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수채화빛 바다 가슴 탁...전갱이·고등어에 학꽁치회까지 자연어장

 하응백의 낚시 여행-통영 전갱이와 학꽁치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문학박사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다만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번에는 긍정적인 결실을 맺었다. 지난 여름, 고등학교 동기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전갱이 회와 학꽁치 회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같이 낚시 가서, 잡아서 회맛 보자고 했고, 또 다른 친구들이 동조하면서 단체로 낚시 가자고 나의 등을 떠밀었다. 어영부영 그래, 한 번 가자고 한 것인데, 여러 친구들이 가담하면서 10월의 어느 토요일과 일요일 통영 욕지도 좌대로 출조 계획이 잡혔다.

낚시는 여러 수십 명이 함께 하기는 힘들기에 한 달 전에 8명으로 예약을 해놓고 낚시 갈 친구들은 낚시가고, 통영 관광 갈 친구들은 그 다음날 하루 버스를 대절해서 통영의 여기저기 풍광을 구경하기로 했다.

수도권에서 네 명이 출발하고 대구에서 네 명이 출발해 통영 삼덕항에서 2시에 합류하기로 했기에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오전 8시에 우선 세 명이 만났다.

날씨가 좋은 단풍철 토요일이라 휴게소는 차량들로 북적였다.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어서면서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여행가는 사람들은 늘 넘쳐난다. 차 한 대에 세 명이 타고 오창으로 가서 친구 한 명을 더 싣고 통영 삼덕항으로 향한다.
 

낚시 여행에서는 실제 낚시할 때보다 출발하기 전의 즐거움이 더 크다. 오래도록 낚시를 했건만 낚시를 가기 전날 잠을 푹 잔 적이 없다. 대상 어종을 상상하며 낚시 도구를 꺼내어 어종에 맞추어 채비를 세팅하다보니 밤을 홀딱 샌 것이다.

찌낚시 채비와 내림낚시 채비에다 학꽁치 원투채비에다 호래기 채비까지 세팅했으니 시간이 걸릴 만도 했다. 잠을 못자기는 했으나 마음은 즐겁고 분주하다. 친구 세 명이 모두 운전에는 베테랑이니 걱정도 없다. 운전을 교대로 하면 통영까지야 문제없이 갈 수 있다. 가는 동안에 오늘은 물때도 좋고, 날씨도 좋으니 조과는 틀림없을 것이라고 미리 설레발을 친다.

하지만 낚시를 좀 해본 백성목군은 그것이 설레발임을 알고 있다. 모든 조건이 맞아도 못 잡을 수도 있는 것이 낚시라는 것을 경험이 있는 꾼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설레발이 즐겁다. 풍성한 조과가 아닌 비관적인 조과를 예측하면서 낚시를 떠나는 꾼들은 없다.

낚시를 떠날 때는 항상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난다. 그것이 비록 신기루와 같은 환상일지라도 그 환상이 바로 낚시꾼을 움직이게 하는 기본 동력이다.
 

오후 두 시 조금 전 통영 삼덕항에 도착해서 단골 충무 김밥 집으로 간다.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용으로 김밥을 싸니, 대구에서 도착한 친구들은 벌써 도착해 바로 옆 횟집에서 한잔들 하고 있다고 연락이 온다. 와서 회 좀 먹고 떠나자는 것이다.

아니 낚시 와서 미리 횟집에서 회를 먹다니. 이런 몰상식한 친구들이 있나. 서울에서도 횟집에 잘 가지 않는데, 바다 바로 옆에서 횟집을 가다니. 더군다나 조금만 있으면 갓 잡은 싱싱한 자연산 회를 물리도록 먹을 수 있을텐데. 그것은 낚시꾼이 할 짓이 아니므로 빨리 자리를 끝내고 낚시 가게로 합류하자고 한다.

그렇게 하여 서울 세 명, 오창 한 명, 대구 네 명의 낚시팀이 낚시가게 앞에서 만난다. 사실 대구에서 온 친구들은 낚시보다는 나의 감언이설에 꼬드겨서 가을 바다 풍광을 보기 위해서 왔다. 이런저런 미끼를 사고 배에 오른다. 나드리 2호다.

오래간만에 만난 선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요즘 뭐가 잘 나오느냐고 하니까, 참돔, 고등어, 전갱이, 호래기, 학꽁치 다 잘나온다고 한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무엇을 먼저 잡아야 할까. 좌대에 도착하면 초들물이 시작되니까 일단 전갱이와 고등어를 잡아 횟감을 마련한 다음 밤 시간이 되면 다른 어종을 잡자고 생각한다.

   
▲ 통영 앞바다의 올망졸망한 섬들.

   
▲ 등대섬 풍경도 아름답다.

   
▲ 노대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낚시꾼들이 많다.

   
▲ 통영 앞바다의 멸치잡이 선단.

