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정치과정 빌미 처벌불능의 폭력 자행...사회로 학습돼

불법의 원산지 국회

뇌(腦) 세포는 신체 각 부분의 기관 감각을 인지하며 예컨대, 손을 다쳤을 때의 통증도 뇌의 이런 감각 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뇌 자체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므로 뇌 수술은 마취 없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뇌 세포의 특성은 바로 정치인에 의해 쉬 무시되는 헌법에 비유될 수 있다.

헌법에 근거하여 국회의원은 형법을 만들고 이 형법에 따라 타인의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한 사람은 처벌받는다. 그리고 이 헌법의 하위법인 형법이 과잉처벌을 담고 있을 경우에 그것은 과잉금지를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 되어 그 효력이 부인된다. 그런데 정작 최고법인 헌법 자체를 위반한 경우에는? 따로 처벌 규정이 없는 한 이는 속수무책이다.

   
▲ 폭력과 무질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가를 만들고 법이 있지만 정작 그 입법과정 자체는 폭력과 무질서로 개입되어 사회로 학습되어 진다고 주장하는 김행범 교수.

국회의 정치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법과 위헌을 목도해 왔다.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이 본회의 표결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야당의 합법적 저지 수단은 없다.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상임위에서, 법사위에서 온갖 수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다수당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통과되어 이제 본회의 의결만을 앞둔 상태에서도 야당에게 '방법’이 있었다.

이른 아침 수 십 명의 야당 의원들이 '아침 인사하러 왔다’는 명분으로 의장의 공관을 기습 방문한다. 그리고는 의장을 방 안에 세워두고 빙 둘러서서, 콩나물시루처럼 방을 꽉 채워버리는 것이다. 아예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몸을 빼내려는 의장에게 시종 징그러운 웃음과 농을 건네며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경호요원들이 나중에 달려와 봐야 의원들은 의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면서 방 안에 몸을 들이밀 여지도 안 준다.

경호원들이 무리하게 의원들을 밀치고 의장을 보호하고자 방 안으로 진입하면 몸싸움이 불가피하고 만약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약간 다친다면 그거야 말로 '헌법기관인 야당 의원을 탄압한 폭력 정권’이라는 기막힌 명분을 주기 때문에 경위들도 전전긍긍 한다. 의장을 출근 저지하면서 법안을 다시 협의 하자, 그것이 민주주의가 작동되게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 방식은 우리 실제 헌정사에서 나타난 폭력이다.

정치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법부가 이런 폭력 행위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것이다. 아니다. 웬만한 과도한 행위가 아니면 사법부는 '권력 분립’ 및 입법에 수반된 '정치 행위’로 규정하고는 발을 빼기 마련이다. 이에 개입하면 정치권은 권력의 시녀라는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이런 일에 대한 의원의 징계는 이에 따른 징계위원회 구성 등 복잡하고도 긴 정치 과정이 다시 필요하고 이것 역시 또 다른 정치 행위로 이루어진다. 한참 시간이 지난 나중에야 따질 일이 되거나 결국 흐지부지 여야 타협으로 무마하면 그만이다. 홉스(Hobbes)식으로 해석한다면 폭력과 무질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가를 만들고 법이 있지만 정작 그 입법과정 자체는 이토록 폭력과 무질서로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예산안 자동부의? 정치는 그것도 피해 간다

국회의원이 헌법을 무시하는 가장 대표적 예가 바로 예산심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선진화법’이라는 속칭으로 더 잘 알려진 현행 국회법은 우리의 정치 과정에서 나타났던 많은 비효율과 폭력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정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정기회에 당면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은 “예산안 본회의 자동 부의”(국회법 85조의3 제1항) 제도이다.

이 제도는 바로 2014년 이번 정기회에서 처음 실시되므로 그 귀추가 매우 주목된다. 본래, 예산의 헌법상 의결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 밤 12시)이지만 과거 20년간 국회가 이 헌법 시한을 맞춘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국회에 의한 상습적 위헌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로 도입된 것이다.

예산 심의는 다른 법안의 심의, 정치적 사안들과 연계되어 그 자체가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있기 때문에 늘 야당의 유력한 무기가 되어 왔다. 11월 30일까지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다음 날(12월 1일)에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간주하고 12월 1일에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여 헌법상 예산의결 시한인 12월 2일 전에 본회의 통과를 하겠다는 것이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이다.

   
▲ 사적 영역에서 개인이 법을 위반하면 철저히 처벌된다. 이에 비해 정치가 보여주는 위헌, 탈법 및 폭력은 아무런 제어도 없이 민주적 정치과정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처벌 불능의 폭력이다.

