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간호사들 두려움에 떨며 쓰레기 봉투 쓴 채 코로나19와 싸워
확진자 11만5000명 사망 1만5000명 넘어…'문재인 케어' 신중해야
영국은 현대 의학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다. 세계인이 혜택을 입은 수많은 의학적 혁신이 영국에서 이뤄졌다. 페니실린이 나온 곳도 영국이고 수혈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영국에서 확인됐다. 영국이 개발한 약품과 의학기술은 수많은 나라로 전파됐다. 

우리가 오늘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는 병원 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영국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위대했던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지금 철저히 붕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 4월19일 현재 우한 코로나 확진자는 11만5000명에 달한다. 사망자는 하루 888명. 전체 우한 코로나 사망자는 약 1만6000명. 확진자 1만700명에 사망자 234명인 우리나라에 비하면 너무나 충격적인 실상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 런던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대피했다. 찰스 2세 왕세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 지도층도 줄줄이 확진자가 됐다. 존슨 총리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쓰레기봉투를 쓰고 일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그런 나라가 영국이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주된 원인으로는 능력을 벗어난 무상 의료시스템이 꼽힌다. 영국은 공산주의국가에서도 실패했던 전국민 무제한 무상 의료시스템을 구축했다. '내셔널 헬스 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 이른바 국민보건서비스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의사, 간호사, 병원 직원 등 모든 의료인이 국가 공무원이다. 그리고 이들이 6500만 영국 국민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은 우수한 의학 지식을 가졌지만, 6500만명이라는 많은 국민을 무료로 보살피기에는 역부족이다.  재원 부족으로 의료 장비, 인력,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급여가 낮기 때문에 우수한 의사들은 돈을 많이 받는 나라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보스니아, 폴란드 등 영국 연방 국가나 인접국가에서 온 의사들이 채운다. 

   
▲ 세계 최고인 우리 의료보험제도를 영국 등과 같은 무상체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모든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해서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문재인 케어'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입을 막기 위해 모든 입국자에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기 시작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모습. /연합뉴스

영국의 의료 현장에서 일어난 일 하나

런던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가 금요일 오후 방과 후에 축구를 하다 손가락 두개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부모는 부랴부랴 아이를 싣고 인근 대형병원, 한국의 대학병원 수준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금요일 오후여서 병원은 휴일 근무 체제였다. 응급실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당직 의사들 중에는 골절사고를 치료할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었다. 

공무원인 의사들은 철저히 법정근로시간을 지킨다. 당직도 정해진 시간에만 하지 무리해서 더 일하지 않는다. 당직 의사도 부족하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장장 4시간을 울며불며 정형외과 전문의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부모는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손바닥에 총알이 관통한 다른 아이는 손에 붕대를 감고, 5시간째 줄을 서서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는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타났는데 어색한 영어를 사용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의사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의사는 영국 사람이 아니라 보스니아 사람이었다. 

주말 와인을 마시며 대기하다 병원의 호출을 받고 나타난 당직 전문 외국인 의사였다. 그 의사는 서툰 영어로 "당신은 운이 좋다. 나는 전쟁이 한 창 중인 보스니아에서 왔다. (You are lucky. I am from battle ground, Bosnia)" 전쟁터에서 엄청난 골절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왔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해도, 술냄새를 푹푹 풍겨도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의사는 아이의 뼈를 접합하는 수술을 했으나 1차에 실패해 결국 재수술을 했다.

영국 의료 현장에서 일어난 일 둘

2003년 11월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부부 얘기다. 리콴유는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함께 런던 시내 최고급 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런데 늦은 밤에 콰걱추 여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리콴유는 인근에 있는 영국 최고의 병원인 왕립 런던병원에 급하게 연락했다. 병원은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앰뷸런스는 45분이 지난 뒤에 도착했다. 

