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교수 "민사 사건인 배임죄 형사사건화 범죄자 취급"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영리적 이익을 얻은 경우 이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손해배상액이나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국회는 일반 경영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단가 인하'나 '발주 취소' 그리고 '반품' 등 일반 거래에까지 이 법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된 이후 예견된 수순이지만, 기업을 공격하면 인기가 올라가리라는 기대를 가진 정치인들은 실적 쌓기 식으로 앞다퉈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업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이에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은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현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를 공동개최했다. 아래 글은 패널로 참석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원고가 입은 현실적인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의미하나, 피고의 행위가 폭력적(violent), 위압적(oppressive)이거나 악의(malice), 기망(fraud), 의도적 무시(wanton)와 같이 가해자 측에 특별히 그 정상이 가중될 만한 사유를 수반하는 때에는 원고가 현실적으로 입은 손해를 초월하는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명하는 경우가 있는 바, 이를 흔히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라고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흔적은 기원전 1750년 함무라비법전(The Code of Hammurabi)의 배수적(倍數的) 손해배상제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Restatement (Second) of Torts, 제908조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전보적 배상에 부가하여 피고의 난폭한 불법행위의 실행을 벌하고 피고 외 제3자가 장래에 동일한 불법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하여 부과된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는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징벌적 손해배상은 타인의 권리에 대한 피고의 악의(evil motive) 또는 도리에 지나친 무관심(reckless indifference)을 이유로 한 불법행위 등에 인정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산정함에 있어 사실판단자(trier of fact)는 被告행위의 성격, 피고가 초래하였거나 또는 초래할 것을 의도한 원고에 대한 손해의 성격과 범위 및 피고의 재산을 적정하게 고려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 당사자에게 어떤 특별한 법적인 근거(special merit)가 있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기보다는 가해당사자에 대한 징벌(punishment) 또는 가해자를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경고(warning), 본보기(example), 재발방지책(deterrence)이라거나 피고의 행위에 대한 배심원들의 분노의 표현(expression of the indignation)이라고도 한다.

즉, 징벌적 손해배상을 전보적인 손해배상이 아니라 무법한 행위자를 처벌하고 장래의 유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정되는 것이며,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타인의 권리에 악의 또는 무시적 무관심을 이유로 하며, 행위의 성격, 발생된 손해, 의도된 손해의 성격과 범위, 손해를 발생시킨 자의 재산이 그 고려 대상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관련한 뚜렷한 명문의 규정은 없고 판례나 배심원들의 판단에 의해 충분히 제재를 가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정도로 한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전경.

Ⅱ. 도입 후의 문제점

1. 형벌권에 대한 국가의 독점

징벌권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즉, 징벌은 국가가 국민에게 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개인이 개인을 징벌하는 것은 허용한 예가 많았으나 성경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사적인 보복을 하용하고 있으나 예수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근대의 법률은 형벌권은 국가의 독점적인 권력으로 규정하고 자력구제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사회적인 안정을 위한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손해배상이 목적이 아니라 징벌이 목적이다. 징벌은 형사법적 절차를 통하여 달성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우회하여 私人간의 민사소송절차를 통하여 징벌하게 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

2. 입증책임의 전환문제

본래 형사소송에서는 국가기관인 검사가 피의자의 협의를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민사소송절차에서는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부과된다. 우리나라의 민사책임은 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민법 제750조, 제390조), 고의나 과실이 없으면 타인에게 가한 손해이더라도 면책 받을 수 있다.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아울러 이에 대한 배상을 받기 위하여는 원칙적으로 배상을 받고자 하는 자가 손해를 가한 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하도급법 등은 예컨대 기술자료 탈취 유용에 대한 고의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수급사업자가 아닌 원사업자에게 부과(동법 제35조 제2항 단서)하였다. 법체계상 맞지 않는 부분이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이 사회자로 발언하고 있다.

3. 법체계상의 모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서 ‘징벌적’은 공법(형법)에 관한 사안이고 ‘손해배상’은 사법(민법)에 관한 사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공법(형법)과 사법(민법)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데, 징벌적 해배상제도는 이를 구분하지 아니한 하이브리드형이다. 손해배상의 원칙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에 대해 형벌적 성격을 더해 응징하겠다는 것이어서 사법(私法)의 기본 원리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것은 私法의 公法化를 가져온다.

형사벌의 책임원칙은 고의책임주의이다(형법 제14조). 즉, 과실범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처벌하고, 원칙적으로는 고의범만을 처벌한다. 따라서 민사책임체제에 형벌적 요소를 가미한다는 것은 형사법이 민사법 영역까지 확대되는 것으로서 과실이 있어도 형사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사벌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대륙법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징벌배상제도를 두고 있지 않으며, 민사책임법제와 형사책임법제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독일은 1992.6.4. 독일연방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하여 미국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승인·집행하는 것이 독일의 공서에 반하지 않는가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이 독일의 공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그 집행을 승인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사정도 대체로 같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배신을 형벌로 다스리는 배임죄의 경우와 같이 민사사건의 형사화로 다수의 국민을 형사법상의 범죄자로 만들게 된다. 물론 범죄자로 기록되지는 않으나, 원리는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대륙법계에도 위자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부당한 행위, 불법행위로 인한 제재인데 비하여, 위자료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 정신적 손해배상의 의미이기 때문에 양자는 서로 구별된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청중 전경.

4. 남소의 가능성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남소의 가능성이 증가하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 소송 위협에 직면한 기업들의 계약을 둘러싼 거래 비용이 증가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할 위험성과 비용이 그 만큼 커지게 되므로 소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며, 기업활동의 위축은 국민경제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징벌적 해배상제도는 대 중소기업간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5. 기업에 대한 이중의 부담

미국은 전통적으로 기업들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형사벌을 가하기 보다는 징벌적 배상제도나 집단소송제 등을 통해 엄중한 민사책임을 부과하여 예방적 기능을 강화시켜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기업들에 대한 엄격한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행정벌적 과징금 등과 같이 엄격한 벌칙규정들을 두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징벌적 배상제도까지 적용되는 경우 기업들의 부담이 과중될 수 있으며,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과 헌법 제13조 제1항에 의거한 중복처벌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 [미디어펜=김규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