예산의 의결이 미루어지는 것은 여야 공동의 책임이지만 일단 국정을 주관하는 다수파에 더 큰 정치적 부담이 된다. 따라서 소수파는 최대한 예산심의를 거부하며, 이를 묵과하지 못한 다수파가 날치기 통과를 하여 정치적 상처를 입기를 기대하는 전략을 자주 구사해 왔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이 제도를 만들 때에 자신의 최대의 정치 놀음의 한 수단이 예산심의가 이렇게 자동으로 부의되어 버리는 것을 막는 교묘한 장치를 제도 뒤 편에 심어두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만약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에는 12월 1일에 본회의 자동 부의된 것으로 보지 않게 한 것이다.

소수파(현재 '새민련’) 대표의원이 국회의장 및 다수파(현재 '새누리’) 대표의원에게 일정 기한(ex: 12월 25일)까지 예산타결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일단 12월 1일의 예산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막을 수 있다. 이왕 여러 해 동안 예산안은 연말에 가서야 타결된 관례가 있으니'보다 깊이 있는’심의를 위해 그 정도까지는 서로 인내하면서 여야 합의의 모습을 만들어보자는 명분은 그럴싸하며 이를 믿고 의장과 새누리 대표의원이 합의하면 자동부의는 막을 수 있다. 이렇게 의장과 여야대표의원이 합의하면 예산안 자동 부의는 되지 않는다.

사실 이미 '세월호’ 문제로 세월은 너무 보내버렸고 그나마 국정감사의 재미마저 누리느라 이제야 막 예산심의에 들어간 상황이다. 본래 헌법이 예상하고 있는 국회의 예산 심의 기간은 60일 정도인데 지금부터 11월 말까지 헌법 시한 안에 35일 만에 예산심의를 다 끝낸다면 그것은 부실 심의임이 뻔하며, 11월말 까지 심의가 이루어지 못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위헌 문제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차라리 과거 수 십 년 이미 전과 경력이 있는 위헌의 주범 노릇 한번 함을 개의치 않으면서 국민의 부담이 되는 예산 심의를 제대로 하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것은 과거에 수없이 해 온 수법이다. 예산안 자동부의에 연연 말고 예산심의를 제대로 여야합의로 제대로 하자는 것은 일응 민주정치에 부합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명분으로 일단 예산안 자동 부의를 막은 후에 12월 2일의 약속 시한을 어기면? 그뿐이다. 일단 12월 2일을 도과하면 더 이상 본회의 자동부의는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게 현행 국회법의 맹점이다. 제도만으로는 국회의원의 정치 실패는 막지 못한다. 그 경우 당초 이 제도가 예상한 장점은커녕 반대파의 새로운 정략으로 활용될 것이다.

좋은 제도가 정치의 본능인 비효율을 막지 못한다. 그들이 합의하여 만든 선진화 법 자체도 이렇게 오용될 수 있다. 의원들의 이권 개입을 위해 상임위에서는 오히려 예산을 증액시키고 예결위에서는 결국 계수조정이란 명분으로 숫자 맞추기, 여야나눠먹기로 끝나던 예년의 비효율적 예산 심의는 세인들이 상당히 기대하는 자동부의란 제도로 막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다.

입법자가 곧 위법자

사적 영역에서 개인이 법을 위반하면 철저히 처벌된다. 이에 비해 정치가 보여주는 위헌, 탈법 및 폭력은 아무런 제어도 없이 민주적 정치과정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처벌 불능의 폭력이다.

우리 사회 모든 위법과 폭력의 최종 유전자는 바로 국회에 숨어 있으며 모든 사회 부문의 위법과 폭력도 부지 중 거기로부터 학습된다. 그것은 한 국가의 문명화의 지표는 이제 더 이상 문맹과 빈곤이 아니라 정치의 수준, 특히 국회의원에 의해 헌법과 법률이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가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헌법은 '법의 법’이고, 모든 정치권력을 통제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지키는 보루이다.

헌법에 어긋난 법은 위헌으로 그 효력이 없게 만드는 최고의 권능이 있지만 그 자체의 방어에는 이토록 취약한 것이다.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의 문제는 이 때문에 나타난다. 그러나 헌법이든 법률이든 그것들을 위반하는 주범은 평범한 개인이 아니다.

정치 행위, 민주적 입법과정이란 외관 속에서 불법을 자행하며 심지어 헌법까지 쉽게 위반하는 헌법 기관인 국회야 말로 바로 그 주범인 것이다. 그러고도 거의 제재를 받지 않는 '갑(甲)의 갑’이며, 정말 갑갑(甲甲)한 우리 사회 후진의 주역인 것이다.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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