치 속에서 변형 생성 진화하는 보수주의라는 복잡한 정치사상을 알기 쉽게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영국 보수당 당수였던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이다. 2003년 11월 보수당 당수에 선출된 그는 2004년 1월 벽두에 영국의 보수 신문, 우리로 치면 조선일보와 같은 '더 타임스(The Times)'에 "나는 믿는다(I believe)"라는 제목으로 16개항의 성명을 광고로 냈다.

하워드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중도 좌파 지도자 토니 블레어 총리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인기 없는 야당, 늙고 노쇠한 꼰대 정당인 보수당을 이끌고 있었다. 블레어 총리는 좌파 정당인 노동당의 당수였지만 '제3의 길'을 내세우며 보수당이 배출한 걸출한 지도자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자유 우파 정책을 계승, 영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우파 같은 좌파 지도자'의 등장으로 보수당이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보수당의 대표가 된 하워드는 고심 끝에 "원칙을 바로 세우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보수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리는 성명을 광고로 내고, 보수당원 10만명에게도 이메일을 보냈다. 지인 10명에게 전파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하워드는 재임 기간 중 정권을 탈환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정리한 16개 항목의 '보수주의자의 신조'는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보수당 재건의 신호탄이 됐다.

   
▲ 보수주의라는 복잡한 정치사상을 알기 쉽게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국 보수당 당수였던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 /사진=영국의회 홈페이지 캡쳐

◆ 일맥상통하는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 가치 

마이클 하워드는 영국의 주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성공회로 개종한 유태인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하다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대처 총리에 의해 발탁돼 고용부 장관, 환경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른바 '대처 키즈' 가운데 한 명이었다. 

보수당의 인기가 최악이었던 2003년 11월 당수로 선출된 하워드는 2004년 1월 '나는 믿는다(I believe)'는 제목의, 16개 항목으로 구성된 '보수주의자의 신조'를 발표했다. 하워드는 2005년 총선에서 33석을 더 얻었지만 보수당 198석, 노동당 355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얼마 후 정계를 은퇴한다. 하워드는 은퇴 직전에 훗날 총리가 되는 데이비드 캐머런을 발탁, 보수당 재집권의 기초를 다졌다. 

하워드는 '보수주의자의 신조'를 발표하면서 "우리의 정책은 일관된 원칙 위에 수립될 것이다. 나는 보수의 신념 때문에 정치에 투신했다. 나를 정치로 이끈 신념을 국민이 이해하기 바란다. 이 신념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답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수주의가 시류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정치사상이며 시대를 넘어서는 가치임을 천명한 것이다. 하워드의 말 대로 보수당은 2010년 정권을 탈환하고 지금까지 영국을 통치하고 있다. 작년 12월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은 하원 과반 기준인 326석을 훌쩍 넘겨 전체 의석의 56%인 365 석을 차지, 마거릿 대처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4.15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가치가 폄훼되는 이 시점에서 하워드가 제시한 '보수주의자의 신조'는 다시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흥미롭게도 하워드가 정리한 이 신념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쌓아 올린 록펠러 가문의 신념과도 연결돼 있다. 

록펠러의 외아들 존 D. 록펠러 주니어는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을 바탕으로 수많은 선행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유엔 본부, 반기문씨가 사무총장을 하며 누비고 다닌 그 건물이 바로 록펠러 주니어가 기증한 땅 위에 세워졌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셰넌도우 국립공원 등 세계인이 즐기게 된 다수의 미국 국립공원 역시 그가 기증한 땅에 만들어졌다. 

자선사업가 록펠러 주니어는 1941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선재단 설립을 독려할 목적으로 "나는 믿는다(I believe)"란 제목의 호소문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하워드 당수가 발표한 '보수주의자의 신조'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보수주의는 개인에 대한 존중, 자유와 행복추구권, 약자에 대한 배려, 자유와 부, 권력에 대한 책임과 의무, 기회의 균등, 작은 정부, 자율, 공정, 정의 등을 중시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제시된 보수주의 가치를 정리해 본다.

   
▲ 하워드가 정리한 '보수주의자의 신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쌓아 올린 록펠러(사진) 가문의 신념과도 연결돼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 마이클 하워드 영국 보수당 당수가 발표한 '보수주의자의 신념'

1.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it is natural for men and women to want health, wealth and happiness for their families and themselves).

2. 이런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국민에 봉사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it is the duty of every politician to serve the people by removing the obstacles in the way of these ambitions).