배는 통영 앞바다의 수려한 풍광을 헤치고 여러 섬들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간다. 나와 백성목군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다른 친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대구와 같은 내륙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생활하는 친구들에게는 바다는 늘 경탄스러운 풍경을 제공한다.

나 역시 이런 풍경에 매료되어 낚시를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도 아름다운 곳이 바로 남해 섬들과 바다의 풍광이다. 배는 노대도 좌대에 들러 몇몇 낚시꾼을 내려 준 다음 욕지도로 향한다. 1시간여 만에 욕지도 항구 바로 앞 좌대에 도착한다.

8명이 예약을 했기에 컨테이너에 부엌과 방이 딸린 독립 좌대로 배정해 준다. 멀리서 왔다고 선장이 배려해 준 것이다. 처음 좌대 낚시를 온 친구들은 바다 위에 전기도 들어오고 수돗물도 나오는 시설에 놀란다. 다른 좌대에도 손님들로 가득하다. 어린이와 여자들도 많이 보인다. 좌대낚시는 비교적 쉽고 안전하기에 가족단위의 출조객이 많은 것이다.

   
▲ 욕지도 풍경.

성급하게 내림 채비를 해서, 친구들에게 설명을 한다. 14호 봉돌을 달고 크릴새우는 이렇게 끼운다, 라고 하면서 시범을 보여준다. 좌대 낚시는 간단하지만 새우 미끼를 단단히 달아야 한다. 아니면 고기들이 따먹고 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조류의 흐름을 보니 육지 쪽에서 바다 쪽으로 움직인다.

전갱이와 고등어 같은 고기들은 밑밥에 확실히 반응하기 때문에 육지 쪽 방향에 자리를 잡고 밑밥을 조금씩 뿌리고 친구들은 바다 쪽으로 자리 잡게 한다. 백성목군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친구들의 낚시를 도와준다. 밑밥을 몇 번 뿌린다.

이상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밑밥을 뿌리면 고기들이 피어올라야 하는데 별 반응이 없다. 이럴 수가. 분명 10월이면 이 지역에는 고등어나 전갱이가 가득가득 해야 하는데, 그리고 배를 타고 오다 보니까 멸치 선단들이 욕지도 앞에 가득했는데 고기가 없으면 이상한 것이다. 멸치를 따라 삼치, 고등어, 전갱이 같은 고기들이 따라 들어오기 때문에 분명 고기가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조금 지나니 좌대낚시는 처음인 권재배 군이 환희에 들뜬 소리를 지른다. 무엇인가 잡혔다는 것이다. 올려서 보니 전갱이다. 씨알이 크진 않아도 그런대로 먹을 만한 정도는 된다. 일단 안심이다. 횟감 정도는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여기저기서 전갱이와 고등어가 올라온다. 장삼철, 진중득, 강천웅, 오정현 군들도 열심히들 잡아내고 있다.

정작 나와 백성목군에게만 입질이 없다. 뭐 어떠랴. 횟감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친구들을 독려한다. 어느 정도 고기가 모여서 회를 쳐서 한 잔 하자는 데 모두 동의한다. 전갱이 한 마리를 꺼내 회를 치는데 전경수란 친구가 ‘내가 회 뜰께’라고 한다. 의외다.

낚시도 안하는 친구가 어떻게 회 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군대 생활을 거제도에서 하면서 그때 배웠단다. 만세다. 8명이 풍족하게 먹을 회를 뜨면서 낚시를 하면 너무 바빠 낚시를 제대로 못하는데 친구가 그 역할을 해준다니! 전경수군은 회를 잘 쳤다. 아마추어 치고는 수준급이다. 바다에는 황혼이 오더니 금방 어두워진다. 등을 켜고 잡은 고기로 파티를 시작한다.

   
▲ 회를 뜨고 있는 전경수군. 수준급 솜씨다.

모두들 그저 즐겁다. 초등학교 때 소풍 온 아이들 보다 더 즐거워한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고민도 근심도 없다. 숯불을 피워 잡은 고등어를 구워도 먹는다. 전갱이회와 고등어회, 고등어구이를 안주로 술잔을 비워나간다. 바다는 호수같이 잔잔하다. 가을 저녁의 검은 바다가 중년의 사내들을 어린애처럼 낭만적으로 변하게 한다. 어떤 말을 해도 즐겁다.
 

나는 슬그머니 호래기 낚시 준비를 한다. 호래기는 반원니꼴뚜기가 정식 명칭으로 작은 오징어를 말한다. 주로 밤에 방파제 주위에 들물 때 잡을 수 있다. 만조가 가까워지니 호래기를 몇 마리 잡아 호래기 라면을 끓이려고 채비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호래기는 없었다. 좌대 쪽으로는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드문드문 고등어와 전갱이는 올라온다. 다만 밤이 되니 씨알이 더욱 잘아진다. 입질 수심도 계속 변한다. 호수같은 바다의 밤 풍광에 취한 장삼철군은 고기도 떼고 이야기도 하면서 술이 취하지 않는다고 떼를 쓴다. 그렇게 가을밤은 흘러간다.

