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군에 쫒긴 아테네의 굴욕적 전쟁...살라미스 해전 승리로 기사회생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36) - 페르시아의 오만을 경고한 참패의 비극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의 비극『페르시아인들』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현존하는 그리스 비극 33편 가운데 신화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이 <페르시아인들>이다.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인의 자의식의 원천이자 문명의 발화점이다. 신화가 품고 있는 수많은 삽화는 곧 자연스럽게 비극의 대본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 비극이 신화와 전설을 중요한 플롯으로 삼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스킬로스는 신화가 아닌 살라미스 해전을 비극의 소재로 활용했을까? 당시 살라미스 해전이 그리스인들에게 신화 못지않게 중요하게 각인된 ‘살아있는 신화’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비극의 등장인물들은 패배하여 도망자가 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그의 부왕으로 2차 침공에서 패배했던 다레이오스 왕의 혼백, 다레이오스 왕의 부인이자 크세르크세스의 모후인 아톳사, 그리고 패전의 정황을 조국 페르시아에 알리는 사자(使者), 페르시아 원로들로 구성된 코로스이다.

사자는 페르시아군과 그리스군의 전투 정황과 페르시아 장군들의 굴욕적 패배의 상황을 상세하게 전한다. 그리스 함대의 치밀하고 용맹한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침몰되고 도륙 당하는 살라미스의 처참한 전투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다레이오스는 페르시아군이 그리스 땅에서 신상을 약탈하고 신전에 방화하는 등 사악한 짓을 저질러 패배의 고통을 당한 것이라며 아들 크세르크세스를 질책한다.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용감한 전우들의 죽음과 군대의 괴멸에 비통해 하며 울부짖는다. 페르시아의 원로들 또한 참패의 충격에 괴로워하며 크세르크세스를 추궁하고 원망하며 눈물겨운 곡성을 지른다.

페르시아를 극적으로 패퇴시킨 살라미스 해전이 있은 지 8년 후에 살라미스 승전의 스토리가 한 편의 비극으로 탄생한 것이다. 다만 그리스군의 승전의 환희를 그리스인의 입으로 직접 노래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인들이 겪는 패전의 쓰라림을 묘사함으로써 반사적으로 그리스의 영광을 극대화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연극을 통해 적의 슬픔을 재현해 보면서 승리자의 기쁨을 누렸다. 승자와 패자의 엇갈린 상황이 얄궂기만 하다.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72년 비극경연대회에서 <페르시아인들>이 포함된 3부작을 공연하여 우승을 차지한다. 관객들, 즉 아테네 시민과 주변의 도시국가 시민들이 이 비극에 공감하고 환호했다는 의미다. 아이스킬로스로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역사적 소재를 취한 모험에서 오히려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신화의 소재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한 비극이 쓰이고, 또 출품까지 된 것은 그리스 비극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리스 비극은 신화를 배경으로 신과 영웅들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특히 영웅들과 공동체 내의 갈등과 대립이 비참한 결말로 끝나는 연극이 대부분이었다. 5세기 전후 그리스 문화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비극이 탄생하고 아테네 시민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리스 비극은 인간의 오만(hybris)을 경계하면서도 필멸의 운명에 도전하던 불굴의 인간 정신을 고양시키는 공동체의 종교적 의식이자 종합예술이었다.

이런 비극의 주류와 달리 특정한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 <페르시아인들>은 소재 자체가 이채롭다. 이후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 전투 상황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함께 페르시아 전쟁의 생생한 현장 상황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전거가 되고 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3차례의 전쟁(Greco-Persian Wars)은 당시 서양과 동양의 문명이 충돌한 문명사적 대사건이었다. 페르시아의 1차 침공(BC 492)은 아토스(athos) 곶(串)의 폭풍으로 좌초되고, 2차 침공(BC 490)은 아테네군에 의해 마라톤 전투에서 격퇴되었다.