3.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일 때, 과도한 보호와 지나친 통치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people are most likely to be happy when they are masters of their own lives, when they are not nannied or over-governed).

4.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the people should be big. That the state should be small).

5. 관료주의, 불필요한 형식주의, 갖가지 규정과 조사관, 각종 위원회와 공공기관, 정부기관,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임명한 특명기관장, 단위와 목표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우리가 오히려 이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수많은 간섭자들이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red tape, bureaucracy, regulations, inspectorates, commissions, quangos, "tsars", "units" and "targets" came to help and protect us, but now we need protection from them. Armies of interferers don't contribute to human happiness).

6. 국민은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people must have every opportunity to fulfil their potential).

7.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으며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ere is no freedom without responsibility. It is our duty to look after those who cannot help themselves).

8. 불공정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의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I believe in equality of opportunity. Injustice makes us angry).

9.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every parent wants their child to have a better education than they had).

10.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가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하기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every child wants security for their parents in their old age).

11. 어떤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I do not believe that one person's poverty is caused by another's wealth).

12. 어떤 사람이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I do not believe that one person's ignorance is caused by another's knowledge and education).

13. 어떤 사람이 건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병이 더 악화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I do not believe that one person's sickness is made worse by another's health).

14.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e British people are only happy when they are free).

15. 영국은 모든 도전자들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강할지라도 언제든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Britain should defend her freedom at any time, against all comers, however mighty).

16.  행운과 타고난 재능 노력, 그리고 부의 다양성을 통해서만이 이 섬나라가 고귀한 과거와 역동적인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충복이 되는 게 행복하다(I believe that by good fortune, hard work, natural talent and rich diversity, these islands are home to a great people with a noble past and exciting future. I am happy to be their servant).

◆ 록펠러 D. 주니어의 라디오 호소문 '나는 믿는다(I believe)' 

1. 한 사람의 인간 다시 말해 개인은 최고의 가치를 가지며 그는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갖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in the supreme worth of the individual and in his right to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2.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기회엔 의무가, 소유엔 책무가 따른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every right implies a responsibility; every opportunity, an obligation; every possession, a duty).

3. 법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이 법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정부는 국민의 종복이지 주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the law was made for man and not man for the law; that government is the servant of the people and not their master). 

4. 정신 노동이든 육체 노동이든 노동의 존엄성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세상이 모든 사람의 생계를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생계를 꾸릴 기회는 제공해야 된다고 믿는다(I believe in the dignity of labor, whether with head or hand; that the world owes no man a living but that it owes every man an opportunity to make a living). 

5. 정부 기업, 개인 모두에게 근검절약은 잘 정돈된 삶에 필수적이며 알뜰함은 건전한 재정구조를 달성하는데 필수 요건이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thrift is essential to well-ordered living and that economy is a prime requisite of a sound financial structure, whether in government, business or personal affairs). 

6. 사회질서가 지속되기 위해서 진실과 정의가 기본이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truth and justice are fundamental to an enduring social order).

7. 약속의 신성함을 나는 믿는다. 말은 보증수표나 다름없어야 하고 부나 권력 또는 직책이 아니라 인간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I believe in the sacredness of a promise, that a man's word should be as good as his bond; that character — not wealth or power or position — is of supreme worth).

8.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의무이고 정화를 해주는 희생의 불만이 이기심의 찌꺼기를 다 태울 수 있고 인간 영혼의 숭고함을 자유롭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the rendering of useful service is the common duty of mankind and that only in the purifying fire of sacrifice is the dross of selfishness consumed and the greatness of the human soul set free).

9. 지혜와 사랑 그 자체인 신(어떤 이름으로 불리든)을 믿으며, 신의 의지와 조화를 이룰 때에만 한 개인의 인생에서 최대한의 충족함, 행복함과 유용함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in all-wise-and all-loving God, named by whatever name, and that the individual’s highest fulfillment, greatest happiness, and widest usefulness are to be found in living in harmony with His will).

10.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만이 증오를 이길 수 있고 옳음만이 권력을 이길 수 있고 이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I believe that love is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that it alone can overcome hate; that right can and will triumph over might). /송림 자유기고가
[송림] ▶다른기사보기
회사소개 | 광고·제휴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인터넷신문 ( 윤리강령 | 심의규정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0 세종로대우빌딩 복합동 508호  |  회사직통번호 : 02)6241-7700  |  팩스 : 02)6241-7708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 00574 | 등록일.발행일 2008.5.8   |  발행인 : 이의춘 | 편집인·편집국장 : 민병오 |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사성
Copyright © 2013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