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치사회적 접근은 우리가 음악을 이해하는 데 매우 날렵한 효율 혹은 융통성을 제공한다. 여기서 문제는 시대성이 흔히 정치적 틀에만 갇혀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의 이상주의 1970년대의 기업화, 1980년대의 탐욕주의와 같은 표현은 결국 정치적 관념의 언어들이다.”

과거를 추억할 때 마치 배경음악처럼, 당시에 즐겨 듣거나 유행했던 노래가 함께 떠오르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노래에는 그처럼 개인적인 기억과 시대 상황, 분위기가 섞여 들어간다.

   
▲ <팝, 경제를 노래하다> 임진모 지음 / 아트북스 펴냄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팝, 경제를 노래하다>에서 1930년대 경제공황기부터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까지 경제사를 대중음악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음악평론가를 꿈꾸던 고등학생 시절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듣고 충격에 빠졌던 경험으로 책을 시작한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낭만적인 톤이 지배적이라서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은 것은 물론 캘리포니아와 미국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자극하며 무수한 타국인들을 미국 땅으로 불러들인 곡이지만 곡에 저류하는 메시지는 그것과 전혀 다른, 한마디로 문제작이다. 노랫말 내용을 두고 엄청난 논란이 야기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 노래가 담고 있는 것은, 캘리포니아와 그 상징인 미국의 실상은 그런 낭만적 환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일종의 뼈아픈 고백과 준엄한 경고라는 사실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에 대한 고도의 비유라고 할까. (130쪽)’

멜로디 전개와 연주에만 매혹돼 있던 그는 한 해외 시사주간지에서 이 곡을 두고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이라는 주제의식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대표되는 미국의 뒤안길을 쓰라리게 해부한 노래”라는 평을 읽고는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음악 비평에는 ‘정치와 경제를 포괄한 사회성’이라는 또 하나의 장치가 있음을 깨닫게 됐고 시대적 배경과 맥락이 음악의 메시지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고 말한다.

시대의 경제 상황을 여실히 반영한 노래의 대표 격이라고 하면 1960년대 활짝 피어난 미국 경제와 함께 크게 유행한 서핑 뮤직이나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장기 불황에 빠진 영국에서 태어난 펑크(Punk) 록을 떠올릴 수 있다.

살림이 좋으니 걱정거리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신나는 음악이 유행하고, 살기가 팍팍하니 거침없는 분노를 쏟아내는 음악이 유행하는 것은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시대 상황과 노래가 연결되는 사례다.

하지만 대중음악이 늘 이런 식으로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경제 형편이 호황기의 1960년대와 달리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던 1970년대에, 펑크와 디스코 음악이 크게 유행했던 것은 앞서의 공식으로 보아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경우는 경제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호주머니가 텅 비어 심리적으로 쪼그라든 시절에 춤으로 시름을 잊고자 한 것이다.

‘댄스 음악이 유행하는 가운데 홀연히 등장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그것은 춤추는 나라가 아니라 고통에 찌든 나라라는 절망의 토로였다. (…) 그들에게 미국은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국가에 충성해 베트남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돌아와보니 아무도 반겨주지 않고 일자리 하나도 구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나라로 변해 있었다. 당시 미국인이라면 모두들 따라 불렀다는 후렴구 “미국에서 태어났어”는 아메리칸 드림의 긍지 선언이 아니라 베트남 참전 장병의 사례를 통해 전하는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의 참담한 조소이자 절규였다.(159~160쪽)’

지은이는 대공황기의 희망노래 격이었던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Over the Rainbow)’로 시작해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로 경제가 붕괴된 상황이 반영된 그린 데이의 ‘네 적을 알라(Know Your Enemy)’로 연결 지으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 사이에 주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 상황을 일별하며 영미 대중음악사의 흐름 또한 짚어간다.

대중음악은 경제에 민감한 대중의 정서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노래들은 경제적 현실에 따라 울고 웃었던 사람들의 심리를 말해주는 동시에 힘겨운 삶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