   
▲ 마라톤 전투의 영웅인 아테네의 밀티아데스 장군 동상, 마라톤 평원에 있다. 그의 발치 뒤로 아테네 군 전사자 묘지가 보인다. ⓒ박경귀

10년 후 3차 침공(BC 480)에 나선 페르시아군은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300 결사대를 전멸시킨다. 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여 방화하는 등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제외한 그리스 전역을 휩쓴다.

하지만 살라미스(Salamis) 해전에서 아테네가 주축이 된 그리스 연합함대의 반격에 의해 페르시아의 대함대는 괴멸되었다. 게다가 남아있던 페르시아 육군마저 플라타이아 전투(BC 479)에서 스파르타를 주축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완패함으로써 페르시아의 3차례에 걸친 그리스 침략은 좌절된다.

   
▲ 테르모필레 협곡의 전투에서 300 결사대를 이끌고 페르시아의 수만 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의 동상, 스파르타 시내에 있다. ⓒ박경귀

살라미스 해전은 3차례의 페르시아 침략을 모두 물리친 대미를 장식한 최고의 승전이었다. 동․서 문명의 대결에서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합에 불과한 그리스가 동방의 대제국을 패퇴시킨 것이다. 페르시아와의 세 차례의 전쟁은 흩어져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나아가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던 그리스 인들에게 자신들의 우월한 문명을 지켜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고양시켰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페르시아에게 비극적 결말을 안겨준 살라미스 해전을 소재로 한 비극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던 살라미스 해협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현재도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에는 많은 상선들이 정박하거나 왕래하고 있다. 건너다보이는 섬이 살라미스 섬이다. 본토의 해안에는 그리스 해군이 주둔하는 등 군사적으로 상업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사진 촬영 지점 언덕 어딘가에서 크세르크세스는 전투 장면을 관전했었다고 한다. ⓒ박경귀

아이스킬로스는 이 비극에서 그리스 군을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오로지 살라미스 해전에서 처절하게 패배하여 충격과 좌절감, 고통으로 절규하는 페르시아 인들의 상황만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인의 시각에서 페르시아 인들이 겪었을 전쟁 패배의 참상과 비통한 정황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그가 단순히 페르시아 인들의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보다, 오히려 그리스 세계를 정복하려던 페르시아인의 오만에 대한 경고와 함께 그리스인들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후세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시키려 했었는지도 모른다.

전승이후 아테네는 지중해에서 페르시아의 세력을 완전하게 축출하고 향후 페르시아의 재침(再侵)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델로스 동맹으로 결집시키고 이를 토대로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아테네로서는 페르시아의 3차 침공은 아테네 시가지와 아크로폴리스를 페르시아군의 약탈에 통 채로 내어준 굴욕적이고 처참한 전쟁이었다. 아티카 전 영토를 포기하고 살라미스 섬으로 전 시민을 대피시킨 아테네에게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의 완전한 멸망이냐, 아니면 기사회생이냐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한판 승부였다.

살라미스의 승전이 갖는 의미는 아테네의 부활 그 이상이었으니 아테네인들이 3차 페르시아 전쟁의 치욕스런 상황과 영광의 승리를 영원히 기리고 싶었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비극의 공연을 위한 의상과 훈련비용을 대주는 후원자 즉, 코레고스(choregos)를 20대 중반의 약관 페리클레스가 자청했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훗날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열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든 최고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영광을 노래하여 아테네 시민들의 자긍심을 북돋우는 이 비극의 ‘정치적 가치’(?)를 일찍이 간파했던 셈이 아닌가?

이후에 페리클레스가 동맹국의 금고를 유용해 가면서까지 페르시아군의 방화로 불타버린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한 이유도 아테네의 영광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그의 애국적 염원에서 나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살라미스 해전과 이를 극화한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네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역사적 소재를 다룬 문학 작품을 대하는 또 다른 감상법이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페르시아인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1, 2쇄), 6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