   
▲ 아침 좌대의 분주한 모습.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들물을 보기 위해 새벽 4시경에 일어나 다시 낚시를 시작한다. 다들 부지런해서 한 둘씩 일어나 낚시를 한다. 전경수군은 또 요리를 담당하는 수고를 한다. 나는학꽁치 채비로 바꾼다. 전갱이 회와 고등어 회는 실컷 먹었으니 학꽁치 회나 먹자는 심사다.

학꽁치가 잡힌다는 확신은 없지만 표층까지 설치던 고등어 떼가 사라졌기에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던질 찌 아래에 고추찌를 달고 그 아래에 학꽁치 4호 바늘을 달고 채비를 조류에 흘려 보았다. 조류는 서서히 흐른다.

좌대 좌측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조류에 따라 계속 흘려본다. 그런데 장판같이 잔잔한 바다에 무엇이 물에 떨어졌을 때 동심원이 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 바다 표면에 보였다. 그것이 바로 학꽁치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꽁치는 표층을 회유하는 고기라서 수면 위에 먹이를 취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 학꽁치 입질을 받은 좌대 바로 앞 포인트.

채비가 좌대에서 한 20미터 흘러가자 고추찌가 쭉 빨려들어가는 입질이 왔다. 가볍게 낚싯대를 채니 학꽁치가 낚싯대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끌려온다. 그것을 구경하던 오정현군이 나보다 더 신나 한다. 곤쟁이 밑밥을 조금씩 품질하면서 본격적인 학꽁치 낚시를 시작한다.

서너 마리를 더 잡아낸다. 몇 마리는 떨어져 나간다. 너무 빨리 채도 안 되는 것을 좀 흥분해서 빨리 챘더니 제대로 걸림이 안 된 것이다. 고추찌가 쑥 내려가고 천천히 채니까 오히려 확실히 후킹이 되었다. 그렇게 10여 마리를 잡으니까 친구들이 어서 학꽁치 회 먹자고 보챈다.

전경수군이 학꽁치는 한 번도 회를 떠 본적이 없다고 하여 시범을 보인다. 양쪽으로 포를 뜨고, 껍질은 장갑 낀 손으로 쭉 당기면 벗겨진다. 내장 쪽에 있는 검은 막을 칼로 살살 제거하면 끝이다. 학꽁치 회는 투명하다. 맛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다들 학꽁치 회를 먹고 라면을 끓여 남은 김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 학꽁치 회. 살이 투명하다.

오전 10시 30분이 철수 시간이다. 잡은 고기는 전경수군과 장삼철군이 손질을 한다. 씨알은 잘지만 수는 제법 많다. 소금을 뿌려 잘 갈무리하고 철수 준비를 한다. 짐을 정리하자 장삼철군이 좌대 전체를 깨끗하게 물청소를 한다.

철수 준비를 해 놓고 마지막으로 한 마리만 잡겠다는 권재배 군의 낚싯대에 마지막 한 마리 전갱이가 잡혔다. 전경수군이 마지막으로 회를 떠 8토막으로 나누었다. 남은 소주를 여덟 잔으로 나누어 우리는 건배를 하고 마지막으로 딱 한 점씩 회를 먹는다.

   
▲ 초보꾼들에게 잡힌 고등어와 정어리.

삼덕항에 도착해 관광팀에 전화를 하니 통영 중앙시장 횟집으로 오라고 한다.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 30여 명이 이미 불콰해져 있었다. 낚시팀도 즐거웠지만 전세버스로 관광을 나선 이들 또한 즐거움으로 충만해 있다. 말이 씨가 되어 가을의 어느 하루, 통영에서 즐거움의 열매가 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딱 35년이건만, 모이면 개구쟁이가 된다. 통영 중앙시장 전체가 시끌벅적한 것 같다. 이들 모두 집이나 직장으로 돌아가면 근엄한 경상도 아저씨로 변신할 것이다.
 

점심을 먹고 서울 팀은 이들과 헤어져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다. 가야할 길이 딱 천리 길이다. 교대 교대로 운전하면서 서울로 돌아온다. 돌아오면서 또 계획을 짠다. 올해는 윤달이 껴서 바다 상황이 한 달 정도 늦게 변한다. 그러니 아직 갑오징어 낚시도 잘 될 거다.

다음 주는 갑오징어 낚시를 하고, 그 다음에는 갈치 잡으러 가고.... 또 그 감언이설이 유혹을 당해 권재배군과 오정현군은 꼭 불러달라고 한다. 백성목군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문학박사