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좌파, 뒤틀린 민족주의 파시즘적 폭력에 빠져

   
▲ 조우석 문화평론가
국내 좌파가 퇴행적 민족주의의 늪에 빠져 사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내셔널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특징과 무관한 종북좌파는 1980년대 이후 자폐적인 '우리민족끼리' 정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저들이 최근 백범 김구를 끌어안으며 민족주의 코스프레(흉내)를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일부는 폭력 찬양에 빠져들고 있어 관심거리다.
 

좌파의 비극적 파산을 예감케 하는 스토리인데, 이야기는 18년 전 안두희 타살(打殺)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10월 23일)은 백범의 암살범인 안두희가 몽둥이 찜질에 의해 경기도 인천의 자기 아파트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 날이다. 당시의 보도대로 살인범은 버스 운전기사 박기서(46)씨였는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딱 거기까지다.
 

그 직후 좌파 인사들이 벌여온 '박기서 영웅 만들기'의 뒷얘기를 잘 모를 것이다. 당시 박기서가 범행에 사용했던 몽둥이에는 매직팬으로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가 용렬한 소영웅주의자에 불과하다는 증거인데, 그는 사건 직후 "국부(國父) 김구를 시해한 죄인이 천수를 다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황당한 지론을 펼쳤다.

매직팬으로 방망이에 '正義棒'이라고 쓴 소영웅주의자 박기서

그럼에도 3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17개월만에 좌파 대통령(김대중) 특사로 풀려났다. 희한한 건 지금의 상황이다. 테러 18주년을 하루 앞둔 22일 경향신문은 그를 인터뷰하면서 당시의 테러를 '거사(擧事)'이자 '응징'이었다고 치켜세웠다. 좌파들이 박기서를 "역사 징벌을 단행한 의인" 식으로 띄운 지는 오래됐지만, 경향신문은 살인행위 미화까지를 했다.
 

"너는 죽어야 한다"고 소리와 함께 안두희를 내리치던 장면에 대한 이 신문의 자세한 묘사는 실로 섬뜩했다. “안두희는 반민족, 반통일을 지칭한다”는 박기서의 발언 강조도 얼치기 좌파의 인식을 반복한 것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기만하고도 응징되지 않은 세력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습니까?”라며 울분을 토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가관이었다.
 

"한국현대사는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는 노무현 식 역사인식은 이토록 끈질긴데, 바탕에는 뒤틀린 민족주의 정서가 똬리 틀고 있다. 소련 동구 공산주의 몰락에도 사반세기 넘게 명줄을 이어온 좌파(북한 김일성주의 세력 +남한 주사파)가 구한말의 쇄국주의와 비슷한 '괴물 민족주의' 탈바가지를 뒤집어 쓴 채 대한민국 정통성 위에 올라탄 셈이다. 

   
▲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로부터 저격을 받아 서거할 당시 입고 있던 저고리와 바지. 옷 전체에 혈흔이 남아 있고 저고리에는 탄흔이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저들은 백범을 대한민국 국부(國父)로 둔갑을 시키는 터무니없는 무리수를 뒀다. 그걸 방패 삼아 건국과 부국의 지도자 이승만-박정희를 비난하면서 좌충우돌 현대사 인식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다.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는 그걸 위한 소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도 박기서를 의인이라며 찬양했다

올해는 경향신문이 박기서를 다뤘지만, 지난 몇 년 한겨레-오마이뉴스 등이 그를 번갈아 인터뷰를 했다. "인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의 심정으로 (안두희를) 처단했습니다."라는 식의 거친 발언이 튀어나오는 건 이미 관례가 됐다. 3년 전 상해임정 요인의 후손 몇 명과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이 "박기서 선생님의 의거 15주년을 기념하는"(문안 그대로 인용했음) 기념패를 그에게 전달한 바도 있다.
 

하지만 '의인(義人) 박기서' 만들기에 앞장 섰던 사람은 따로 있다. 그가 386세대를 중심으로 '사상의 은사(恩師)'로 통했던 리영희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등을 운동권의 옛 필독서를 써냈던 그는 형을 살고 있던 '몽둥이 살인범' 박기서의 활용가치를 알아챈 뒤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박기서가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엽서를 보내며 '의기 남아(義氣 男兒)'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의혈남아로 둔갑된 분기점이 그때였는데, 리영희를 몰랐던 박기서는 감방 동료인 한총련 출신 운동권 학생에게 그가 좌파 사상의 대부(代父)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출감 뒤에는 연희동 리영희의 자택을 찾아가 교유를 했고, 훗날 그의 빈소를 찾는 등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상황을 정리하자. 좌파에게 반(反)대한민국 노선은 기본이다. 국내 좌파세력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민족주의 과잉상태에 노출되면서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보편성과 원칙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저급한 '역사 퇴행'에 돌입한 저들이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백범을 상징적 인물로 입양한 채 무조건적 통일과 섣부른 남북화해 논리로 21세기 초입 지금도 분탕을 치고 있다.

3.1운동 이후 좌파운동 어언 1세기…저들은 새로운 시작을 하길

섬뜩한 건 살인범 박기서를 끼어넣으면서 저들이 요즘 들어 부쩍 폭력 찬양에 나서는 점이다. 북한 급변 사태로 종북좌파들이 더 코너에 몰릴 경우 저들은 적색테러의 정당성을 찬양하고 나설 지도 모른다. 형태는 사이비 민족주의와 폭력이 뒤섞인 한국형 파시즘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파시즘은 본래가 좌파적 기획이다. 나치즘과 볼세비즘 모두가 그렇다.)
 

그게 필자의 오판이길 바란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반도에 유입된 좌파 운동이 어언 한 세기를 맞는데, 저들이 진정 머리가 나쁘지 않다면 명분과 모양새를 갖춘 출구전략을 짜길 바란다. 좌파운동 100년의 공과 과를 따진 다음 대한민국 풍토에 걸맞는 진정한 진보운동을 시작하길 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좌파운동의 비극적 파산은 불보듯 뻔하다.
 

작은 코미디 하나. 박기서와 좌파 사이의 연계는 최근 '이익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다. 박기서 주변에 좌파들이 꼬이며 저들은 '정의봉 나누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안두희를 죽였던 방망이의 엉성한 모조품을 만들어 후원금 명목의 돈을 받고 국민들에게 판매한 게 벌써 몇 년이 됐다.
 

물론 이걸로 큰돈을 모은 건 아니겠지만, 이중 일부의 돈은 박기서의 뜻에 따라 범민련에 기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연방제 통일·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내세워온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은 1997년 대법원이 판시한대로 엄연히 이적(利敵)단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