예산부족, 인력부족 등으로 영국 최고 병원의 기동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상태 파악을 위해 CT 촬영에 1분1초가 급한데 병원측은 다음날 오전 8시가 되어야 촬영이 시작되고 그것도 먼저 촬영을 신청한 3명의 촬영이 끝나야 가능하다고 했다. 

당황한 리콴유는 싱가포르 대사관에 연락했고, 대사관이 영국 총리실에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4시간 30분이 지난, 새벽 3시30분께 CT촬영을 할 수 있었다. 영국의 느려 터진 의료시스템에 충격을 받은 리콴유는 ‘위험하다’는 영국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들여 빌린 비행기로 부인을 싱가포르로 데리고 갔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에 있었다면 30분 안에 CT촬영을 하고 1시간 30분 정도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영국 무상 의료제도의 폐단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환자들도 일부 돈을 내야 한다. 돈을 내지 않으면 급할 때 줄을 서야하는 불편이 기다린다"고 지적했다. 

리콴유와 부인 콰걱추는 옥스포드 대학 유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가난한 아시아 국가의 유학생이었던 그들에게 영국은 경탄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영국이 망가진 것이었다. 리콴유는 "40년전 그렇게 좋았던 왕립 런던병원이 이제 환자를 무시하는 병원으로 전락했다"고 영국의 의료시스템 붕괴를 개탄했다.
 
   
▲ 영국은 현대 의학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위대했던 영국의 의료시스템이 철저히 붕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월19일 현재 우한 코로나 확진자는 11만5000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하루 888명에 이른다. 영국 의료시스템이 붕괴된 원인으로는 능력을 벗어난 무상 의료시스템이 꼽힌다. /사진=픽사베이

공공 부문에도 선택과 경쟁 허용해야 효용이 극대화된다

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과 이탈리아 등 무상의료국가의 경우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은 9.2%로, 환자도 일부 돈을 내는 의료보험국가 사망률(3.1%)의 3배에 달했다. 특히 영국은 사망률이 12%를 훌쩍 넘어 중증 환자 관리 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의료진에 대한 인센티브가 약한데다 CT 장비 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 등도 크게 부족했다. 

환자도 돈을 내는 의료보험 시스템에서는 의료비가 모자라면 더 내도록 할 수 있지만 국민의 세금을 쪼개 의료비를 부담하는 무상 의료시스템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필요 충분한 의료설비, 병상을 마련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중증 환자가 영국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리콴유 부인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긴 줄을 서서 오래 대기해야 하고 많은 단계를 거쳐야 전문의를 볼 수 있다. 기다리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는 하루 이틀이면 될 일이 영국에서는 몇 달이 걸린다. 오죽하면 영국 의사가 한국에 와서 디스크 수술을 받고 가겠는가. 하지만 '공짜 시스템'은 불편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불편을 제공하기 때문에 국민은 참고 견딘다. '공정한 줄서기'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음에 만족하면서.

엉망이 되어 버린 영국의 무상 의료시스템은 '선의'가 아니라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한다는 아담 스미스의 지혜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준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사회주의적 시스템과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섞인 것이다. 공적 보험이 있지만 더 돈을 내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겠다는 환자는 비급여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의사들도 최신 의료 서비스, 새로운 약제 등을 경쟁적으로 제공해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의사들의 선의에 더해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이 벌고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의사들의 이기심도 허용된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맛있는 빵을 더 싸게 더 많이 만드는 빵집 주인의 이기심 때문에 소비자가 더 싼 가격에 더 질 높은 빵을 즐길 수 있다는 아담 스미스의 통찰이 부분적으로나마 현실화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최고인 우리 의료보험제도를 영국 등과 같은 무상체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모든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해서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문재인 케어'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한 코로나에 대한 영국의 대응 실패는 인구 5000만이 넘는 큰 나라에서 보편적 무료 의료서비스를 도입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한다.

복지 포퓰리즘, 공짜 퍼주기가 난무하지만 공짜는 대가가 있다. 긴 줄을 서게 하고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에 '공짜의 저주'가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송림 자유기고가
[송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